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을 받는 손 그림

왜 미국에서는 팁을 내야만 할까?

심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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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팁의 경제학: 팁을 내면 서비스가 정말 좋아질까?

  • 미국에서 팁은 왜 암묵적인 룰이 되었나

  • 우리나라에 팁이 없는 이유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커피를 주문한 당신. 계산대 앞에 선 직원이 밝은 미소로 주문을 받고 포스기에 손가락을 얹는다. 잠시 뒤, 직원은 작은 화면을 당신 쪽으로 돌린다. 화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팁(tip)은 얼마를 내시겠어요?” (선택 버튼) 0%, 10%, 15%, 20%, 25%...

    0%를 누르자니 괜히 인색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고, 25%를 누르자니 커피 한 잔 값이 너무 비싸게 느껴진다. 직원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화면 너머로 당신을 바라본다. 이 상황에서 어떤 버튼을 누르겠는가?

    한국 사람들에게는 상상에 불과한 이 장면이 미국의 현실이다.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도 팁을 요구받고 키오스크로 주문을 해도 ‘팁을 내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한 해 평균 454달러(약 64만 원)를 팁으로 지출한다. 더구나 팬데믹 이후 팁 비율은 평균 15%에서 22%로 상승했다. 팁에 대한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으니, 미국인의 66%가 팁 문화에 부정적이라는 최근 설문 조사 결과가 놀라울 것도 없다.* *JTBC, '팁플레이션'에 커진 부담…미국인들도 "미쳤다"

    팁의 경제학: 팁을 내면 서비스가 정말 좋아질까?

    미국이나 캐나다, 아르헨티나처럼 팁이 일상인 나라들은 계산서에 이미 팁이 포함되어 있거나, 식사값에 10~20%를 얹어서 팁을 지불한다. 유럽의 일부 나라에서는 “잔돈은 됐어요(Keep the change)”라는 인사와 함께 가볍게 잔돈을 남기는 문화도 있다. 나라마다 팁을 주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해외 여행을 갈 때  ‘팁 지불 요령’을 배우기도 한다. 팁은 오랜 세월 이어온 문화 현상이지만 경제적 의미는 여전히 흥미로운 질문으로 남겨져 있다.

    뉴질랜드 ‘경쟁 및 규제연구소(ISCR)’의 연구원 스틴 비데벡(Steen Videbeck)은 팁 문화에 관해 중요한 성찰을 남겼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첫째, 팁 문화는 우선 고용주와 종업원 간의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로 볼 수 있다. 고용주는 팁을 허용함으로써 종업원이 정해진 급여 외에 별도의 보상을 얻도록 한다. 이를 통해 종업원은 고용주가 없을 때도 더 열심히 일을 하고, 결과적으로 고용주 또한 가게 운영에서 이득을 본다. 둘째, 종업원 간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장치(separating equilibrium)로 작동한다. 일을 잘하고 손님을 만족시키는 종업원은 더 많은 팁을 받으며 자신이 인정받는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종업원은 자신의 문제를 고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가게는 보다 활력있는 조직으로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제 활동과 비교해 보았을 때 팁 문화는 역설적이다. 할인 경쟁이 치열하고, 소비자들이 ‘더 싸게 사기 위해’ 애쓰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 아닌가. 하지만 팁은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더 많은 돈을 내는 행위이다. 스틴 비데벡은 팁 문화가 ‘모든 인간은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존재’라는 경제학의 기본 전제와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부정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2,547개의 식사 그룹을 설문 조사한 결과, 팁을 준 사람들이 서비스가 더 좋아졌다고 느낀 비율은 거의 없었다. 팁을 주는 이유 또한 인정이 넘쳐서 혹은 종업원에 대한 동정심 때문인 경우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단지 팁이 오래전부터 정례화된 관습이기 때문에, 물건값을 지불하듯 팁을 낼 뿐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팁을 주지 않았을 때 따라붙는 사회적 낙인(stigma)을 피하기 위해 돈을 더 내는, ‘합리적 인간이 되기 위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싹트기 시작한다. 팁을 내든 안 내든 서비스의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왜 비용을 더 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요즘은 키오스크가 대세다. 종업원의 손길을 전혀 거치지 않은 화면 앞에서 “팁을 내시겠습니까?”라는 문구를 마주할 때, 소비자는 다시 한번 묻게 된다. ‘이건 누구를 위한 팁인가?’

    미국에서 팁은 왜 암묵적인 룰이 되었나

    팁 문화의 기원은 유럽이다. 다만 언제, 어떻게 이런 관습이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분분하다. 통상 중세 귀족과 농노 간의 관습으로 추청하는데 부유한 귀족이 가난한 농노에게 한두 푼 수고비를 얹어주는 문화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19세기 중반 부유한 미국인들이 유럽을 여행하며 팁 문화를 배웠고 귀족처럼 굴기 위해 팁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식품 노동 연구센터장 사루 자야라만(Saru Jayaraman)은 팁의 역사를 추적하며,  남북전쟁과 노예제도에 주목했다.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제도는 종식되었지만 해방된 노예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고 따라서 그들은 하인, 웨이터, 이발사 같은 서비스 노동에 종사했다. 이 중 식당 종업원이나 철도 짐꾼은 임금을 받는 대신 소액의 팁을 받았는데 이것이 오늘날 미국 팁 문화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1850~60년대 식당 노동자들은 주로 뉴욕과 같은 도시에 있었는데, 백인 노동자들이 농촌에서 공장 일을 찾아 도시로 이주해 오던 시기였다. 농장에서 일할 때는 집에서 식사를 해결했지만, 도시로 옮겨오면서 외식 수요가 급증했다 (...) 일종의 ‘초기형 패스트푸드 식당’들이 등장했다. 공장 노동자들에게는 약 15분 정도의 식사 시간이 주어졌다. 그들은 '페니 플레이스(penny places)'라는 곳으로 달려가 음식을 집어 들고, 옛 노예들이 음식을 차려줄 때처럼 테이블에 1페니 동전을 올려놓았다. - 워싱턴 포스트, 로베르토 A. 페르드먼, ‘I dare you to read this and still feel good about tipping’ 기사 중, 2016.2.18

    위의 기사 역시 같은 맥락이다. 19세기 미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백인 노동자가 도시 공장으로 몰려들면서 식습관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집에서 식사를 했던 백인 노동자는 이제 식당에서 끼니를 때워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일터로 돌아가야만 했다. 백인 노동자들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식당은 값싸고 빠른 음식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낮은 임금으로 부릴 수 있는 흑인이 주방과 홀을 채웠다. 그리고 이들은 일정한 급여 대신 백인 손님이 건네는 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당시 흑인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사회 문제가 되었으며, 이런 불합리한 팁문화를 퇴출해야 한다는 반(反)팁운동(anti-tipping movement)이 강력하게 일어났다. 워싱턴주와 여러 남부 주를 포함해 전국의 6개 주에서는 반팁 법안이 통과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낮은 임금의 매력으로 인해 이 고용주들의 반발이 심했고 몇년만에 법안은 폐지되고 만다. 오히려 반팁운동이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둔 곳은 미국이 아닌 유럽이었다. 유럽의 경우 사회주의를 비롯하여 각종 사회운동이 이어졌던데 반해 기업 문화가 강하고 전세계에서 이민자들이 밀려들어왔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팁에 의존해 살아서는 안 되며, 정당한 임금을 고용주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외치며 결국 팁 문화가 옅어진 곳은 유럽이었고, 반대로 미국에서는 팁 문화가 끈질기게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 벌어지는 팁 문화 논쟁의 중심에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문제가 놓여 있다. 서빙 직원의 상당수가 유색인종인 경우가 많고, 이들은 동일한 노동을 하고도 백인 종업원과 같은 임금을 받지 못한다. 2022년 뉴욕시 의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유색인종 종업원의 평균 임금은 백인 대비 84% 수준에 불과했고, 그중 여성의 경우는 60% 수준에 그쳤다. 더구나 업주가 급여를 계산할 때 팁을 포함해서 최저임금을 맞추는 경우도 많다. 즉, 손님이 팁을 주지 않으면 법정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구조인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팁 문화가 그저 생소하거나 키오스크가 보편화되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관습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팁 문화가 일반적인 나라에서는 팁이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노동자의 생계와 직결된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팁이 없는 이유

    반면 한국에서는 팁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는데, 이는 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팁문화는 유흥업소나 골프장 등 일부 서비스 업종에만 있었다. 팁은 소위 ‘가진 사람들’의 과시 행위에 불과했으며 이에 대한 비판 또한 거셌다.

    팁이 너무 많다면서도 ‘아낌없이 뿌리는 사람들’이 많다. 해가 기울고 네온이 켜지는 거리, 주로 도시 사람들의 경우, 나이트클럽, 캬바레 요정, 살롱 홀, 바 그리고 ‘니나노집’에 이르기까지 많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나서 으레 팁을 준다. 꼭 밤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터키탕, 이발관, 미용실에서 몸을 씻고 그리고 머리를 다듬는다. 호텔이나 여관에서 묵고 나오는 외국손님, 시골손님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골프장에서 한나절을 보낸다. 그러고 나선 거의 누구나 팁을 준다. - 동아일보, ‘폐습’ 기사 중, 1972

    위의 기사 내용은 팁을 ‘고마운 노고에 대해 고마운 뜻을 담아주는 것’이라 규정했으며 ‘터무니없이 많은 액수’가 오가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는다. 흥미로운 점은 팁 문화의 기원을 ‘놀이나 놀음이 끝난 뒤 기생이나 광대에게 주는 보수’로 보았다는 점이다. 1980년대 저명한 언론인 이규태는 “부잣집에서는 사랑방에 인정주머니를 걸어두고 심부름 온 종이나 가마꾼, 말꾼, 부고 전하는 인부 등등에 인정”을 주는 것이 팁 문화의 기원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즉, 팁 문화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일부 상류층의 문화 혹은 특별한 날에 여흥을 즐기는 소소한 문화에 불과한데 이를 남용하여 큰돈이 오가고, 손님은 부를 과시하고 종업원이 이를 즐기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1970년대 후반 정부는 팁 문화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당시 국세청과 서울시는 ‘건전사회 기풍조성과 소비절약운동’의 일환으로 대한요식업중앙회에 팁은 만 원 이상 받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 단순한 권고사항이 아니었다. ‘월 1회 정기점검과 불시점검을 통해 위반업소를 강력히 단속’하겠다며 업주들에게 으름장을 놓았으니 말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1990년대에도 이어졌다. 학계와 언론에서는 팁 문화를 사치나 과시의 상징으로 비판했고 정부는 유흥업소에서 벌어지는 좋지 못한 관행 중 하나로 분류했다. 한국에 팁 문화가 없는 이유이다.

    작은 관습에도 역사가 있고 경제가 있다. 오늘날 미국의 팁 문화 논쟁을 두고 후대의 역사가는 기술혁신의 가속화나 미국의 경제적 쇠퇴 등을 이유로 꼽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짜장면 위에 올려지던 메추리알과 오이가 사라진 지 오래고, 이제는 반찬값을 따로 받는 식당도 보인다. 최근에는 팁 박스를 비치했다가 악평에 시달린 가게도 등장했다. 해외의 팁 문화를 목격하며 놀라지만 우리 역시 정과 인심이 점점 비용으로 환산되고 있다. 일상의 사소한 변화가 우리 사회의 방향을 묻고 있는 것이다.

    Edit 이지영 Graphic 이은호

    참고자료

    심용환 에디터 이미지
    심용환

    성균관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사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 외래교수이자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역사와 인문학 공부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 다양한 기관, 지자체, 매체 등을 통해 사람들과 호흡하는 인문학 강의를 한다. KBS 〈역사저널 그날〉, MBC〈선을 넘는 녀석들: 마스터-X〉 출연과 《1페이지 한국사365》를 비롯해 《리더의 상상력》,《꿈꾸는 한국사》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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