삶의 중심을 지키는 베이커리
베이크샵 피봇. 2018년 8월 문을 연 서울 방배동의 디저트숍. 어머니와 딸이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가게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든다. 오전 8시에서 저녁 6시까지 열려 있다.
시그니처 디저트
현미무화과바나나 파운드

나는 피봇의 가장 오랜 친구야. 우리 사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빵이 바나나브레드인데, 약간 오일리한 편이라 덜 부담되는 형태로 개발한 게 지금의 내가 되었어. 정직한 이름답게, 나는 겉모습도 속재료도 거의 바뀌지 않고 이어져왔지. 첨가물 하나 없이 원재료의 맛이 담뿍 느껴지는 디저트를 찾는다면, 바로 내가 그 선택의 주인공! 나를 많이 찾는 날은 150개까지 주문이 들어온다니까. 팁 하나, 우리 사장님 말로는 나를 얼려두었다가 살짝 해동해서 맛보면, 은근히 올라오는 바나나 향기가 최고래.
베이커스 스토리
피봇이라는 이름이 낯설지는 않지만 베이킹과 붙은 건 조금 생소해요.
저는 사실 베이킹 전공자는 아니에요. 댄스스포츠로 엘리트체육을 어렸을 때부터 했는데요. 두 파트너가 합을 맞추고 중심을 찾는 일에 오래 매력을 느끼고 매진해왔었죠. 함께하던 파트너가 입대하면서 저도 춤을 관둔 시기가 있었는데 이 공백은 요가가 채워주었어요. 새로운 움직임을 배우는 시간이었지만 요가에도 역시 중요한 건 ‘중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해줬던 베이킹의 추억을 살리고 싶어졌을 때, 이 일에도 ‘중심’이라는 키워드를 가져가고 싶어서 중심축이라는 뜻의 pivot을 가져오게 되었답니다.
엄마가 만들어준 쿠키라고 하면, 불량식품 과자들이랑은 반대항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럼요. 우리 엄마가 만들어준 거라면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잖아요. 첨가물이 없는, 아이를 위해 만든 쿠키. 같이 요가하는 친구들도 보다 편하고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제 관심도 자연히 비건베이킹으로 향했던 것 같아요. 외부 음식에서 받는 강한 자극으로부터 조그만 안전지대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실현한 거죠. 실제로 달걀, 버터, 우유 알러지 있는 아기들도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든다는 데 자부심을 느껴요. 최근 제게도 아이가 생겼기 때문에, 이 딸아이가 커서 함께 쿠키 만드는 풍경을 그려보곤 해요.
매장에 있는 방명록이 꽤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서 놀랐습니다.
단골손님들이 아기자기하게 방명록을 꾸며주세요. 우리 직원들까지 캐리커처해주시는 분도 있고, 어린 친구들도 페이지를 많이 채워주고 있어요. 저희 손님들이 그런 것 같아요. 매장에 들어설 때 하나같이 설레는 표정을 하고 계시거든요. 아마도 맛있는 빵집은 많아도 정말로 건강한 먹거리를 살 수 있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에 몸에 좋으면서도 맛을 어떤 식으로 챙겼을까 하는 호감과 호기심, 응원으로 눈빛이 반짝이시는 게 아닐까 짐작해요.

건강한 재료를 쓴다는 것은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일이 되겠어요.
정말 그래요. 제철 재료를 많이 쓰다 보니, 복숭아, 단호박, 고구마, 쑥, 계피, 무화과, 딸기 같은 향기들로 계절의 흐름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감정들도 향과 맛으로 기억하게 되는 좋은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비 오는 날에는 빵 냄새가 한결 진해서 그야말로 빵을 굽는 행복을 피부로 느끼게 되곤 하죠. 행복을 향으로 표현하면 계피 향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한번은 계피를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교집합만으로 한 손님과 친구가 되기도 했어요.
행복, 건강, 가족… 이런 키워드들이 가득한 인터뷰라서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매장에서 남동생도 일하시고, 또 지금의 남편도 이 일을 하면서 만나셨다고 들었어요.
정말로 가족적인 공간이죠? 저는 약간 기분파인데 남동생은 철저한 계획주의자라서 많은 도움을 받아요. 매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게끔 도와주고, 인력 관리에도 힘써주고요. 남동생은 자기가 애써 짜준 질서를 따라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은데, 저는 역시 러프하고 유연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거기 못 따라가고 있네요. 예전에 이웃서점에서 연 크리스마스파티 음식을 준비한 적이 있는데, 남편은 그때 만난 인연이에요.

그럼 가족들의 출근시간은 동일한가요?
아뇨. 출퇴근시각이 저마다 달라요. 우선 엄마는 새벽 4시 30분에 베이킹 준비를 시작하셔서 정오쯤 퇴근하세요. 매장관리를 맡는 남동생은 오전에 출근해서 오후 4시쯤 퇴근하고요. 제가 그사이 어딘가인데요. 저는 매장보다는 주로 주방 안에 있는데, 이때가 가장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이에요. 저는 케이크가 딱 완성되는 그 순간보다는 그걸 준비하는 어찌 보면 지루한 순간들이 참 좋더라고요. 가루 계량, 믹싱, 팬닝 같은 일을 할 때 말이에요.
댄스스포츠에서 요가, 베이킹까지 전혀 다른 세계의 키워드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삶의 중심’이라는 키워드로 자연스레 하나가 되네요.
여러 가지 경로를 거쳐오면서 강하게, 중심이 되는 키워드가 누구에게든 있을 거예요. 제 경우에는 그것이 중심, 균형, 행복인 거고요. 엄마가 해준 쿠키를 선물받는 행복을 업으로 삼고 싶다는 작은 희망이 이 일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만들어주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베이크샵 피봇
김민정의 비터스윗 모먼트
Bitter moment
건강한 재료를 찾으려는 노력은 늘 도전이 되는 것 같아요. 비건, 저탄수를 지향하고, 버터, 우유, 달걀, 흰밀가루, 색소, 방부제는 안 쓰려고 해요. 도구나 포장재에 있어서도 플라스틱은 쓰지 않으려고 하고요. 재료는 모두 국내산을 쓰려고 하고, 소화가 잘되고 믿을 수 있는 생산자에게서 직접 거래하려고 노력해요. 모두 좋은 지향을 가지고 하는 것들이지만, 쉽지는 않아요. 재료의 높은 단가를 손님이 모두 지게 할 수는 없으니 적당한 균형의 가격을 책정한다는 일도 어려움이라고 볼 수 있고요. 또 ‘비건’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까다롭고 난도 높은 주제라고 생각해요. ‘비건’의 강조가 ‘넌비건’에게 불편을 주는 부분도 있기에 요즘은 ‘크루얼티 프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무해한 먹거리를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임에는 분명하니까요.
Sweet moment
아주 가까이 살지 않는데도 멀리서 자주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있고, 이 가게가 오래 있어주기를 응원해주시는 그 마음들에 매번 새로이 감동받습니다. 얼마 전 출산 때에도 아기에게 주시는 선물과 편지들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엄마와 딸이 함께 연 숍이라고 했는데, 이제 여기에서의 ‘딸’이 또 엄마가 되면서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가 한 번 더 이어지게 된 것 역시 비할 데 없이 달콤한 순간일 겁니다. 매일 비슷한 하루 같아도, 손님들의 이런 마음이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이 공간을 오래도록 단단하게 지켜야겠다는 책임감과 따뜻한 자신감을 동시에 얻게 돼요.
글 쪽프레스 jjokkpress
출판사.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레이블로,
콘텐츠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선보입니다.
2018년부터는 ‘쪽’이라는 이름에 담기지 않는
묵직한 콘텐츠를 ‘고트’라는 이름으로 전개합니다.
푸드스타일링·사진 더 스피니치 THE SPINACH x JW studio
푸드콘텐츠에이전시. 음식이 가진 본질과 브랜드의
결을 정확히 읽어 이미지로 담아냅니다.
Directed & Food-Styled by 박명원 Photographed by 김신욱·엄승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