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볼은 어떻게 지상 최대 스포츠 이벤트가 됐을까?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는 아메리칸 풋볼, 흔히 미식축구라고 불리는 종목입니다. 이 종목 최고 프로 리그인 NFL(내셔널 풋볼 리그)의 결승전 슈퍼볼(Super Bowl)은 단순한 경기가 아닙니다. 개최 도시에 약 2조 원의 관광 특수를 안기고, 미국 전역에 53조 원에 달하는 경제 파급 효과를 일으키는 지상 최대 스포츠 이벤트죠.
단일 경기 중계권료와 광고비만으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 머니 메이커, 슈퍼볼은 어떻게 전 세계 팝스타들이 서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이자, 자본주의의 꽃이 될 수 있었을까요?

2006 슈퍼볼에서 MVP를 수상하며 한국에 NFL을 널리 알린 한국계 미국인 선수 하인스 워드 / 사진: Reuters
대학 스포츠에서 출발한 아메리칸 풋볼의 탄생
아메리칸 풋볼의 뿌리는 19세기 말 미국 유수의 명문 대학들이 모여 있는 아이비리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869년 러트거스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의 경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스포츠는 1880년대 예일 대학의 코치 월터 캠프가 스크리미지 라인*과 다운 시스템** 같은 현대적 규칙을 정립하며 본격적인 틀을 갖추게 됩니다. *공격과 수비 팀이 대치하는 가상의 선 ** 공격팀이 4번의 기회 안에 10야드(약 9m) 이상 전진해야 공격권을 유지하는 규칙
흥미로운 점은 아메리칸 풋볼이 보여주는 철저한 포지션 분화입니다. 각자의 역할이 명확히 나뉘고 전술적 협업이 필수적인 이 종목은 미국을 세계 최고의 산업 강대국으로 키운 분업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미국인의 정체성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대학 풋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1920년에는 프로 리그가 탄생했고, 1922년부터는 NFL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됩니다. 본격적인 전환점은 1960년대였습니다. 1960년 AFL(아메리칸 풋볼 리그)이라는 경쟁 리그가 등장하며 치열한 선수 영입 경쟁이 벌어졌고, 결국 1966년 NFL과 AFL은 합병에 합의하게 됩니다. 이 합병의 결과로 1967년, 첫 슈퍼볼이 열렸습니다.
슈퍼볼이라는 명칭은 1968년 2회 대회부터 사용됐습니다.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구단주 라마 헌트가 딸이 가지고 놀던 탱탱볼(Super Ball)에서 영감을 받아, Ball과 발음이 비슷한 Bowl을 붙여 사발 모양 경기장을 표현한 것이죠. 이 재치 있는 제안은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이벤트 이름이 됐습니다.

미국 대학 스포츠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대학 풋볼 리그 / 사진: Reuters
NFL이 추구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NFL이 압도적인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평등에 기초한 리그 설계에 있습니다. 1994년부터 시행된 하드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제)은 특정 부자 구단이 우수한 선수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했습니다.
엄격한 전력 균형 덕분에 팬들은 “우리 팀도 언제든 우승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됐고, 실제로 하드 샐러리캡 도입 이후 슈퍼볼 3연패를 달성한 팀은 단 한 곳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하드 샐러리캡 시스템은 팬층의 고른 분포로 이어졌고, 2025년 기준 리그 전체 티켓 판매율 97.6%라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냈습니다.
2025년 홈구장 평균 관중 1위 팀은 댈러스 카우보이스로 약 9만 3,000명을 기록했고, 최하위 시카고 베어스도 약 5만 8,000명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댈러스의 홈구장 수용 인원이 10만 명, 시카고가 6만 2,50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두 팀 모두 경기장을 거의 가득 채운 셈입니다. 격차는 팬덤의 차이라기보다 경기장 규모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였죠.

평균 관중 1위 팀 댈러스 카우보이스가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AT&T 스타디움 / 사진: ZUMA Press Wire
슈퍼볼 광고비가 천문학적으로 오르는 이유
슈퍼볼의 가치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는 단연 광고비입니다. 1967년 첫 대회 당시 4만 달러 수준이었던 30초 광고비는, 2025년 평균 800만 달러(약 117억 5,000만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총 광고시간이 약 51분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광고비는 1조 2,000억 원에 이릅니다.
2025년 슈퍼볼 시청자 수는 1억 2,771만 명이었습니다. 이는 1967년 2,443만 명에 비해 약 6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죠. 단일 경기로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시청자를 기록한 이벤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시청자 수만으로는 슈퍼볼 광고비의 비밀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보다 시청자는 적지만, 광고비는 훨씬 비싸기 때문이죠. 슈퍼볼 광고가 비싼 진짜 이유는 시청자들이 광고를 집중해서 찾아본다는 점에 있습니다. 일반 스포츠 경기에서는 광고 시간에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슈퍼볼에서는 광고만 보기 위해 TV 앞에 앉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정도죠.
슈퍼볼 광고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애플의 '1984' 광고를 선보인 1984년부터입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을 모티브로 IBM 독점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이 광고는 단순한 제품 홍보를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았고, 이후 슈퍼볼 광고는 기업들이 창의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겨루는 격전장이 되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광고로 평가받는 애플의 1984 광고 스틸컷
슈퍼볼 광고가 이처럼 특별해진 데는 구조적 요인도 작용했습니다. 먼저 시청자 대부분이 미국인이라는 점입니다. 참여하는 60여 개 업체에게 슈퍼볼은 미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1년에 단 한 번뿐인 골든타임이죠. 게다가 하프타임이 약 30분으로 길어 광고 시간도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광고 자체가 문화적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슈퍼볼 다음날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올해 최고의 슈퍼볼 광고'로 회자되면 그 자체로 엄청난 추가 홍보 효과를 얻으니까요.
이런 환경 속에서 광고주들은 더 화려한 스케일과 더 높은 실험성으로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기 위해 경쟁합니다. 영상미가 떨어지거나 스토리가 부족한 광고는 금세 잊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수백억 원을 투자해서라도 최고의 작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 결과 광고의 완성도는 계속 높아지고, 시청자들의 집중도 역시 함께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지속적인 광고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
미국에서 당대 최고의 뮤지션으로 인정받으려면, 슈퍼볼 하프타임 쇼 출연 경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 롤링 스톤즈, 폴 매카트니, 레이디 가가, 비욘세 등 전설적인 스타들은 모두 이 무대를 거쳐갔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하프타임 쇼가 이렇게 주목받았던 건 아닙니다. 초기에는 대학 마칭 밴드*가 소박하게 하프타임을 채웠습니다. 변화는 1990년대에 시작됐습니다. 경쟁 방송사들이 슈퍼볼 하프타임 시간대에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하며 시청률 경쟁을 벌이자, NFL은 1991년 뉴키즈 온더 블록을 시작으로 슈퍼스타들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 행진하며 악기를 연주하는 미국 대학의 관악대
NFL은 1993년 마이클 잭슨의 공연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하프타임 쇼를 본격적으로 상업화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NFL이 출연 뮤지션에게 출연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대신 밴드와 스태프는 물론, 가족과 친구를 포함한 모든 수행원의 경비만 부담합니다. 그럼에도 뮤지션들이 기꺼이 무료 공연에 나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프타임 쇼 출연 소식만으로도 음원 차트가 급상승하고, 1억 명 이상이 지켜보는 무대는 그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홍보 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2025 슈퍼볼 하프타임 쇼로 전 세계 음원 차트를 휩쓴 켄드릭 라마 / 사진: Imago Images Sports
초기 하프타임 쇼의 스폰서십 가격은 약 15억 원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하프타임 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폰서십 가격은 50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타이어 제조회사 브리지스톤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연간 약 150억 원, 펩시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361억 원을 스폰서십 비용으로 지출했습니다.
2023년부터는 애플 뮤직이 스폰서로 나서며 연간 735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음악 스트리밍 시장에서 스포티파이와 치열하게 경쟁 중인 애플 뮤직에게 이 투자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2025년 켄드릭 라마의 공연은 1억 3,350만 명이 시청하며 1993년 마이클 잭슨 이후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기 때문이죠.
이제 FIFA 역시 슈퍼볼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는 6월 열릴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에서 사상 첫 하프타임 쇼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축구의 15분 하프타임 안에, 30분 이상이 소요되는 슈퍼볼 수준의 쇼를 구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FIFA가 자신들의 규칙을 지키면서 어떤 묘안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미국인들의 버킷리스트 슈퍼볼 직관
슈퍼볼 입장권 가격 역시 상상을 초월합니다. 2025년 기준 평균 입장권 가격은 약 950만 원이었고, 가장 저렴한 좌석도 44만 원에 달했습니다. 이마저도 경기장 맨 꼭대기 층에 위치해, 실제로는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봐야 할 정도입니다.
이 금액은 미국 중산층에게도 부담스러운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풋볼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은 슈퍼볼 직관을 일생일대의 기회로 여깁니다. NFL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이 꿈을 꾸는 사람은 늘어나고, 티켓 가격은 계속 오르지만 관중석은 늘 가득 찹니다.
실제로 슈퍼볼 입장권 총 수익은 2010년 약 900억 원에서 2025년 약 2,400억 원으로 15년 사이 2.7배 증가했습니다. 7만~8만 명 규모의 경기장이 매년 거의 만석을 기록하면서 티켓 가격 상승이 곧바로 수익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가 완성된 것이죠.

하루 만에 맥주 24억 잔이 팔리는 슈퍼볼 경제 효과
2025년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제59회 슈퍼볼의 개최지 경제 효과는 약 1조 8,100억 원으로 추산됩니다. 이 가운데 절반은 외지에서 몰려든 팬들이 만들어낸 관광 특수였습니다. 10만 명이 넘는 팬들이 개최지를 찾았고, 이 중 92%가 평균 4일간 머물렀습니다. 그 결과 호텔 공실률은 4%에 불과했고, 슈퍼볼 준비 과정에서만 1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새로 생겨났습니다. 세수 증대 효과 역시 1,000억 원을 훌쩍 넘었습니다.
막대한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달리, 슈퍼볼은 기존 시설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미국의 도시들은 슈퍼볼 유치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과거에는 32개 NFL 구단의 투표로 개최지를 정했지만, 경쟁이 과열되자 2018년부터는 NFL이 도시들과 장기 협상을 통해 개최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슈퍼볼 당일의 소비 규모도 놀랍습니다. 2025년 슈퍼볼 당일 미국에서는 맥주 12억 리터, 치킨 윙 14억 7,000개, 감자 칩 1,900만 개, 피자 290만 개가 팔렸습니다. 슈퍼볼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맥주가 소비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슈퍼볼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치킨 윙 / 사진: Imagn Images
슈퍼볼에는 미국의 역사가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메리칸 풋볼 자체가 영국의 럭비에서 독립해 만들어진 스포츠입니다. 19세기 말 미국 대학들이 영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며 탄생시킨 아메리칸 풋볼은 문화적 독립의 상징이었죠.
슈퍼볼 대표 음식 치킨 윙에는 더 아픈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백인 농장주들이 버린 닭 날개를 흑인 노예들이 모아 만들어 먹던 것이 1980년대 레스토랑과 바의 인기 메뉴가 되었고, 짜고 매운 소스가 맥주 판매를 늘리는 효과 덕분에 슈퍼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굶주림 속에서 태어난 음식이 미국 최대 축제의 주인공이 된 셈입니다.
2026년 슈퍼볼이 열릴 경기장 역시 미국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캘리포니아주 산타 클라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은 19세기 골드러시 시대 광부들을 위해 탄생한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튼튼한 청바지로 황금을 찾아 나선 개척자들의 꿈을 지탱했던 리바이스는 이제 새로운 꿈을 좇는 미국인들이 모이는 성지가 되었죠.
평등을 추구하는 리그 철학, 광고가 문화가 된 독특한 생태계, 그리고 모든 미국인의 꿈이 된 축제. 슈퍼볼은 이 모든 요소를 품고 성장했기에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지상 최대 스포츠 이벤트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Edit 윤동해 Graphic 조수희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 스포츠 기자로 일하던 중, 스포츠가 사회문화 현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늦은 나이에 영국 DMU(드몽포트) 대학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야구의 나라》, 《스포츠문화사》, 《세계사를 바꾼 월드컵》과 《A History of Football in North and South Korea: c. 1910~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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