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을 음식으로 다스릴 수 있을까?

토스 안정감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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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다. 급할 때만 ‘부처님, 하나님, 천지신명님!’을 찾는 흔한 무교인이다. 몸에 좋은 음식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좇아 살아왔다. 선재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 더하고 채우는 속세의 편의에 길들여진 내가, 평생 비우고 덜어낸 수행자의 말씀을 체하지 않고 소화할 수 있을까.

도착한 양평의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은 수십 개의 장독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사이로 풀들이 어른 무릎께까지 자라 있었다. 장독 위로 눈부시게 떨어지는 초여름 볕을 바라보며 스님을 기다리고 있으니, 살짝 긴장이 밀려왔다.

“이게 방아잎이에요.”

어느샌가 뒷마당으로 나온 스님은 허리를 숙여 그저 잡초인 줄만 알았던 초록들을 툭툭 따냈다.

“다들 풀 좀 매라고 잔소리하는데, 내 몸 챙기는 게 먼저잖아요. 한동안 바빴다가 이제 좀 여유가 생기니 풀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오늘 아침에도 풀 매느라 한바탕 했어.”

스님의 유쾌하고 다정한 환영 인사에 웅크리고 있던 마음이 느슨해졌다. 나를 돌봐야 비로소 주변도 보인다는 말은, 수십 년 전 스님에게 불쑥 찾아왔던 생의 가장 큰 불안 이야기로 이어졌다.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에서 만난 선재 스님

살기 위해 부엌으로 향한 수행자

스님 나이 마흔에 간경화 말기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제가 사찰음식 문헌 연구를 하면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학교나 기관에서 수련 교육을 위해 아이들을 절로 보내면 교육하고 돌봤지요. 300명, 500명 되는 사람들의 밥을 짓고, 청소하고. 지금처럼 세탁기가 잘 되어 있던 시절도 아니니 이불 빨래도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있나요. 여름이면 땀으로 온몸이 젖고, 겨울엔 또 얼마나 추웠겠어요. 그래도 젊으니 힘든지 모르고 체력으로 버틴 거죠.

엇나가는 아이들의 닫힌 문을 열기 위해 애쓰다 보니 마음의 에너지 소모도 엄청났죠. 정작 내 끼니를 챙길 시간은 없어서 밥때 놓치고, 허겁지겁 빵이나 면으로 급하게 때우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날 쓰러진 거예요. 병원에 갔더니 간경화 말기였고 6개월, 길어야 1년 산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가 살아계시는데 내가 먼저 죽을 순 없다. 그건 너무 큰 불효다.’ 이 생각뿐이었어요. 어머니보다 단 하루라도 더 살아야겠다는 절박함이 컸어요. 제 소식에 주변에 돕겠다는 감사한 분들이 많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경북 고령으로 가서 스스로를 돌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 서는 불안을 마주하면 오히려 주변에 기대고 싶어질 것 같은데요.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그때는 내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고, 온몸에는 뭐가 막 나서 등긁개로 벅벅 긁어야 할 정도였어요. 잘 걷지도 못하고 향냄새도 맡기 힘들었죠. 도와주겠다는 감사한 분들이 많았지만 폐 끼치기가 싫었어요. 무엇보다 출가한 수행자는 대중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는데, 나 혼자 아프다고 일과에서 빠지면 마음이 편할 수 있나요. 아픈 모습을 굳이 보여주기 싫은 마음도 있었고요. *스님들이 사찰에서 함께 먹고, 일하고, 수행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과정 또한 중요한 수행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고령으로 가서, 부처님의 법대로 음식을 먹어보기로 한 거예요. 제가 대학 졸업 논문으로 〈사찰음식문화 연구〉를 썼거든요. 정작 내 삶은 논문 속 내용하고는 완전히 다르게 병들어가고 있었던 거죠. ‘그래, 내가 머리로만 알던 그 사찰음식의 이치대로 내 몸을 살려보자’ 결심한 겁니다.

작은 텃밭에서 기르는 야채와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띄워낸 메주.

식탁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바꾸셨어요?

다섯 살 아이가 듣고 알 수 없는 이름의 첨가물이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았습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도 직접 담가 먹고요. 제가 국수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좋아하던 밀가루 국수, 빵, 설탕 들어간 것 모두 미련 없이 끊어냈습니다.

또 음식은 항상 신선하게 만들어 먹었어요. 당시 제 몸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민감했기 때문에 김치와 장아찌류를 제외한 음식을 미리 만들어두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바로바로 만들어 먹었어요.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밥상을 차려 내며, 몸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왔나요?

1년 동안 몸에 좋다는 걸 애써 찾아 먹기보다, 나한테 맞지 않는 것을 덜어내고 버리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항체가 생기더라고요. 만약 그때 제게 맞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법을 몰랐다면, 저는 아마 죽었을 거에요.

물론 항체가 생겼다고 몸이 다 회복된 건 아니었어요. 여전히 간 기능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서, 고작 10분 걸어갈 거리를 두세 번씩 앉아 쉬어 가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아, 내 몸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생존을 걱정해야 했던 시간은 이후 스님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도 바꿔놓았을 것 같습니다.

몸에 항체가 생겨날 무렵,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어요. 어머니보다 단 하루라도 더 살아야겠다는 절박함 하나로 악착같이 버텨왔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나는 이제 살아서 무엇을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그때 다짐했습니다. 세상에 나 같은 환자를 또 만들지는 말자고요.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살려낸 음식과 자연의 이치를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 ✷ ✷

사찰음식의 지혜를 한창 세상에 나누고 있던 2000년 무렵이었다. 당시 선재 스님의 명성이 높아지자, 스님의 이름을 허락 없이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번듯한 사업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들이 따라 붙고 있었다. 난처한 상황에 곤란해하고 있을 때, 은사 스님이 선재 스님을 불러 불호령을 내렸다.

“선재 네가 다 책임지고 절에서 나가거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지도 않은 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은사 스님의 말이 억울하고 야속하기만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그 매몰찬 호통은 세상의 시끄러운 유혹으로부터 제자를 지켜낸 투박하고도 깊은 사랑이었다.

은사 스님은 거절을 못 해 쩔쩔맸을 제자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곤란한 제안들에 시달릴 제자에게 ‘제가 그런 일을 하면 은사 스님이 저를 진짜 내쫓으실거예요. 절대 못합니다.’라고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을 쥐여 준 셈이었다. 덕분에 스님은 돈과 명성을 좇는 일을 경계하며 수행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나를 살려낸 사찰음식의 지혜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것. 그것이 곧 스님이 택한 치열한 수행이었다. 불교 경전을 바탕으로 사찰음식의 철학과 정신을 체계화한 스님은 기꺼이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기업, 학교, 종교기관 등 국내 강연만 4천여 회. 세계 3대 요리 학교인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와 미국 CIA 등 세계 무대에 올라 사찰음식의 가치를 증명했다. 벼랑 끝에서 깨우친 생명의 이치를 세상과 나누는 일에만 몰두한 결과, 2016년 대한민국 최초의 '사찰음식 명장'을 수여받았다.

“몸에 좋다는 걸 애써 찾아 먹기보다, 나한테 맞지 않는 것을 덜어내고 버리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불안을 다독이는 식탁 위에서의 작은 수행

우리는 불안하고 지칠수록 자극적인 음식을 찾습니다. 음식과 사람의 마음이 어떤 관계에 있다고 보시나요?

건강한 음식이 무조건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은 아니예요. 음식마다 품고 있는 고유의 기운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불안할 때 우리가 흔히 찾는 자극적인 음식들은 에너지를 밖으로 뻗치게 하는 ‘동적인 음식’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고기나 어패류, 열을 내는 술뿐만 아니라, 채소 중에서도 에너지가 밖으로 뻗치는 것들이 있어요. 파, 마늘, 달래, 부추와 같은 오신채*가 그렇습니다. 내 마음이 불안으로 흔들린다면, 흔들림을 잡아줄 수 있는 정적인 음식의 기운을 빌려보세요. 동적인 식품을 제외한 채소류, 곡류, 콩류를 정적인 음식으로 봅니다.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파·마늘과 비슷한 구황식물). 불교에서는 수행에 방해가 되는 자극적인 음식으로 여겨 사찰음식에도 사용하지 않는다.

동적인 음식에도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이 많지만, 사찰음식은 깨달음을 돕는 ‘수행식’에 가까워요. 어떠한 풍파 앞에서도 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힘, 즉 ‘지혜’를 기르기 위함입니다. 지혜는 내면이 맑고 고요할 때 비로소 발현됩니다. 수행이란 결국 요동치는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이기에, 밖으로 뻗치는 에너지를 줄이고 마음을 차분히 만들어주는 정적인 음식을 가까이하는 거예요.

당장의 쾌락을 위한 자극적인 맛이 오히려 마음을 고요히 바라보는 데에는 방해가 될 수도 있었겠네요. 즉각적인 맛 외에도,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더 살펴야 하는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의 몸과 마음은 고정된 게 아니에요. 무슨 말이냐면,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과 날씨, 관계, 환경, 감정 등 수많은 조건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변한다는 거예요.

더 쉽게 이야기해볼까요? 날이 더우면 시원한 음식을 찾죠? 스트레스를 받거나 답답할 때는 매운 음식이 당기고요. 커피를 한 잔 마셨을 때와 다섯 잔 마셨을 때 심장이 뛰는 느낌도 다르죠.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받고 있어요.

때문에 음식이 만들어지는 재료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길러졌는지도 아주 중요합니다. 음식은 결국 하나의 생명이 살아온 과정의 결과물이니까요. 땅과 물이 건강하지 못하면 그 위에서 자란 식물과 동물도 영향을 받습니다.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불안한 환경에서 길러진 생명 역시 그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자란 재료들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면 당연히 우리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겠지요.

이 거대한 연결망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음식으로 불안을 돌볼 수 있나요?

음식을 대할 때 세 가지 기준을 떠올려보세요. 사찰음식의 근간이 되는 세 가지 덕목(삼덕)이기도 한데요. 바로 ‘청정清淨, 유연柔軟, 여법如法’입니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잘 돌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청정'은 앞서 말한 식재료가 나고 자란 환경은 물론이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 먹는 사람의 마음 모두 청정해야 한다는 의미예요. 재료를 잘 씻어 겉만 깨끗해진 상태가 아닌, 차려 내는 식기도 깨끗해야 하고, 음식을 만드는 부엌까지도 깨끗해야 하죠.

두 번째 '유연'은 먹는 사람에게 알맞은 음식을 뜻합니다. 모든 식재료는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어요. 예를 들어 배추는 찬 성질을 가졌습니다. 내 몸이 냉하다고 해서 무조건 “난 배추 절대 안 먹어”’ 거부하는 게 아니에요. 따뜻한 기운을 품은 겨자, 생강, 단호박, 당근 같은 재료를 곁들이거나, 냉하지도 덥지도 않은 양파, 감자, 옥수수 같은 재료를 더해 부드럽게 중화시켜 먹는 겁니다.

내게 당장 맞지 않는다고 쳐내는 대신,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 이로운 상태로 어우러지게 하는 것.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인간관계와 비슷하지 않나요? 살다 보면 잘 맞는 사람도 있고, 어려운 사람도 있잖아요. 세상 만물의 다름과 개성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끌어안는 것이 바로 유연한 태도입니다.

음식의 성질과 관계를 살피듯 나에게 필요한 것을 유연하게 채워주려면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맞아요. 나를 먼저 정확히 알아야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딱 잡을 수 있지요. 우리 마음을 거울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거울에 먼지가 잔뜩 붙어 있으면 내 모습이 잘 안 보이잖아요. 내 마음이 불안하고 흔들릴 때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건, 먼지 낀 거울을 더 어지럽히는 것과 같아요.

거울을 깨끗이 닦아내야 내 모습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더해야 하는지, 무엇을 비워내야 하는지, 내 삶을 어떻게 정돈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죠. 음식으로 몸과 마음의 흔들림을 가라앉히는 것은 거울을 닦아 진짜 나를 들여다보고 불안을 다스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일이에요.

청정과 유연까지 말씀하셨어요. 마지막 ‘여법’은 무엇인가요?

마지막 '여법'은 '법답다', 즉 자연의 이치를 따르며 모든 생명의 수고로움에 온전히 감사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마트에서 무를 산다고 해볼게요. 무가 자라려면 흙이 있어야 하고, 물, 햇빛, 바람, 공기가 필요하죠? 그리고 무를 길러내기 위한 사람의 손길도 있었을 거고요.

우리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 더울까 봐 문 닫고 지금 시원하게 앉아 있잖아요. 그런데 무는 볕을 피하지도 못하고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비타민을 만들어 준 거예요. 흙에 미네랄이 많지만 우리가 직접 흙을 먹을 순 없잖아요? 캄캄한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나 대신 영양분을 빨아들여 준겁니다. 비바람 치고 천둥번개 칠 때는 또 얼마나 안간힘을 쓰면서 버텼겠어요? 나 대신 모든 시간을 견뎌서 내게 영양을 주는 거잖아요.

그러니 내가 마트에서 집어 오는 무 하나는 단순히 몇천 원 짜리 식재료가 아니에요. 내 밥상에 오른 음식을 우주와 생명의 수고로움으로 바라보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 그게 바로 ‘여법’한 것이자 스스로를 가장 귀하게 대접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이런 태도를 실천하기 위해 지금 당장 우리 식탁에서 무엇부터 바꿔보면 좋을까요?

자연의 맛을 하나라도 더 가까이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고되면 매운 것, 단 것 찾잖아요. 그 맛들이 나쁜 게 아니에요. 사찰음식에서도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떫은맛, 이 여섯 가지 맛(육미)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좋거든요.

중요한 것은 그 맛들을 ‘어디서, 어떻게’ 얻느냐인데요. 단맛이 당길 때 인위적인 설탕 대신, 과일, 단호박, 당근이 품고 있는 자연의 단맛을 한번 찾아보세요. 제가 흑백요리사에서 당근 국수를 했었잖아요. 그때 사람들이 “당근이 이렇게 단 줄 몰랐다”며 놀랐거든요. 매운맛이 당길 때도 인공적인 자극보다 생강이나 고추처럼 재료 본연의 맛을 선택해 보는 겁니다.

저도 힘든 일정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밥해 먹기 싫을 때도 있어요(웃음). 그런 날에는 일단 무조건 쌀을 딱 안치고 김치찌개를 끓여요. 얼큰한 찌개 국물에 밥 말아 먹으면 지쳤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오는 걸 느끼거든요. 내 몸을 살피고 자연이 준 맛을 기꺼이 선택하는 것. 그것이 식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고 훌륭한 수행인 거죠.

✷ ✷ ✷

“칡순으로 담근 김치가 있는데, 누룽지랑 한 그릇 하실래요?”

식사를 챙겨주지 못해 마음에 걸린다던 스님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잠시 뒤 따뜻한 누룽지와 칡순 김치, 제피 장아찌, 동치미가 상에 올랐다.

선재 스님이 마음을 담아 차려주신 정갈한 한 상. 누룽지와 칡순 김치, 제피 장아찌, 동치미.

“제피는 우리나라에 고춧가루가 들어오기 전에 매운맛을 낼 때 썼어요. 로즈마리나 바질 같은 서양 허브는 익숙하지만, 정작 우리 건 잘 모르죠. 나를 잘 알아야 불안을 다스린다고 방금 이야기 나누었지요? 바깥의 것만 좇지 말고, 나와 내 주변부터 살펴야 하는 거예요. 우리 게 얼마나 좋은데.”

감사한 식사를 마치고 빈 그릇을 정리하려는데 스님이 한마디 건넸다.

“아직 다 안 드셨네요.”

그릇 벽에 밥풀 서너 개가 붙어 있었다. 불과 몇 분 전, 모든 생명의 수고로움에 감사하는 '여법'의 태도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참이었다. 머쓱하게 웃고 남은 밥풀을 싹싹 긁어 입에 넣었다.

평생을 비워낸 수행자의 말씀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이곳에 오는 길에 안고 왔던 걱정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이 정성스러운 식사 덕분에 선재스님의 이야기를 꼭꼭 씹어 넘기며, 소화해 가는 중이었다.

“우리는 모두 이 우주가 온갖 정성을 다해 길러낸, 아주 귀한 존재들이니까요.”

먹구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마음

우리는 불안이 없이 평온한 상태를 '안정감'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안정감이란 무엇인가요?

살다 보면 비가 오기도 하고, 쨍쨍하게 볕이 나는 날도 있고, 갑자기 천둥번개도 치잖아요. 그렇다고 비가 영원히 오나요? 영원히 해가 내리쬐나요? 지금 좀 불안하고 흔들린다고 해서 그게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 ‘아 지금 비가 오는구나. 조금 있으면 맑아지겠지.’ 하고 덤덤히 흘려보낼 줄 아는 것. 그게 진짜 안정감이죠.

먹구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아는 마음이겠네요. 소나기처럼 불안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삶을 채워야 할까요?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생각하세요. 아까 우리 무 얘기했었죠. 무가 흙, 바람, 볕, 비 모든 것을 대신 품어서 내게 온 거라고요. 이 모든 생명이 나를 위해 존재하니까 나 역시 세상에 쓰임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죠.

꽃밭에 날아다니는 꿀벌이 어떻게 사는지 한번 보세요. 꽃에서 꿀을 따올 때 꽃을 짓밟고 망가뜨리나요? 꽃을 해치지 않고 자기가 살기 위해 필요한 꿀만 조용히 가져오면서도, 꽃이 번식할 수 있게 꽃가루를 옮겨주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 삽니까? 내 이익을 취하겠다고 남에게 상처 주고, 생명을 파괴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까지 망가뜨려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라면 꿀벌보다는 더 잘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나를 위해 존재하는 이 세상과 다른 생명들에게 나 역시 이로운 쓰임이 되어주는 것.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불안하고 흔들리는 세상을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진짜 힘인 거예요. 이 꿀벌 이야기는 내가 오늘 꼭 해주고 싶어서 준비했어요. (웃음)

그러니 불안이라는 감정에 너무 짓눌리지 말아요. 나를 맑게 채우는 밥 한 끼 든든하게 챙겨 먹으면서, 내 안의 힘을 믿어보세요. 우리는 모두 이 우주가 온갖 정성을 다해 길러낸, 아주 귀한 존재들이니까요.


Interview·Edit 이지영 Graphic 변영근 조수희 Photo 이욱영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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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 안정감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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