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포뮬러 원 레이싱 머신

모두를 위한 스포츠가 된 F1(포뮬러 원)

이종성

10

  • 부자들의 놀이터이자 레이싱 팀의 머니 게임

  • F1은 부자들이 즐기는 고급 취미이자, 해외 뉴스에서나 간간이 접하는 낯선 스포츠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브래드 피트가 F1 머신을 몰고 달리는 영화가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휩쓸고 있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는 ‘레이싱을 몰라도 재밌다’는 반응을 얻고 있어요. <F1 더 무비>는 개봉 한 달 만에 5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7,000억 원 가까운 수익을 기록하며 역대급 흥행작이 됐습니다.

    F1은 더 이상 소수를 위한 고급 취향이 아닙니다. 콘텐츠, 엔터테인먼트, 지역 경제까지 아우르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 산업이 되었죠.

    영화 <F1: 더 무비> 스틸컷 / 사진: Apple TV

    부자들의 놀이터이자 레이싱 팀의 머니 게임

    F1이 오랫동안 ‘부자들의 스포츠’라는 이미지를 굳히게 된 데는 경기장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한 ‘패독 클럽’의 영향이 큽니다. 드라이버와 머신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고, 랍스터와 샴페인을 곁들인 최고급 식사가 제공되는 이 공간은 전 세계 부호들과 셀럽들의 사교장이자 비즈니스 미팅 장소로 활용됩니다.

    입장권 가격은 3일 기준 1인당 약 600만 원. 한 대회에만 4,000명 가까운 VIP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패독 클럽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F1 전체 수입의 약 10%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 맺어지는 후원 계약과 기업 간 거래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말 그대로 ‘부자들의 놀이터’라 불릴 만한 공간이죠.

    모나코 그랑프리 서킷의 패독 클럽 / 사진: 로이터

    이 놀이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건 결국 돈입니다. 최고 시속 350km를 넘나드는 F1 머신을 만들고, 매 시즌 24개 도시를 돌며 레이스를 치르려면 천문학적인 운영비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2019년, 메르세데스 팀이 쓴 운영비는 무려 6,680억 원. 페라리와 레드불도 비슷한 수준이었고, 이들의 운영비는 유럽의 대표적인 부자 축구 클럽 레알 마드리드의 2024-2025 시즌 선수 연봉 총액(4,428억 원)과 비교해도 훨씬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돈을 많이 쓰는 팀이 챔피언이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자연스럽게 F1 챔피언을 향한 팀들의 경쟁은 머니 게임이 되었고, 특정 팀이 우승을 독식하는 구조가 이어졌습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2021년부터 F1은 코스트 캡*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 팀당 한 해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총 지출 한도를 정한 제도로, 2025년 기준으로 F1의 연간 코스트 캡은 약 1,939억 원이에요.

    하지만 제도의 효과는 아직 미미합니다. 머신 개발비, 드라이버 연봉, 팀 내 고액 연봉자 3명의 급여는 코스트 캡 대상에서 제외돼 있고, 팀마다 예외 조항을 활용해 여전히 많은 돈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열사를 통한 아웃소싱, 회계상 지출 축소, 정규직 직원 대신 파트타이머 고용 확대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를 피하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레드불은 제도 시행 이후 정규직 직원 90명을 정리해고하기도 했습니다.

    레드불은 코스트 캡 제도를 도입한 첫해부터 금액을 초과했고, 약 113억 원의 벌금만 낸 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 연속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우승으로 얻는 수익을 고려하면 벌금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리버티 미디어는 어떻게 F1을 대중 스포츠로 바꿨을까

    F1이 대중 스포츠로 거듭나는 데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은 2016년, 미국의 미디어 그룹 리버티 미디어가 F1을 인수하면서부터입니다. 이들은 F1을 ‘부자들의 스포츠’가 아닌 ‘모두를 위한 콘텐츠’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 번째 신호탄은 2017년 F1의 나스닥 상장이었습니다. 리버티 미디어는 주식 시장을 통해 더 많은 자본을 확보하고, 새로운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F1의 성장 기반을 넓혀갔습니다.

    F1의 대중화를 위한 핵심 전략 중 하나는 ‘개방’이었습니다. 기존에는 엄격하게 제한되던 대회 영상 사용을 완화해 팬들이 직접 찍은 장면을 SNS에 자유롭게 올릴 수 있도록 했고, 자체 OTT 서비스인 ‘F1 TV’도 출시했습니다.

    경주용 차량 내부 카메라 뷰, 실시간 데이터 보드 등 다양한 F1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F1 TV

    가장 결정적인 한 방은 2019년 넷플릭스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다큐멘터리 <F1: 본능의 질주(Drive to Survive)>였습니다. F1을 잘 몰랐던 시청자들도 이 시리즈를 통해 드라이버 간 경쟁과 팀 내부의 긴장감을 실감 나게 접할 수 있었고, F1을 하나의 콘텐츠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죠. 시즌 7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시리즈는 F1 관중 수 증가로도 이어졌어요. 2018년 410만 명이던 F1 대회 관중은 2024년 650만 명을 넘겼습니다.

    이 변화는 스폰서십 구조도 바꿔놓았습니다. 기존의 F1 매니아나 부자들이 아닌 대중들이 F1 대회에 큰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F1은 전통적으로 자동차, 에너지, 정유, 명품 브랜드 중심의 후원 구성이 많았습니다. 루이비통, 롤렉스 등이 대표적이었죠.

    하지만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지자, 이제는 소비재 브랜드도 적극적으로 F1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펩시, 하이네켄, 네슬레 같은 기업들이 F1을 새로운 마케팅 무대로 삼았고, 태그호이어는 롤렉스를 대신해 공식 타임키퍼가 되었으며, 아디다스는 메르세데스 팀과 협업을 맺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F1을 보기 시작하자, 다양한 브랜드가 F1을 찾기 시작한 겁니다.

    하이네켄 광고로 가득 찬 F1 서킷 광고판 / 사진: 로이터

    미국인은 F1을 안 본다는 편견을 깬 신의 한 수

    리버티 미디어는 미국 기업답게 F1의 불모지였던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F1을 대중 스포츠로 만들기 위해서는 글로벌 확장이 필수였고,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있었습니다.

    F1은 미국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받던 종목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은 내스카(NASCAR)나 인디카 같은 자국 중심의 레이스를 더 좋아했거든요. 하지만 리버티 미디어는 이 판을 흔들었습니다. 2022년 마이애미, 2023년 라스베이거스에 신규 그랑프리를 신설했고, 특히 라스베이거스에서는 결승전을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 밤에 열어 도시의 파티 문화와 F1을 연결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는 일요일에 결선 레이스를 펼치는 다른 F1 대회와 차별화 되는 부분인데요. 결선 레이스를 토요일 밤에 배치함으로써 라스베이거스 특유의 야간 관광, 파티, 쇼 비즈니스와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2024년 라스베이거스 F1 대회의 총수입은 1조 2,877억 원으로, 이는 내스카나 인디카 전체 연간 수입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평균 티켓 가격은 약 139만 원으로 24개 F1 대회 중 가장 비쌌고, 지역 경제에 미친 영향도 막대했습니다. 단 3일간 라스베이거스가 벌어들인 세금 수입만 620억 원에 달했죠.

    미국에서 F1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중계권료도 크게 상승할 것으로 보여요. ESPN이 지불하는 현재 연간 중계권료는 약 1,254억 원 수준이지만, 넷플릭스와 애플TV가 차기 입찰에 뛰어들며 2배 이상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여기에 2026년부터는 미국 자동차 브랜드 캐딜락이 F1에 참가할 예정이고, 미국 출신 스타급 드라이버가 탄생한다면 F1에 대한 미국 내 열기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F1 수익의 숨은 핵심 레이스 프로모션 비용

    리버티 미디어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대중화 전략과 미국 시장 공략에 성공하면서, F1의 매출 규모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2017년 약 2조 4,800억 원이었던 매출은 2024년 기준 약 4조 7,500억 원으로 늘었죠. 7년 동안 91%나 증가한 셈입니다.

    2024년 F1의 수익 구조를 살펴보면, 중계권료가 전체의 약 33%를 차지해 가장 큰 비중을 기록합니다. 이어서 29%는 레이스 프로모션 비용, 나머지 38%는 스폰서십과 패독 클럽을 포함한 기타 수익으로 구성됩니다.

    이 가운데 ‘레이스 프로모션 비용’은 F1만의 독특한 수익 모델이에요. F1은 전 세계 도시와 계약을 맺고, 그 도시에 대회를 열 수 있는 ‘개최권’을 판매합니다. 대회를 유치하려는 도시나 사업자는 매년 수백억 원에 달하는 비용을 F1에 지불해야 하죠. 이 비용이 바로 레이스 프로모션 비용입니다. 다른 프로 스포츠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중요한 비즈니스 모델이죠.

    2025년 기준, 레이스 프로모션 비용은 대회가 열리는 도시마다 다릅니다.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도시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로, 연간 793억 원에 달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도 각각 764억 원 수준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죠.

    흥미로운 점은, 이들 국가에서 열리는 F1 대회는 관중 수가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바쿠 그랑프리는 연간 7만 5,000명 수준으로 전체 F1 대회 중 최하위권에 머뭅니다. 관중이 적음에도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는, 국가 브랜드 홍보 목적이 크기 때문입니다.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한 중동 국가들은 F1을 통해 자국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거죠.

    전 세계 도시들이수백억을 들여 F1을 유치하는 이유

    F1 대회를 개최하려면 수백억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장기 계약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 도시가 수천억 원에 이르는 비용을 부담하는 일도 흔하죠. 그런데도 전 세계 많은 도시들이 F1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관광 수입과 도시 브랜딩입니다.

    모나코 항구에서 펼쳐지는 F1 경기 모습 / 사진: 로이터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인구 4만 명도 안 되는 도시국가 모나코입니다. 아름다운 항구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나코 그랑프리는 F1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대회로 꼽힙니다. 모나코 그랑프리는 1950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대회 기간 동안 전체 관광 수입의 약 30%를 벌어들일 만큼 경제적 효과도 큽니다. F1 역시 모나코를 특별하게 생각합니다. 상징성과 흥행력이 높기 때문에, 때로는 개최권료를 거의 받지 않거나 276억 원 수준의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만 받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죠.

    싱가포르 역시 F1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도시입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싱가포르 그랑프리는 도심 스트리트 서킷에서 야간에 펼쳐지는 ‘나이트 레이스’로 유명합니다. 루프탑 바나 고층 빌딩에서도 경기를 관람할 수 있어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바뀌죠. 지난 10년간 이 대회를 보기 위해 싱가포르를 찾은 관광객은 약 45만 명, 이들이 쓴 돈은 약 2조 원에 달합니다. 싱가포르 정부가 매년 487억 원의 개최권료를 기꺼이 지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번 실패했던 한국, 다시 F1에 도전할 수 있을까

    한국도 한때 F1 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전남 영암에서 열렸지만, F1에 대한 낮은 인지도, 접근성 부족, 열악한 인프라 탓에 흥행에 실패했고, 높은 개최권 비용(약 480억 원)과 수익성 악화로 2014년부터 대회 개최를 포기했습니다. 영암 F1 대회조직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2010년에는 700억 원, 2011년에는 6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2012년 영암에서 펼쳐진 코리아 그랑프리에 참가한 레드불 팀 / 사진: 로이터

    그런데 최근 인천시가 다시 F1 대회 유치에 나섰습니다. 싱가포르처럼 도심 스트리트 서킷을 고려하고 있고, 이를 위해 인천시는 전체 사업비의 30%를 국비로 지원받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인천은 국제공항과 수도권 접근성이라는 이점을 갖췄고, 무엇보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F1 콘텐츠의 팬층이 꽤 형성됐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F1 대회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 대회입니다. 하지만 F1 대회 개최 여부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문제를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빠르게 하면 안 됩니다. 인천의 F1 대회가 싱가포르 대회와 같은 성공을 거두려면 더더욱 그렇죠. 싱가포르도 F1 대회 유치를 결정하기까지 5~6년 동안 면밀한 검토를 했습니다.

    과연 한 차례 실패를 경험했던 한국에서 F1 대회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Edit 윤동해 Graphic 이은호 이제현

    이종성 에디터 이미지
    이종성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 스포츠 기자로 일하던 중, 스포츠가 사회문화 현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늦은 나이에 영국 DMU(드몽포트) 대학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야구의 나라》, 《스포츠문화사》, 《세계사를 바꾼 월드컵》과 《A History of Football in North and South Korea: c. 1910~2002》 등이 있다.

    필진 글 더보기

    추천 콘텐츠

    지금 인기있는 글

      토스픽 에디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