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속 추천템을 쇼핑하듯 둘러보는 사람

인플루언서 따라 질러버린 새 옷은 정말 내 취향일까?

홍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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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지에서 꼭 사야 하는 쇼핑 리스트 10가지”

  • ’나도 할래’가 취향이 되는 순간

  • 디토 소비, 반품과 라이프스타일 사이

  • “여행지에서 꼭 사야 하는 쇼핑 리스트 10가지”

    얼마 전 독일로 3주간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를 들은 지인들은 궁금해했다. “왜 독일이야?”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독일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행 버킷 리스트에 독일을 넣어본 적도 없었다. 여행지를 결정하기 직전, 우연히 인스타그램 피드에 뜬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 후기에 홀랑 넘어간 것뿐이었다.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공연. 1부 공연이 끝난 인터미션 시간에 로비 스탠드테이블로 삼삼오오 모여 공연 감상 등을 나누며 와인이나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들. 그 안에 섞인 나… 그 인플루언서가 한 멋진 경험을 ‘나도’ 사고 싶었다.

    그렇게 떠난 독일 여행 기간 동안 내 소비나 경험의 다수를 결정한 것도 누군가의 추천이었다. 꼭 마셔야 하는 맥주, 꼭 먹어야 하는 요리, 꼭 가봐야 하는 장소, 꼭 체험해야 할… 전부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충족돼야 ‘제대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여행 도중 새로운 도시에 방문할 때마다 챗GPT에게는 종종 이렇게 물었다. “여기서 나랑 나이대가 비슷한 여자들이 꼭 사는 여행 기념품이 뭐야?” 챗GPT가 건넨 후보 중 제일 센스 있어 보이는 기념품을 골라 지인들 선물을 샀다.

    출발 전 여행지에서 읽을 책을 고를 때는 최애 책 유튜브인 ‘민음사TV’ 채널을 들락거렸다. 평소에도 민음사의 각 분야별 편집자가 추천하는 도서들을 종종 골라 읽곤 했다. 이름만 알고 있던 작가 에드거 앨런 포나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읽은 것도 이 채널 덕분이었다. 하나둘 읽은 책을 갖고 “이게 요즘 내 취향이야”라며 은근히 과시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역시나 민음사TV의 추천 책 중 하나인 조예은 작가의 《적산가옥의 유령》과 함께했다.

    이쯤 되니 내 고유의 취향이라고 할 만한 게 있기는 한가 싶었다. 유명 인플루언서나 유튜버, 연예인 등 타인의 그럴듯한 취향을 추종해 소비하는 ‘디토ditto(나도 그래) 소비’ 트렌드 속에서 나는 거대한 디토 그 자체였다.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개개인의 취향은 그게 메이저한 취향이든 마이너한 취향이든 가족·친구·문화권 등 내가 속한 집단과의 오랜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 결과물이 아니던가.

    심리학에서는 이를 ‘소셜 프루프Social Proof’, 즉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나 선택을 따라함으로써 불확실한 상황에서 올바른 행동 방식을 추구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취향은 애초에 관계적이다. 나도 여행을 결정할 때든, 책을 고를 때든, 옷을 살 때든 내가 따라해보고 싶은 많은 이들의 취향을 쫓곤 한다. 하지만 ‘남의 취향’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경험들을 쌓아 나가며 내 취향의 탑을 새롭게 세우고 있다고 믿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에는 여기 미처 다 적진 못하지만 실패한 디토 소비의 경험들도 한 몫씩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 유기농 레몬즙, 리들샷, 니트 원피스 등…)

    SNS로 타인의 삶을 실시간으로 빠르게 스캔할 수 있는 요즘, 따라하고 싶은 멋진 취향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만큼 디토 소비의 규모는 갈수록 더 크고 다양해지는 추세다. 100만 유튜버가 추천한 맛집, 유명 연예인이 감명 깊게 읽은 책, 헐리웃 스타가 자주 쓰는 텀블러 등은 소문이 나는 순간 오픈런 필수·베스트셀러·품절템이 되는 세상이다.

    독일 베를린에 갔을 때는 말차라떼가 한창 유행이었다. 인플루언서들의 후기를 타고 전 세계에 말차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리는 얼핏 들었는데, 베를린 카페에서 젊은 여성들이 들고 있는 음료 대부분이 정말 말차라떼였던 것이다. 괜히 나도 평소 한국에선 잘 안 마시지도 않던 말차라떼를 두어 번 주문해 봤다. 맛은 예상한 그대로였지만 내게 중요한 건 ‘나도 그들처럼 해봤다’는 경험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보러 가 샴페인을 마시고, 유행한다는 말차라떼를 마시며 민음사TV가 추천한 책을 읽고, 챗GPT가 추천한 ‘여기서 꼭 사야 하는 기념품’을 사는 동안 내가 쌓은 취향의 탑은 무슨 모양일까.

    ’나도 할래’가 취향이 되는 순간

    디토 소비는 이렇듯 타인의 취향을 사는 행위다. 작년 초쯤 팔로워 10만 명 이하인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시장에 대해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 들은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과거 SNS 사용자들이 특정 계정을 팔로우하는 기준은 대체로 ‘인맥’이었다. 하지만 이 기준이 요새는 ‘취향’으로 바뀌었다. 메가 급 인플루언서는 아닐지라도 내 취향과 결이 맞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을 팔로우하며 소비도 이들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향성이 점차 더 강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취재 당시 이야기를 나눴던 권정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누군가가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주거나 검증해주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하긴 가방 하나, 청바지 하나 사려고 해도 수많은 사이트에 수백 수천 개의 제품이 뜬다. 책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매일 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정보의 양이 174종의 신문을 읽는 수준에 맞먹는다고 소개한다. 정보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개별 정보에 일일이 집중할 시간이 없다. 영향력 있는 인물이 이미 검증을 마친 ‘추천템’을 사는 게 시간은 아끼고, 실패할 확률은 줄이면서 트렌드도 따라갈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헤매지 않고 옳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지름길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의 패션과 머리스타일, 행동 등을 음침하게 따라 하던 웹툰 〈치즈인더트랩〉의 캐릭터 이름을 본뜬 유행어 ‘손민수하다’도 디토 소비의 트렌드를 따라 예전보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많이 벗은 듯하다. 패션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는 브랜드 마케팅 콘텐츠로 ‘탑 아이돌 코디 손민수하기’ ‘손민수처럼 복붙하고 싶은 스타일’ 등을 제목으로 내세워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기도 한다. 얼마 전 대학원 동기들끼리 모인 저녁 자리에서도 한 지인이 다른 지인에게 “폰케이스 예쁘다. 나 이거 손민수해도 됨?”이라고 묻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던 폰케이스 주인을 보며 비슷한 소비 형태들도 시대에 따라 다른 얼굴을 띄게 된다는 걸 새삼 느낀 순간이었다.

    혹자는 이걸 ‘주체적인 소비가 아니다’ ‘개성이 사라지고 있다’며 비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런 측면을 부각해 이 트렌드를 보고 싶지는 않다. 따지고 보면 세대별로 향유하고 기억하는 패션이나 문화 트렌드의 아이콘이 각기 다르듯, 그 시대 가장 멋져 보이는 누군가의 취향을 모방하는 건 과거부터 늘 존재해 왔다.

    오히려 따라하고 싶은 아이콘이 비교적 소수였던 그때와 달리 현재 디토 소비의 아이콘들은 SNS와 각종 플랫폼을 타며 더 개인화·세분화되고 있다.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재사용 소재 가방 브랜드를 알게 돼 구매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또 다른 브랜드의 정보를 얻고, 새로운 인플루언서를 내 팔로우 목록에 추가하기도 했다. 동물권을 보호하는 소비 자체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디토 소비를 따라 찍히는 내 발자국 하나하나가 내 취향과 개성을 반영하고, 또 새롭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과거보다 우리의 면면은 넓디넓은 디토 소비의 선택지 속에서 한층 더 다채로워졌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디토 소비, 반품과 라이프스타일 사이

    물론 그럼에도 어딘가에 찜찜함이 남는 이유는 디토 소비가 만드는 과잉 소비의 굴레 때문일 것이다. 디토를 이끄는 주요 동력 중 무시할 수 없는 요소는 ‘나는 이렇게 제법 멋진 취향을 가진 사람이야’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과시욕, 이와 동시에 ‘트렌드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바야흐로 클릭이나 터치 몇 번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시대다. 순간의 감정에 동해 ‘나도 살래’를 얼마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지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언제 샀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처치 불가의 플라스틱 덩어리들을 얼마나 자주 마주했던가.

    책 《디컨슈머》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는 지구가 재생할 수 있는 속도보다 1.7배 빠른 속도로 지구의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물건들의 무게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무게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산 이커머스 플랫폼들의 국내 상륙과 함께 유행한 ‘테무깡’ 콘텐츠가 떠오른다. 말도 안 되는 저가의 상품을 대량 구매한 뒤 하나씩 언박싱하며 후기를 공유하는 이 콘텐츠에서 재미 요소는 ‘뽑기 실패’다. 쉽게 사는 물건은 버리기도 쉽다. 어차피 저렴하게 샀으니 반품하기 귀찮으면 바로 쓰레기통 행이다.

    이 테무깡·알리깡 콘텐츠의 유행을 보며 무엇을 소비하느냐의 문제를 넘어 소비하는 행위 그 자체도 디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파급력은 과거의 디토와는 차원이 다른 파급력일 것이다. ‘나도 살래’ 한 번이 지구 어딘가에 부담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결코 가볍게만 볼 수 없는 일이다.

    글로벌 브랜드 리바이스의 글로벌 혁신 담당 부사장 폴 딜린저는 코로나가 발생하기 훨씬 전 “의류 산업은 불필요한 소비 위에 세워져 있다”고 선언한 바 있다. 옷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끝없이 늘어날수록 그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은 언젠가 소진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는 리바이스에 더 위협이 되는 건 사람들이 옷을 적게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고 주장했다.

    얼마 전 나의 모친은 미국 여행을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그 유명한 ‘트레이더 조Trader Joe’s’의 미니 에코백을 선물로 받았다. 내가 그 에코백이 최근 얼마나 유행이었는지 설명하며 수선을 부리자 모친은 “이게? 왜?”라고 되물었다.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후 리셀 사이트에서 정가의 수백 배 가격에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을지언정 이걸 모르는 이에게는 그냥 다른 에코백과 똑같은 에코백일 뿐이었다. 물론 모친은 그 이후로 트레이더 조 에코백을 외출용 가방으로 아주 잘 활용하고 계신다. 결국 무엇을 소비하든, 그게 디토든 아니든 간에 중요한 건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소비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게 이 복잡다단한 소비의 딜레마 속에서 내가 내린 아주 단순한 결론이다.

    이런 건 어떤가. 개인적으로 디토 소비의 핵심이 특정 인물의 취향을 모방하고 추종하는 것에 있다면,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취향뿐 아니라 그 사람이 소비할 때 추구하는 가치나 방향에 대한 디토 소비도 더 주목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걸려 우연히 연예인 크리스탈의 ‘왓츠 인 마이 백’ 영상을 봤는데, 10년 이상 쓴 보드게임·티셔츠·헤드셋 등 각종 소품들을 소개하는 그의 모습이 새삼 멋지게 다가왔다. 이 모습에 이끌려 내가 ‘물건을 한 번 사면 최대한 오랫동안 사용하는 소비 습관’을 따라하게 된다면 역시 디토 소비의 일종 아닐까. 선택지는 다양하다. ‘무엇을 살까’보다 ‘어떻게 살까’를 따라하는 소비까지 고민해 본다면, 우리 각자의 디토는 단순한 유행 추종을 넘어 더 많은 의미를 담게 될지도 모른다.


    Edit 주소은 Graphic 시시킴 ✱커버 그래픽: SNS 안에서 인플루언서들의 취향을 쇼핑하듯 둘러보며, ‘나와 닮은 취향’을 찾아가는 디토소비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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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상지

    중앙일보 IT산업부에서 일하고 있는 15년 차 기자. 콘텐츠 채널 ‘듣똑라’를 운영했고,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공저)를 썼다.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문화·트렌드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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