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스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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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호단팥

디저트계의 국밥, 팥으로 으뜸가는 집

일호단팥. 이름처럼 “팥 하면 1호로 떠오르는 집”을 목표로 삼고 2024년 7월 출발한 팥 디저트 전문점으로, 서울 대흥동 경의선 숲길가에 자리한다. 단팥죽, 팥빵, 팥빙수, 단팥오방떡까지, 팥을 중심에 둔 메뉴들로 일상의 한 끼를 채우는 디저트를 지향한다.

시그니처 디저트

단팥 오방떡

단팥 오방떡

나는야 단팥 오방떡. 일호단팥이 처음 문 열 때부터 줄곧 맨 앞줄에 놓여 있던, 맏이라고 보면 돼. 평범해도 너무 평범해 보인다고? 이래봬도 나란 디저트는 엄청난 연구 끝에 탄생한 궁극의 밸런스 그 자체란 말야. 찹쌀을 많이 넣으면 쫀득함이 살아나는 대신 모양이 흐트러지거든. 그렇다고 밀가루 비율을 높이면 모양은 그럴듯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버석해지지. ‘적당한 모양’과 ‘적당한 쫀득함’이 교차하는 지점이 만나야만 완성되는 게 나야. 내 속은 기본적으로 단팥이지만, 때로는 다른 맛의 마음이 차지할 때도 있어. 크림치즈, 완두, 밤같이 색색가지 다른 마음이……. 누군가에게 나는 출근길 루틴이고, 누군가에겐 주말에 가족과 나누는 대화야. 한결같은 모습으로 곁에 있어주는 디저트 친구를 만들고 싶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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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디저트 재료 중에서도 ‘팥’으로 결정한 까닭이 궁금해요.

저는 학생시절부터 하루의 작은 낙이 디저트였어요. 차가운 우유에 마들렌을 곁들이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10대였죠. 전공은 식품영양학이었고요. 졸업 후에는 와인회사에서 브랜드매니저로 일했는데, 3년 정도 그 일을 하면서 브랜드를 만든다는 게 어떤 일인지 몸으로 배운 것 같아요. 내가 만들고 싶은 디저트는 뭘까, 차리고 싶은 숍은 어떤 모습일까를 고민한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속에서 번쩍번쩍 자기를 드러내는 가게보다는, 주거 상권에서 일상적으로 계속 찾을 수 있는 디저트숍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발견했어요. 유행이 아니라 습관, 루틴이 되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디저트계의 국밥’은 뭘까? 누구나 알고, 누구나 편하게 대하는 메뉴. 바로 팥빙수와 팥빵이 아닐까! 가게 이름도 직관적으로 정했어요. 영웅재중, 최강창민처럼, 단팥 중 1호가 될 거니까 ‘일호단팥’이라고요. ‘팥은 정말 맛있는 거구나’ 외에는 브랜드에 대한 부수적인 이미지가 너무 많이 덧입지는 않는 단순한 브랜드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팥은 정말 질리지 않는 것 같아요. 디저트가 길티 플레저가 될 때도 많은데, 팥 디저트는 예외랄까요. 손님들도 왠지 정기적으로 찾아주실 것 같은데요.

맞아요. 팥의 특성 덕분인지 한 번에 많이 사가는 손님보다 매일같이 와주시는 손님이 더 많아요. 한 사람의 일상에 스며들어간다는 사실이 참 따뜻하고 고맙게 느껴져요. 자주 찾아주시는 분들은 대개 같은 메뉴를 주문하시더라고요. 그런 분들의 또 다른 특징,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는 것? 그래서 주문하고 기다리고 받아가고 하는 게 말주변 없는 저와 단골손님의 상호작용 전부예요. 그런데 그 안에서 쌓이는 익숙함과 친숙함이 있는 거죠. 또 기억나는 손님이 한 분 계신데요, 리뷰를 얼마나 공들여서 써주셨는지. 저나 직원이 썼다고 느껴질 정도로 영업시간이나 주차 정보까지 빼놓지 않고 적어주신 거예요. 그걸 보면서 ‘이 정도로 우리 가게를 생각해주시는구나, 우리가 오래가길 응원해주시는구나’ 싶어져서 뭉클했습니다.

일호단팥은 이제 막 1년을 넘긴 신생 매장인데요. 어떤 과정으로 팀이 갖춰졌는지 궁금해요.

가게를 준비하면서,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구인하기보다는 주변에서 동료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당시 다니던 커피학원에서 만난 대학생 친구 둘에게 먼저 도움을 청했죠. 그들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중이었고, 가기 전까지 카페 경력이 절실하던 차였어요. 저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생긴 셈이니 기뻤고요. 두 사람 다 목동에 사니까, 거리상으로는 꽤 먼데도, 오픈 초기부터 호주로 떠나게 된 최근까지 정말 성실하게 도와줬어요. 호주로 떠나면서도 가까운 친구들을 소개해줬고요.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친구이니까, 어떤 변수가 생겼을 때 서로의 자리를 메꿔줄 수 있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기도 했어요. 손님에게 살갑게 다가가는 스타일이 못 되는 저를 팀원들이 잘 채워주기도 하는데요. 라스트오더 시간이 지나도 손님에게 웃으면서 응대하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놀랍고 고맙죠. 직원 관계로 고생하는 사장님들도 많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고통을 한차례로 겪어보지 않은 건 행운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거예요.

내향인으로서는 팀멤버들과도 그렇고, 손님들과도 그렇고, 사람을 상대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직업이잖아요. 혼자만의 시간은 어떻게 챙기시나요?

정말로 그래요. 가게에서 제가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두 시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오방떡을 굽는 아침 9시부터 오픈하는 11시까지인데요. 다른 직원들이 오기 전, 혼자서 떡을 굽는 시간. 실은 반복적인 일이잖아요. 반죽 올리고 모양 잡고 굽고 식히는 일. 그런 단순노동만이 줄 수 있는 평온함이 참 귀하더라고요. 머리를 쓰지 않고 손을 움직이는 중에 간밤 잠들었던 몸이 점점 깨어나는 기분이에요. 그러고 보면 아침을 즐기는 아침형 인간이구나 싶어요. 쉴 때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헬스는 10년 넘게 했고, 3년 전부터는 아이스하키에 푹 빠졌어요. ‘다른 사람의 성과까지도 같이 기뻐하는 경험’을 알려주는 팀운동의 매력이 굉장하더라고요. 빙상장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시원한 공기도 참 좋고요. 친구 중에 선출이 있는데 그 애가 아마추어 팀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선뜻 지원한 게 지금까지 이어져왔어요. 요즘은 일로 안 좋아진 허리 때문에 잠깐 쉬고 있지만, 일과 운동의 균형을 맞추는 시기가 곧 오지 않을까 해요.

보통 이제 시작한 공간은, 그걸 만든 한 사람과 구분되지 않잖아요? SNS만 해도 그렇고요. 그런데 ‘맛’ 외에는 부수적인 이미지가 덧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신 아까 말씀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사실 저는 의외로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시시콜콜한 주제로 SNS 올리는 것도 좋아하고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일 때의 이야기이고, 브랜드에 대해서 혹은 브랜드로서 글을 쓰는 건 어렵더군요. 아마도 일호단팥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끼는 옷이라서, 조금이라도 뭐가 묻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조심성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최근 일호단팥의 블로그를 만들었고, 딱 한 개의 게시글을 올렸거든요?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연약한 자영업자의 공간임을 잊지 않고, 그럼에도 순간순간의 소중한 기억들을 적어나가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한 분야에서 ‘1호’가 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그래서 더 멋있는 선언이라고 느끼게 되기도 해요. ‘팥’을 어떤 식으로 연구하고 계신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초심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자기선언이었죠! 오방떡만 해도 레시피 수정기간을 1개월 이상 가진 편이에요. 조금씩 배합비율을 바꿔보면서 최적의 디저트라고 자부할 수 있을 때까지, 소개하지 않았어요. 반죽을 수십 킬로를 버려가면서 무진 애를 썼죠. 제가 오방떡에서 가장 살리고 싶었던 건 ‘쫀득함’이었어요. 그만큼 찹쌀을 많이 넣는데, 이 비율이 조금만 과해져도 성형이 어렵고 아름답게 굳히기 쉽지 않아요. 밀가루 비율을 높이면 보기는 좋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감이 버석해지고요. 개인적으로 팥은 ‘콩’의 일종이니까, 콩의 형태와 식감을 유지하는 쪽이 옳다고 생각해요. 팥알이 알알이 살아 있는 빙수는 보기에도 먹기에도 정말 좋잖아요. 다만 빵의 경우에는 절반 정도는 으깨지게끔 소를 만들어요, 스프레드의 뉘앙스를 잃지 않을 수 있도록요. 팥은 양이 되는 한 엄마 친구분이 지으시는 농장에서 받아오고 있어요. 거기서 커버하지 못하는 분량은 콩 선별장에서 받아다 쓰고요. 팥 가격이 1년 새 1kg에 14,000원에서 20,000원까지 오르는 아픔이 있었지만, 손님에게 부담 없는 가격 선에서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호단팥의 제품들은 수많은 레시피 연구 끝에 탄생한다. / 사진제공: 일호단팥
일호단팥의 제품들은 수많은 레시피 연구 끝에 탄생한다. / 사진제공: 일호단팥

일호단팥의 1호가 지금 매장이라면, 2호, 3호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부디 그럴 수 있다면 좋겠어요. 직영점을 세 개쯤 운영하고 싶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서울 안에서 주거와 오피스가 적당히 섞인 동네들을 계속 눈여겨보게 돼요. 굳이 화려한 상권이 아니라, 지금 일호단팥처럼 “멀리서 한 번 오는 가게”가 아니라 “가까이에서 여러 번 오는 가게”가 될 수 있는 동네들요. 2호, 3호가 생긴다면, 각각의 공간도 똑같이 복제하기보다는 각 동네의 생활 리듬과 잘 맞는 팥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가깝게는 온라인을 분점 공간으로 삼을 수도 있겠죠? 온라인 유통을 위해 생산설비를 어느 정도 갖춰둔 상태입니다. 지금 이곳 1호를 단단히 꾸려가면서 2호, 3호를 소개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일호단팥

윤수연비터스윗 모먼트

Bitter moment

여름에는 빙수를 찾아주시는 손님이 정말 많아요. 웨이팅은 정말 좋은 신호이겠지만, 사실 줄이 길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고 편하지만은 않아요. 줄 서주시는 분들의 기대치는, 웨이팅 시간 동안 올라가기 마련인데, 제가 드릴 수 있는 서비스는 오히려 줄어드는 게 현실이거든요. 자리는 더 좁고, 주문한 메뉴는 더 늦게 나오고……. 그렇게 피크로 바쁠 때 잘 닦이지 못한 테이블을 보면 손님의 기분이 최고일 리가 없는 거예요. 손님 표정을 보면, 제 기준에도 부족했다 싶다는 생각에 그날 밤까지 잠을 못 이룰 때가 많아요. 그런 어려움을 더하는 데는 공간구조도 한몫해요. 독특한 대지에 딱 들어맞게 지어진 삼각 형태의 매장에 첫눈에 큰 매력을 느꼈었는데, 직접 일을 해보면서 역시 동선이나 배치 면에서는 직사각형이 최고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Sweet moment

저는 팥 만드는 것 빼고는 다 하기 싫고, 다 못하는 사람에 가까워요. 스트레스에도 취약한 편이고요. 하지만 현실은, 팥만 만들고는 살 수 없는 거잖아요. 여름 매출이 1이라고 하면 겨울 매출은 거의 1/4이거든요. 팥빙수 수요가 몰리는 여름은 여름대로 바쁘고, 겨울엔 다른 방식을 찾아 버텨나가야 하죠. 그러다 보니 팝업 같은 외부행사를 피할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조금 부끄럽지만 자랑스럽기도 한 건, 올해 6월 처음으로 마이너스 없이 마감했어요. 문을 연 이래 가장 달콤한 순간이었을 거예요.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구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일호단팥이라 이름 붙인 블로그에 첫 글을 쓰게 된 것도 이 순간과 무관하지 않을 거예요.

글 쪽프레스 jjokkpress

출판사.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레이블로,
콘텐츠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선보입니다. 2018년부터는 ‘쪽’이라는 이름에 담기지 않는
묵직한 콘텐츠를 ‘고트’라는 이름으로 전개합니다.

푸드스타일링·사진 더 스피니치 THE SPINACH x JW studio

푸드콘텐츠에이전시. 음식이 가진 본질과 브랜드의
결을 정확히 읽어 이미지로 담아냅니다.

Directed & Food-Styled by 박명원 Photographed by 김신욱·엄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