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테니스 대회

윔블던 테니스 대회가 전통을 지키며 돈도 잘 버는 비결

이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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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윔블던을 상징하는 하얀 유니폼

  • 2025 윔블던 테니스 대회가 지난 6월 30일 개막했습니다. 1877년에 시작돼 올해로 무려 147년째를 맞은 이 대회는 오랫동안 영국 아마추어 스포츠의 상징으로 여겨졌죠.

    하지만 귀족적인 품위와 전통을 고집하던 윔블던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돈과 거리를 두던 대회가 이제는 수익을 아주 잘 내는 스포츠 비즈니스로 변신한 겁니다. 흰 유니폼과 잔디 코트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말이죠.

    잔디 코트 위에서 하얀 유니폼을 입은 두 선수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2025 윔블던 경기 / 사진: 로이터

    윔블던을 상징하는 하얀 유니폼

    스포츠에서 아마추어는 돈을 받지 않고 경기에 나서는 선수를 뜻해요. 그런데 19세기 영국에서 이 단어는 좀 더 복잡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아마추어 선수를 ‘젠틀맨 아마추어(Gentleman Amateur)’라고 불렀는데, 여기에서 ‘젠틀맨’은 ‘신사’라기보다 ‘귀족’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거든요.

    이미 많은 부를 축적한 젠틀맨 아마추어들은 스포츠 경기를 하면서 돈을 받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들이 주도한 영국 아마추어리즘은 생계를 위해 돈을 받고 경기에 나서야 하는 선수들을 배제하거나 차별하기 시작했어요. 노동자 계층의 선수들은 페어 플레이와 매너가 중심을 이루는 아마추어 정신을 갖추기 힘들다는 사회적 인식까지 생겨났죠.

    젠틀맨 아마추어들은 하얀 유니폼을 즐겨 입었습니다.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컬러가 하얀 색이라고 믿었거든요. 그래서 이들은 ‘백합 같은 하얀 색(Lily White)’을 젠틀맨 아마추어의 상징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1880년 대회부터 지금까지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이 하얀색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규정이 생겨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윔블던은 아이보리 색이나 크림 색의 유니폼도 허용하지 않아요. 오직 완전한 흰색만 입을 수 있어요.

    초록빛 잔디 코트는 권위의 상징

    윔블던이 4대 그랜드슬램* 중 유일하게 잔디 코트를 고수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US 오픈과 호주 오픈은 하드 코트(콘크리트&고무 코트), 프랑스 오픈은 클레이 코트(흙 코트)에서 열리지만, 윔블던은 지금도 잔디 위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어요.

    * 4대 그랜드슬램: 테니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4개 대회를 뜻해요. 호주 오픈(1월), 프랑스 오픈(5월), 윔블던(7월), US 오픈(9월)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물론 영국은 잔디가 잘 자라는 나라예요. 하지만 이건 단순한 기후 문제가 아닙니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잔디에 대해 이렇게 말했죠. “나는 부자이고, 힘이 있다. 그리고 이 푸르른 사치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땅과 농노를 소유하고 있다.” 잔디는 권위의 상징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왕의 궁전과 공작의 대저택은 물론 대통령과 수상들이 집무를 보는 곳에서도 잔디밭이 중요한 공간이 되었죠.

    19세기 영국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던 ‘젠틀맨 아마추어’들도 같은 이유로 잔디밭을 사랑했어요. 당연히 이들이 즐기던 테니스도 잔디에서 열려야 했고, 윔블던은 이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코트 위 잔디는 8mm로 깎아야 가장 이상적인 경기가 펼쳐진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를 맞추기 위해 윔블던 잔디 관리팀은 매일 새벽부터 잔디를 손질합니다.

    잔디에 대한 집착은 협회 이름에서도 드러납니다. 영국 테니스를 관장하는 공식 조직 이름은 ‘Lawn Tennis Association(LTA)’, 직역하면 ‘잔디 테니스 협회’입니다. 경기 방식이 아니라 코트가 잔디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종목 이름부터 정한 셈이죠. 그만큼 이들은 잔디에 진심이었어요.

    아마추어리즘의 상징 윔블던이 프로에게 문을 열게 된 이유

    젠틀맨 아마추어들이 주도하던 LTA의 목표는 중상류층이 즐기던 테니스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며 윔블던을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로 만드는 것이었어요. 이를 위해 윔블던에는 오직 아마추어 선수만 출전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 제도는 점점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 시작은 영국의 테니스 영웅 프레드 페리입니다. 프레드 페리는 1934년부터 3년 연속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했지만,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1936년에 프로로 전향하고 미국으로 귀화하죠. 라켓과 훈련비까지 스스로 감당해야 했던 아마추어리즘의 벽을 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후 그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 ‘프레드 페리’도 탄생합니다. 당시 영국 사회는 그를 ‘아마추어리즘을 배신한 상업주의자’로 바라봤죠.

    영국의 두 테니스 영웅, 앤디 머리와 프레드 페리 / 사진: 로이터

    프레드 페리가 떠났지만, 윔블던은 여전히 전통을 고수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 대회에는 20만 명 이상의 관중이 몰렸고, 1955년 대회에는 27만 명이 찾을 정도로 대회는 흥행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63년,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호주 출신 로드 레이버가 프로로 전향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레이버를 따라 여러 스타 선수들이 아마추어 대회를 떠나자, 윔블던은 점점 매력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초반까지는 40만 명의 구름 관중이 몰렸던 윔블던 대회의 관중 수는 1965년 27만 명까지 떨어졌고, 입장 수입도 크게 줄었습니다. 레이버 수준의 경기를 아마추어 선수에게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결국 윔블던은 1968년 대회부터 프로 선수의 출전을 허용합니다. ‘젠틀맨 아마추어’의 자부심이 경제적 현실 앞에서 한계를 드러낸 것이죠. 이때부터 윔블던은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 출전하는 오픈(Open) 대회로 전환됐고, 선수들에게 상금도 지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윔블던의 결정에 따라 다른 그랜드슬램 대회들도 같은 해 모두 오픈 대회로 바뀌게 됩니다.

    윔블던의 가치가 빛나는 해외 중계권 수입

    오픈 대회로 전환된 이후, 윔블던은 상업화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어요. 특히 스포츠 비즈니스가 급성장하던 1980년대 후반부터는 경영 목표도 명확해졌죠. 그건 바로 테니스 대회 매출 1위를 자랑하던 US 오픈을 따라잡는 것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격차는 꽤 컸습니다. 1985년 기준으로 US 오픈의 매출은 약 40억 원, 윔블던은 그 절반도 안 되는 약 18억 원 수준이었거든요.

    하지만 2023년에는 두 대회의 매출 차이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US 오픈은 약 7,013억 원, 윔블던은 약 6,808억 원의 수입을 올리며 바짝 따라붙었어요. 여전히 US 오픈이 근소하게 앞서긴 하지만, 영국과 미국의 시장 규모 차이를 고려하면 윔블던은 매우 효율적인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두 대회가 가장 크게 다른 부분은 중계권 수입 구조예요. US 오픈은 미국 내 중계권 수입만 연간 약 1,023억 원에 달하지만, 윔블던은 영국 내에서 약 759억 원 정도에 그쳐요. 이 차이는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영국의 제도에서 비롯됩니다. 윔블던은 전체 가구의 95% 이상이 무료로 시청할 수 있어야 하는 경기로 지정돼 있어서, 반드시 공영방송 BBC 같은 지상파에서만 중계해야 하거든요. 민영 방송 간의 경쟁이 제한되다 보니, 중계권 수익을 공격적으로 높이기 어려운 구조예요.

    윔블던은 이 약점을 해외 시장을 통해 보완하고 있어요. 윔블던 전체 매출에서 중계권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56%인데, 44%가 해외 중계권 수입이에요. 금액으로는 약 3,000억 원에 달하죠. 윔블던은 이렇게 자국에서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해외에서는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어요. 중계권 경쟁이 불가능한 영국 시장의 한계를 글로벌 시장으로 메운 것이죠. 그래서 윔블던은 ‘해외 시청자들이 먹여 살리는 대회’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광고수는 최소한 광고비는 최대한

    2024년, 윔블던의 스폰서십 수입은 처음으로 US 오픈을 넘어섰어요. 4대 그랜드슬램 가운데 스폰서십 매출 규모 1위에 오른 건 윔블던, 그 뒤를 US 오픈, 프랑스 오픈, 호주 오픈이 이었죠.

    업계에서는 윔블던이 스폰서십으로 US 오픈을 앞지르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해왔습니다. 윔블던의 스폰서로 참여할 수 있는 기업은 단 17개뿐이고, 이들조차 경기장에서 로고는 최소한으로만 노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윔블던 경기장에 가보면 네트나 코트 바닥은 물론, 주요 카메라 앵글 어디에도 큼지막한 스폰서 로고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는 관중들이나 시청자들이 경기를 펼치는 선수와 녹색 그라운드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윔블던의 의지와 자존심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대신 윔블던은 네트와 코트에 기업 로고가 최소한으로 노출되어야 한다는 제한된 환경을 마케팅 포인트로 바꿨어요. 한정된 최소한의 광고 기회와 ‘클린 코트’를 고수하는 철학을 프리미엄 전략으로 어필한 거죠.

    가장 큰 스폰서 비용을 내더라도 최소한으로 경기장에 노출되는 바클레이스 은행 로고 / 사진: 로이터

    윔블던 스폰서 가운데 눈길을 끄는 기업은 3개입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바클레이스 은행은 2023년 기준 연간 324억 원 규모의 후원 계약을 맺었고, 이는 윔블던 전체 스폰서십 중 단일 기업으로서 가장 큰 금액입니다. 브렉시트 이후 치열해진 영국 금융시장 경쟁 속에서, 바클레이스는 윔블던을 통해 자국 내 상징성과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어요.

    IBM은 1990년부터 윔블던과 함께해온 오랜 후원사입니다. 최근에는 생성형 AI ‘왓슨X’를 활용해 윔블던의 디지털 경험을 한층 끌어올렸죠. 이를 활용한 대표적인 서비스가 ‘캐치 미 업(Catch Me Up)’입니다. 이 서비스를 통해 윔블던 공식 웹사이트와 앱에서는 경기 전 프리뷰, 경기 중 하이라이트, 경기 후 리뷰까지 모든 콘텐츠를 AI가 자동으로 생성하고, 이용자의 국적과 관심사에 맞춰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어요. IBM과의 스폰서십은 전통이 강한 윔블던 대회에 기술 혁신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불어 넣고 있습니다.

    2016년 처음 윔블던 후원사로 참여한 에미레이츠 항공도 주목할 만한 스폰서입니다. 에미레이츠는 아스널,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 등 유럽 주요 축구 클럽의 메인 스폰서이고, 2006년부터 2019년까지는 파리 생제르맹(PSG)의 공식 셔츠 스폰서이기도 했어요. 현재 PSG는 카타르 항공이, 맨체스터 시티는 에티하드 항공이 메인 스폰서를 맡고 있습니다. 에미레이츠는 축구처럼 대중성이 높은 종목뿐 아니라,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윔블던을 통해 유럽 상류층과의 브랜드 접점을 강화하고 있어요. 중동 항공사 간 글로벌 스폰서십 경쟁에서, 에미레이츠는 윔블던을 통해 ‘고급 스포츠’ 영역에서 차별화를 꾀하는 거죠.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윔블던을 즐기는 사람들

    윔블던은 직접 관전하기 어려운 대회예요. 주요 코트의 관중석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인데요. 전체 관중 수는 약 50만 명으로, US 오픈이나 호주 오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요.

    그래서 윔블던은 1924년부터 퍼블릭 발롯(Public Ballot) 제도를 도입해왔어요. 이는 티켓을 단순 판매하는 대신, 신청자 중 추첨을 통해 구매권을 부여하는 시스템이에요.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주기 위한 장치죠. 당첨 확률은 약 10% 정도라고 알려져 있어요.

    미리 예매하는 방법 외에도, 윔블던은 일부 입장권을 당일 현장 선착순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줄 서기(queuing) 문화는 근대 영국 사회의 전통 중 하나로, 지금도 경기장 앞 언덕에서 길게 늘어선 팬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윔블던 힐에 앉아 경기를 즐기는 테니스 팬들의 모습 / 사진: 로이터

    줄을 서서 구매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티켓은 ‘그라운드 티켓’이에요. 이 티켓으로 주요 코트 입장은 불가능하지만, 윔블던 힐(Wimbledon Hill)이라 불리는 언덕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관람할 수 있어요. 딸기와 크림을 먹으며 경기를 응원하는 이 풍경은 윔블던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 잡았어요. 이 공간은 하루 최대 4만 2천 명까지 수용할 수 있습니다.

    윔블던 힐이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잡은 데는 사실 또 다른 이유가 숨어 있어요. 1936년 프레드 페리 이후 오랜 시간 영국 남자 선수가 우승하지 못하자, 팬들은 언덕에 함께 모여 열띤 응원을 이어간 것이죠. 그 염원은 2013년, 앤디 머리가 77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현실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라진 선심과 새로운 시스템

    2025년 윔블던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선심이 사라졌다는 점이에요. 호주 오픈(2021), US 오픈(2022)에 이어 윔블던도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도입하며 선심* 없는 코트를 운영하게 된 거죠.

    * 선심: 공이 경기장 선 안팎으로 벗어났는지를 판단하고, 이를 손짓으로 알리는 심판

    윔블던에서 선심은 단순한 경기 운영 요원이 아니었어요. 후원사 랄프 로렌의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지키던 선심들은 전통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이 변화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엇갈려요. “윔블던의 위대한 전통이 무너졌다”고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고, “이제는 더 이상 라인콜을 두고 벌어지는 불필요한 다툼이 사라질 것”이라며 환영하는 팬들도 있었어요.

    사라진 선심은 전통과 변화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진화해온 윔블던의 또 다른 단면이에요. 흰색 유니폼, 잔디 코트, 후원사 수 제한 같은 고유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경기 운영과 수익 구조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유연하게 바꿔왔죠. 덕분에 윔블던은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이 정교하게 공존하는 스포츠 비즈니스의 상징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Edit 윤동해 Graphic 이은호 최서윤

    이종성 에디터 이미지
    이종성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 스포츠 기자로 일하던 중, 스포츠가 사회문화 현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늦은 나이에 영국 DMU(드몽포트) 대학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야구의 나라》, 《스포츠문화사》, 《세계사를 바꾼 월드컵》과 《A History of Football in North and South Korea: c. 1910~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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