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관중 1200만 시대, 한국 프로야구 인기의 비결

이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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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과 도시를 상징하는 프로야구의 탄생

  • 높은 TV 시청률과 어린이 회원 열풍

  • 박찬호와 월드컵 붐이 만든 KBO 리그 침체기

  • 올림픽 금메달과 롯데 열풍이 불러온 반등의 시작

  • 전 경기 중계 시대 개막

  • 뉴미디어 산업이 키운 중계권 성장의 시대

  • 피크닉과 콘서트로 진화한 관람 경험의 확장

  • 경기력 너머에서 만들어진 팬덤의 힘

  • 2025 시즌 KBO 리그(한국 프로야구 리그)는 관중 1,201만 9,267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흥행을 달성했습니다. 경기당 평균 관중도 1만 7,101명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야구장을 찾았어요. 전문가들은 야구장에서는 응원과 먹거리 등 경기 외에도 즐길 콘텐츠가 많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특유의 응원 문화와 가성비 좋은 야외 활동이라는 점이 MZ세대의 성향과 잘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인 거죠.

    하지만 이런 분석만으로는 2025 시즌 가을야구 누적 시청자 2,700만 명이라는 숫자를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습니다. 프로야구는 직관뿐 아니라 TV 시청에서도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스포츠인데요.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스포츠의 중심을 지켜온 프로야구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관중으로 가득 찬 잠실 구장 / 사진: Kim Hong-Ji

    지역과 도시를 상징하는 프로야구의 탄생

    프로야구팀은 1982년 출범 때부터 지역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였습니다. 팬이 아니라면 프로축구나 프로농구는 팀 연고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프로야구는 달랐죠. 자이언츠, 타이거즈 같은 이름만 들어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 팀의 연고 도시를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런 지역성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고교야구는 지역 명문고들의 각축장이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는 자연스럽게 같은 지역 프로팀에 입단했어요. 지역 팬들이 관심과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는 구조였죠. 이때 만들어진 '지역 연고 시스템'은 프로야구의 강력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반면 프로축구는 초창기부터 홈·원정 체제 없이 전국을 돌며 경기를 했어요. 게다가 축구는 국가대표 중심의 팬덤 구조가 더 강했기 때문에 특정 지역과 깊은 유대가 생기기 어려웠습니다.

    높은 TV 시청률과 어린이 회원 열풍

    프로야구 경기는 80년대 TV 최고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TV 평균 시청률은 약 16%였는데, 프로야구 중계는 23%를 넘었어요. 특히 한국시리즈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콘텐츠였습니다. 1991년 해태 타이거즈와 빙그레 이글스가 맞붙은 한국시리즈 평균 시청률은 20%, 최고 시청률은 28%에 육박했죠. 

    야구 인기에 힘입어 1980년대 초등학생들은 학교가 끝나면 공터에서 야구를 하고, 자연스럽게 야구팀 어린이 회원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오래 남는 팬심이 되기 마련이죠. 프로야구는 미래의 팬층을 일찍 확보했고, 인기는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어요. 

    박찬호와 월드컵 붐이 만든 KBO 리그 침체기

    1995년에 경기당 평균 관중 1만 명을 넘기며 5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던 프로야구는 1990년대 후반부터 암흑기에 들어섰어요.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한국인들의 희망이었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전성 시대와 한일 월드컵 개최라는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죠.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힘을 던져준 박찬호 / 사진: Str Old

    국민들은 더 이상 프로야구가 아닌 박찬호의 MLB 경기에 집중했습니다. 박찬호가 5일에 한 번씩 마운드에 오를 때 전 국민은 그의 투구를 지켜봤고 미디어에서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룬 수많은 기사와 리포트를 쏟아냈습니다. 

    프로야구가 박찬호 신드롬으로 흔들리던 사이, 또 다른 거대한 파도도 몰려왔어요. 바로 월드컵이었죠. 2002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확정 뉴스도 프로야구의 흥행을 위축시켰습니다. 1998년 프로야구는 관중 5,000명대에 머물렀지만, 프로축구 경기당 관중 수는 1만 4,000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두 배나 늘어났습니다.

    올림픽 금메달과 롯데 열풍이 불러온 반등의 시작

    침체되었던 프로야구 인기는 2007년부터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습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 야구가 유례없는 황금기를 맞았거든요.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을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WBC 준우승을 기록했죠.

    좋은 국제대회 성적 덕분에 한국 프로야구는 '명품 야구'라는 평가까지 받게 됐고, 특히 일본과의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야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푸른 악마' 신드롬도 생겨났어요. 야구 국가대표팀 핵심 선수들이 대부분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뛰고 있었다는 점도 큰 힘이 됐습니다. 이는 주요 선수들이 해외 리그에 진출한 축구 국가대표팀과는 다른 부분이었죠.

    국제대회 성적만큼 중요했던 것은 KBO의 구조적 변화였어요. 2011년부터 FA(자유계약선수) 제도*가 개선되면서 스타 선수들의 구단 이동이 활발해졌고, 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 일정 기간 이상 뛴 선수가 원하는 구단과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는 제도

    2008 베이징 올림픽 우승을 차지한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 / 사진:Danny Moloshok

    전 경기 중계 시대 개막

    국제대회 성적만큼 중요한 변화는 2008년부터 프로야구 전 경기 중계가 이뤄졌다는 점이에요. 이전에는 각 방송사의 중계가 모든 경기를 커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2008년부터 Xports가 중계권을 얻으면서 케이블 4사(MBC ESPN, SBS Sports, KBS N Sports, Xports)가 4개 구장에서 열리는 8팀의 경기를 모두 중계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진 거죠.

    전 경기 중계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프로야구는 미디어 콘텐츠로 다시 한번 진화하게 돼요. 팬들은 포털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모든 경기를 볼 수 있게 됐고, 다양한 경기 하이라이트 콘텐츠도 즐길 수 있었어요. 경기가 끝나자마자 방송사에서 모든 경기의 리뷰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야구 전문 해설진들도 대중적 인지도를 얻게 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프로야구는 다시 500만 관중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때 2000년 이후 처음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한 '만년 하위팀' 롯데의 역할도 컸어요. 이때부터 프로야구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항상 평균 관중 1만 명 이상을 기록했죠.

    케이블 채널의 프로야구 중계 평균 시청률은 0.8~1.2%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어요. 케이블 TV에서 인기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1%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프로야구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뉴미디어 산업이 키운 중계권 성장의 시대

    야구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 덕분에 2011년 프로야구 중계권 수입은 250억 원으로 상승했어요. 전년 대비 50% 늘어난 수치죠. 입장료 수입도 역대 최고인 551억 원을 넘겼고, 스폰서십 수입 역시 전년보다 40% 증가한 7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1982년 2억 8,000만 원으로 출발했던 프로야구 중계권료는 2022년 기준 연간 760억 원까지 올랐어요. 이 중 뉴미디어 중계권료만 220억 원이었는데, 이 금액은 2022년 K리그(112억 원), 프로농구(30억 원), 프로배구(60억 원)의 중계권료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았죠.

    2024년 프로야구 미디어 시장은 또 한 번 도약을 이뤘습니다. 지상파와 스포츠 채널 방송사들은 경영 악화로 인해 2021년과 동일한 540억 원에 중계권 계약을 연장했지만, OTT 서비스 ‘티빙’을 운영하는 CJ ENM이 450억 원을 지불하면서 프로야구 뉴미디어 중계권 사업자가 됐어요.

    덕분에 2024년 방송사와 뉴미디어가 지불한 전체 중계권료는 990억 원까지 올랐어요. 이 금액은 10개 구단에 고르게 분배되기 때문에, 한 구단이 약 99억 원을 수입으로 가져가게 되죠. 이는 프로야구 톱클래스 선수 6~7명의 연봉을 합친 것과 비슷한 수준이에요. 프로야구 뉴미디어 중계권은 2026 시즌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피크닉과 콘서트로 진화한 관람 경험의 확장

    코로나 팬데믹은 야외 체험형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였습니다. 프로야구는 이 변화의 가장 큰 수혜자였죠. 야구는 경기를 보면서 음식을 먹고 마시는 데 잘 어울리는 종목이에요. 여기에 프로야구 특유의 응원 문화가 더해지면서 매력이 커졌죠.

    이제 젊은 팬들은 야구장을 '야구만 보는 곳'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친구들과 야외에서 이야기하고, 응원가를 따라 부르고, 음식을 즐기는 피크닉과 콘서트가 결합된 다목적 공간에 가깝습니다. 즉, 팬들은 더 이상 ‘경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소비하고 있는 셈입니다.

    젊은 팬들의 다양한 체험이 하나의 트렌드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프로야구 경기장의 변화도 큰 역할을 했어요. 2010년부터 프로야구팀 홈구장 가운데 무려 5개가 신축됐고,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등은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변화 덕분에 젊은 세대는 야구장을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공간’으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게다가 신축 구장을 지은 구단들의 성적이 향상되면서 지역 팬들의 관람 욕구도 더 커졌어요.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총 입장 수입은 2022년 900억 원에서 2024년 1,594억 원으로 증가했고, 2025년에는 2,0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2014년에 개장한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 사진: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포함한 구단 기념품 판매 수입도 크게 늘었습니다. 2024년 기아 타이거즈의 기념품 판매 수입은 전년 대비 무려 340% 증가했고, 이 가운데 팀의 인기 스타 김도영 선수 유니폼 판매액은 110억 원이나 됐어요.

    기념품 판매가 늘어난 데에는 프로야구의 폭발적 인기뿐 아니라, 아이돌 문화에 익숙한 MZ세대의 소비 패턴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프로야구가 국내 다른 프로스포츠보다 여성 팬 비율이 훨씬 높다는 사실이에요. 2025년 프로야구 팬 가운데 여성 비율은 약 57.5%로 추산됩니다. 이 역시 기념품 판매 증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죠.

    경기력 너머에서 만들어진 팬덤의 힘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 야구가 국제대회에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고, 프로야구 경기 퀄리티도 예전만 못하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어요. 선수 수급 문제도 심각합니다. 고교야구가 쇠퇴하면서 유소년 야구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주요 스타 선수들의 MLB 진출로 인한 공백도 우려되는 상황이죠. 경기 시간이 평균 3시간을 넘어서면서 짧은 콘텐츠에 익숙한 MZ세대의 집중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프로야구의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커요. 지금 야구장을 찾는 팬들은 경기 자체보다 경기장에서의 체험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죠.

    2025년 KBO가 실시한 신규 관람자 조사에서도 이런 흐름이 확인됩니다. 신규 관람자들이 야구장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응원 문화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고(33.8%), 그다음으로는 치맥 등 먹거리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어서였어요(19.9%). 다시 말해, 응원과 F&B 문화를 중심으로 한 야구장만의 체험 요소가 관람을 시작하게 만든 가장 큰 동기라고 볼 수 있어요.

    2025년 KBO가 공개한 포스트시즌 시청 데이터를 보면, 가을야구 누적 시청자 수는 2,687만 명을 넘었습니다. 산술적으로는 세대당 1명꼴로 올 시즌 가을야구를 시청한 셈이죠. 국내 어떤 프로 스포츠도 따라오기 어려운 이 엄청난 시청자 규모는, 프로야구가 젊은 세대를 넘어 중장년층까지 폭넓은 소구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프로야구 팬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40년 넘게 지역 정체성과 세대 경험, 그리고 진화하는 미디어 생태계가 만들어낸 구조적 성과죠. 1,200만 관중 시대의 비결은 바로 오랜 시간의 축적에 있습니다. 이렇게 쌓여온 문화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기대해봐도 좋겠습니다.


    Edit 윤동해 Graphic 이은호 윤자영

    이종성 에디터 이미지
    이종성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 스포츠 기자로 일하던 중, 스포츠가 사회문화 현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늦은 나이에 영국 DMU(드몽포트) 대학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야구의 나라》, 《스포츠문화사》, 《세계사를 바꾼 월드컵》과 《A History of Football in North and South Korea: c. 1910~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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