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마음이 머무는 곳에 시장이 생긴다
ㆍby 차우진
2025년 초, 유니버설뮤직그룹(UMG: Universal Music Group)*은 ‘스트리밍 2.0’을 선언했다. 스트리밍 2.0이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독점 콘텐츠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열성 팬들을 중심으로 스트리밍 수익을 차등적으로 적용한다는 개념이다. 스포티파이(Spotify)도 열성 팬들을 위한 다양한 독점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프리미엄 요금제를 출시 예정이라 밝혔다. * 유니버설뮤직그룹(UMG): 세계 최대의 음악 레이블. 테일러 스위프트, 포스트 말론, 아리아나 그란데, 빌리 아이리쉬 등의 아티스트들이 소속되어 있다.
이밖에도 음악 산업계의 주요 플레이어들은 스트리밍 수익을 늘리기 위해 구독 상품의 세분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청취 횟수나 스트리밍 수치보다, 특정 아티스트를 향한 팬들의 충성도와 지불 의사가 음악 산업의 수익 모델을 재구성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팬이 음악 시장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팬 중심으로 변화하는 음악 산업에서, 하이브의 ‘위버스’ 같은 팬덤 플랫폼(혹은 슈퍼팬 앱)은 주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유니버설뮤직그룹은 이미 하이브와 10년 독점 유통 협약을 체결하고 위버스에 슈퍼 스타들을 입점시키고 있다. 아리아나 그란데, 두아 리파, 메건 더 스탤리언, 코난 그레이 등이 이미 위버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규모'가 아니라 '밀도'가 중요하다
골드만삭스는 2024년 음반 분야에서 슈퍼팬을 통한 수익 창출 시장 기회가 자그마치 45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산했다. 과거에는 상품이나 콘텐츠 그 자체의 품질과 대중적 규모가 성패를 좌우했다면, 이제는 얼마나 충성도 높은 팬을 확보하느냐,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개인이 미디어가 되는 시대에 콘텐츠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요즘, 사람들의 관심(Attention)은 더더욱 중요해진다. 사람들이 쏟는 시간, 주의, 시선 등이 희소한 자원이 되며 이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핵심이 되는 경제 구조인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에서는 콘텐츠 간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진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확산으로 정보는 넘쳐나지만, 사람이 하루 24시간 내 소비할 수 있는 시간과 집중력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건네야 하고, 그 이야기가 어떤 감정의 파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브랜드의 이야기와 철학이 잘 담긴 콘텐츠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커뮤니티로 발전하고, 이 커뮤니티는 지속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렇게 맺어진 ‘관계’는 경쟁자가 단순 할인이나 기능으로는 빼앗기 어려운 견고한 자산으로 발전한다.
이 변화가 바로 팬덤을 부수적인 요소가 아닌, 비즈니스의 핵심 자산으로 만든다. 소비자는 이제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지하는 ‘창조적인 팬’으로 거듭난다. 팬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비즈니스를 관계 중심으로 접근할 때, 스타트업이든 엔터 기업이든 소수의 열정적인 고객을 확보해 성장의 모멘텀을 만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열정적인 고객들(팬덤)의 ‘규모(scale)’가 아니라 ‘밀도(density)’다.
그래서 기업들은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팬들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설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를 ‘팬 인게이지먼트(Fan engagement) 전략’이라 부르는데, 그 핵심은 팬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경험(Value)을 제공하는데 있다. 글로벌 아티스트나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 앨범 발매와 동시에 소셜미디어 라이브 방송, 팬미팅, 뮤직비디오 리액션 이벤트, 틱톡 챌린지 등을 통해 홍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통적인 마케팅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느냐, 즉 규모에 초점을 두곤 했다. 그러나 팬덤 비즈니스에서는 밀도, 즉 얼마나 끈끈한 관계를 맺느냐가 더욱 중요해진다. 수백만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라도 정작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지지하는 핵심 팬이 없다면 수익화나 장기적 성장에 한계가 있다. 반대로 규모는 작아도 열성 팬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으면 안정적인 수익과 강력한 파급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제는 모두가 콘텐츠 비즈니스를 한다
하이브의 팬덤 플랫폼 위버스(Weverse)는 2022년에 전년 대비 17.4%의 매출이 증가했다. 팬들의 소비 덕분이다. 위버스는 최근 멤버십 구독제를 도입해 독점 콘텐츠 접근, 이벤트 참여 우선권, 멤버십 전용 상품 구매 등 슈퍼 팬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면서 수익 모델을 추가하고 있다. 밀도 높은 팬덤은 꾸준히 콘텐츠를 소비해주는 것은 물론, 입소문 효과를 일으키고, 주변 사람들을 팬덤으로 끌어들이는 전염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최근 위버스는 자체적인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위버스 뮤직’을 도입해, 앱 안에서 음악을 감상하고 아티스트가 팬들과 리스닝 파티도 열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한다. 이렇게 팬덤 플랫폼은 콘텐츠 소비 경험을 묶어두는 것으로 팬덤을 결집시킨다. 위버스에서는 2024년에만 5,787회의 라이브 방송이 진행되었고, 4억2천6백만 뷰를 기록했다.* * 출처: HYBE’s Joon Choi: ‘90% of Weverse traffic comes from regions outside of Korea. Most of our users are global superfans.’ - Music Business Worldwide
이 팬들은 수동적인 소비자와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다. 팬들은 콘텐츠 소비자에서 직접 커뮤니티를 만들고, 굿즈를 디자인하며, 팬픽(기존에 존재하는 영화, 드라마, 소설, 게임, 아이돌, 뮤지션 등을 소재로 팬이 자발적으로 창작한 2차 창작물)이나 팬메이드 영상을 창작하는 콘텐츠 생산자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 Z세대의 66%는 원본 콘텐츠보다 2차 콘텐츠를 더 오래 시청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젊은 팬들은 단순히 원작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팬이 만든 해설, 리뷰, 패러디 영상 등 팬덤 문화 자체를 즐긴다. 다시 말해, 높은 밀도의 팬들은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과 파급력을 만든다. 따라서 팬덤 플랫폼은 팬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공간인 동시에,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미디어이며, 팬 대상 상품을 판매하는 쇼핑몰 역할도 한다. * 출처: A message to the entertainment industry: nurture fandom or risk losing control of your IP
물론 팬덤 플랫폼이 만능 해결사는 아니다. 전통 소셜미디어나 유통 채널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아티스트나 브랜드를 기준으로 너무 많은 팬 플랫폼이 난립하면 팬들이 피로감을 느낀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서양의 아티스트들은 기존에도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으로 팬과 소통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팬들이 굳이 별도 앱으로 옮길 이유도 적다.
그럼에도 팬덤 플랫폼은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거나 여러 플랫폼의 데이터를 연계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차별화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워너뮤직은 팬덤 플랫폼을 크로스플랫폼 솔루션으로 정의하고 있고, 유니버설뮤직그룹은 아티스트-팬 관계 강화를 전략의 핵심으로 정의했다. 팬덤 플랫폼 전략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미래 비즈니스의 필수 요소로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창작자와 기업에게 필요한 건 ‘관계의 감각’이다
팬덤 비즈니스의 감각은 관계의 감각이다. 이러한 감각은 팬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과 관계 맺는 능력을 뜻한다. 다시 말해 관계 중심의 사고방식, 제품을 팔 때 “이걸 얼마나 팔까”가 아니라 “이걸 통해 팬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까”를 고민하는 접근법이 중요하다. 팬들과 섬세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기업과 창작자야말로 팬덤 시대에 지속가능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팬덤은 본질적으로 쌍방향 관계다. 팬은 일방적으로 소비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창작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영감을 주며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파트너에 가깝다. 팬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고, 심지어 공동 창작에도 관여한다.
따라서 팬덤 비즈니스를 이끄는 사람들은 팬을 친구에 가까운 존재로 대우할 필요가 있다. 팬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며, 피드백을 빠르게 반영하고, 팬과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팬덤은 더욱 견고해진다.
팬덤 비즈니스는 결국 마음의 비즈니스다
팬덤 비즈니스의 미래는 팬과 창작자의 경계가 더욱 허물어진 세계일 것이다. 논란은 있었지만, 최근 챗GPT의 지브리 풍 이미지 생성 열풍이 보여준 대로, AI를 비롯한 기술의 발달은 팬이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과정에 드는 노력과 시간을 비약적으로 줄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팬은 어쩌면 아티스트와 함께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나아가 콘텐츠의 권리를 공동으로 소유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앞으로는 관계 맺는 감각이 부족한 창작자는 팬들이 만들어낸 2차 콘텐츠에 오히려 주도권을 빼앗길 위험도 생길 수 있다. 팬덤과의 건강한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능력은 단지 시대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미래 비즈니스의 잠재적 가치를 지키고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팬 데이터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런데 팬 데이터란 무엇일까. 단순 팔로워 수나 조회수 같은 피상적 지표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도나 정체성의 공감대를 측정하는 데이터일 것이다. 팬이 얼마나 자주 댓글을 남기고, 다른 팬들과 교류하며, 그 브랜드를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여기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바로 진짜 데이터다. 이것은 빅 데이터와는 다른 개념이다. 오히려 띡 데이터(Thick Data: 정량화하기 어려운 질적 정보로서 빅데이터를 보완하는 역할)에 가깝다.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관계가 중요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기업이나 브랜드, 아티스트는 모두 예외 없이 강력한 팬덤을 가졌고, 그들과 진정으로 의미있는 관계를 맺었다. 이제는 누구나 그러한 관계를 필요할 뿐 아니라 진정으로 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팬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 위에 쌓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뢰는 바야흐로 자산이 되고, 우리는 관계를 기반으로 조금 더 높은 차원의 사업과 비전을 만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브랜드 담당자에게 팬덤은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대상이고, 일반인이 팬덤에 뛰어 드는 일은 단순 소비자를 넘어서는 존재가 되는 경험이다. 결국 팬덤 비즈니스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미디어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어도 ‘관심과 열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팬덤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관계는 성공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래서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팬을 소비자가 아닌 동료로 생각하고 함께 성장하려고 애쓰는 존재만이 앞으로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비즈니스, 마음의 비즈니스다.
Edit 금혜원 Graphic 이은호
20년차 음악평론가. 2020년부터 TMI.FM(Tomorrow of the Music Industry)이란 뉴스레터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분석하고 있다. 가끔 컨설팅과 투자 자문도 하지만, 주로 듣고 보고 읽고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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