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에 입사하고 든 10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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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어제의 클라이언트가 오늘의 동료가 되었다
토스와의 첫 만남은 에이전시와 클라이언트 관계였다.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8년을 일하며 수많은 클라이언트를 만나왔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가 젠틀했지만, 금요일 오후에 요청 오는 ‘월요일 오전 마감 업무’나 계획이 한순간에 엎어지는 일들을 피하긴 어려웠다. 클라이언트 내부 사정으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이 업의 숙명이려니- 덤덤히 받아들일 무렵, 토스를 만났다.

토스는 꽤 특이했다. 수정 요청은 많았지만 무리한 일정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기획을 뒤엎는 일 또한 없었다. 필요한 자료는 알아서 챙겨주었고, 약속한 데드라인도 지켰다. 이게 뭐 특별한 일인가? 싶겠지만 에이전시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알 거다. 남의 시간까지 아껴주는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귀한지 말이다.
소통 방식도 좀 달랐다. 슬랙 스레드마다 안건을 깔끔히 나눠 논의했고, 무엇을 언제, 누구와 결정했는지 내외부 프로젝트 관계자 모두가 볼 수 있었다. 모든 과정이 슬랙에 있어서 맥락을 파악하느라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내 차례가 되면 즉시 움직일 수 있었다.
급할 때 담당자를 태그하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는 것도 낯설었다. (이 사람들 슬랙만 보고 있나..) 나는 일의 끝장을 볼 때까지 생각을 잘 끄지 못하는 편인데, 토스 사람들에게 이상한 유대감을 느꼈다. 유난히 고된 어느 날에는 ‘나만 일에 과몰입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 위로가 되기도 했다.
2024년 머니북 프로젝트, 2025년 토스 10주년 행사까지. 토스 팀과 지지고 볶으며 행사를 몇개 치르고 나니, 경험의 조각들로 나름의 토스를 그리고 있었다. 빠르고, 효율적이고, 인생에서 일을 꽤나 소중히 여기는 듯한 사람들.
외부에서 조력하는 것을 넘어, 팀원으로 함께 몰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직접 구르는 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때는 내가 만들어낸 그 이미지를 굳이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환상 반, 각오 반으로 토스에 입사했다.

2. 최복동 그리고 어른처럼 일한다는 것
엄복동은 아는데 최복동은 뭐지.
입사 극초기에 유독 자주 보이던 단어가 있었다. 최복동. ‘최고의 복지는 동료’라는 뜻인데, 처음엔 무슨 말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월급루팡이 없다는 뜻일까? 필요할 때 다들 잘 도와준다는 뜻일까? 둘 다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서도, 세 글자가 주는 묘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동안 거쳐온 작은 회사에서는 늘 정해진 팀원들과 일했다. 같은 문법,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게 익숙한 관계들. 서로가 뭘 좋아하는지 너무 잘 아니까 유효 타율의 결과물만 내게 되고, 새로운 시도가 점차 어려웠다. 그래서 큰 조직에 오면 다양한 각도의 피드백을 받으며, 도전적인 상황들을 마주할 수 있겠다는 두근거림이 있었다.
하지만 설렘이 부담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온보딩 내내 반복되던 또 하나의 말, “어른처럼 일하기” 때문이었다. 어른이니까 주도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뜻. 처음엔 당연하게 들렸지만, 곱씹을수록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내 부모님, 그러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어른이었던 사람들도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데 어른처럼 일하라는 말은…새로운 조직에서 스스로를 알아서, 잘, 증명해 내야 한다는 것처럼 들려 서늘한 압박이 밀려왔다.
3. 모래주머니
주어진 일은 일단 다 받았다.
새 회사에 빨리 적응하고 싶었고, 맡은 일은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그게 어른답게 일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내 리소스가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는 거다. 손에 쥔 일들이 쌓이더니 어느 순간 턱끝까지 차올랐다.

토스 팀은 “move with urgency”를 강조한다. 느리게 움직여 기회를 잃는 것보다 실패하더라도 빠르게 시도하는 문화다. 그런데 정작 나는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는 기분이었다. 마음은 전력 질주인데 발이 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미팅 하나 끝내고 오면 슬랙 알림이 몇십 개씩 쌓여 있고, 온종일 슬랙에 답변만 하다가 낡고 지친 직장인이 되어 퇴근했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사주앱을 ‘매운맛’으로 설정하고, 뼈 아픈 조언을 위로 삼곤 했다.

지금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건 ‘더 열심히 하기’가 아니라 딱 잘라 ‘No’라고 말할 수 있는 판단, 혹은 ‘Help’를 외칠 수 있는 용기였단 걸. 조직에서 일을 맡길 땐 내가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일만을 줄 거라는 순진한 기대도 솔직히 있었다.
토스가 아무리 빠르고 효율적인 조직이라지만, 이전에 다녔던 작은 조직에 비해선 거쳐야 할 유관부서나 지켜야 할 절차,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1-2개월이면 끝날 거라 생각했던 일이 중장기 프로젝트가 되기도 했다. 내 시야에는 바다 위에 뜬 빙산의 윗부분만 보였는데, 알고 보니 바닷속 거대한 빙산의 몸통까지 탐사해야 하는 일이었던 셈이다.
이직하자마자 단번에 빙산의 크기를 파악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3개월 전의 나에게 돌아가 조언할 수 있다면, 당장 눈앞에 떨어진 불부터 끄려 하지 말고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해 리소스를 배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프로젝트에 정확히 어느 어느 팀이 얽혀 있는지, 단계별로 어느 채널에서 누구와 소통해야 하는지, 수많은 업무 중에서도 팀이 나에게 기대하는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그 기준이 서야 한 프로젝트 안에서도 내가 어디에 힘을 줘서 달리고, 어디서는 가볍게 힘을 빼며 완급조절을 할 수 있는지 가늠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모래주머니를 찬 채 불안해하던 시절의 내게 있던 건 독기뿐… 조급한 거북목이 되어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기 바빴다. 그저 날이 선선해질 때쯤엔 좀 괜찮아질 거라던 사주앱 말을 믿으며 간절히 처서매직을 기다릴 뿐이었다.
4. 중간 평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게요ㅜㅜ
입사 45일 차, 중간 평가를 받았다.
토스 팀에는 신규 입사자가 조직에 잘 적응하기 위해 1,2,3개월 단위로 구체적인 업무 목표와 실행 방안을 세우고 맞춰가는 과정이 있다. 일종의 수습기간 같은 개념인데, 합불을 나누는 시험이라기보다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체크하는 과정에 가깝다.
1.5개월이 지난 시점에 중간 리뷰, 3개월 지나고 최종 리뷰를 갖는다. 1.5개월 리뷰는 함께 일한 동료 5명의 피드백을 기반으로 속한 조직의 헤드와 1:1로 진행된다.
솔직히 이 무렵에 이미 멘탈이 반쯤 나가 있어서, 리뷰 결과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쏟아부었는데 안 된다고 하면? 그냥 여기랑 내가 안 맞는 거지’ 싶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설령 아쉬운 피드백을 듣더라도 '그럼 다른 방향으로 해볼까?' 하며 해결책을 찾아 나섰을 텐데, 이때는 마음의 유연함이 남아 있지 않았다. 중간 리뷰를 앞두고 스스로를 보호하느라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리뷰 결과가 하나도 무섭지 않은 게 아니라 사실은 …많이 무서웠던 건가?
다행히 우려와 달리 리뷰의 전반적인 내용은 좋았고, 분위기도 엄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리뷰는 토스 코어밸류*를 기준으로 잘하고 있는 점과 개선하면 좋을 점을 짚어준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으로는 ‘Focus on Impact(하면 좋을 10가지보다, 임팩트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와 ‘Ask for feedback(피드백을 자주 구하라)’이 언급됐다. 너무 많은 일을 혼자 꽉 쥔 채 끙끙 앓고 있던 내게 필요한 피드백이었다. *토스 팀과 개인이 탁월한 성과를 내기 위해 일하는 방식. 총 8가지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동료는 리뷰 말미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너무 혼자 고민하는 것 같아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쉴 때 업무 얘기해도 뭐라 하는 사람 없으니까, 커피나 식사하면서 서로 고민 편하게 나눠요.”

T의 심금을 울리는 말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고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혼자 모든 걸 견디려는 내 태도였다. 스무스하게 연착륙하는 온보딩이 아니라, 어딘지도 모르는 땅에 불시착해서 어찌저찌 버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무엇이 진짜 어른처럼 일하는 건지는 몰라도, 최소한 혼자 일을 다 쥐고 끌려다니는 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또렷해졌다. 일의 주도권을 되찾고 내 페이스대로 이끌어가는 감각이 간절했다.
리뷰가 끝난 후, 팀 리더에게 커피챗을 신청했다.
5. 선을 긋는다는 것
팀 리더에게 상황을 다 털어놓았다. (울진 않았다)
단순히 ‘힘들다’는 감정 호소로 들리지 않도록, 대화를 나눌 때 기준 삼았던 포인트는 세 가지였다.
하나, 단순히 일이 많다고 하기보다 일주일 기준 어떤 업무에 얼마큼의 시간을 쓰고 있는지 수치로 말하기. 둘, 병목 현상이 생기는 요소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말하기. 셋, 지금 리소스로는 모든 일을 다 가져갈 수 없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가장 먼저 챙겨야 할 핵심 과제가 무엇인지 물어보기.
이야기를 들은 팀 리더는 즉시 헤드와 논의해, 부담이 컸던 프로젝트에 담당자 한 명을 더 배정해주었다. 업무 프로세스가 복잡해 나를 진 빼게 했던 일은, 관련 담당자들을 소집해 시스템 자체를 간소화시켜 버렸다.
내 눈에는 모두가 똑같이 바빠 보여서, 나를 갈아 넣는 것 말고는 도무지 답이 없을 거라 지레짐작했다. 힘들다고 말하는 게 괜히 찡찡대는 건 아닐까? 리더가 그래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고 반문했을 때 뾰족한 대안이 없으면, 그냥 입 닫고 혼자 버텨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검열이 계속 나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 괴로워하는 건 성숙함이 아니라 미련함일 뿐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일을 잘하는’ 동료들의 방식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선을 잘 그었다. R&R(역할과 책임)에 대한 감각이 명확했다. 내 일이 맞나 싶을 때 혼자 끙끙대지 않고 바로 물어보고, 능력이 부족하거나 손이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업무 범위를 벗어난 일이라면 “이건 제 역할이 아닙니다”라고 담백하고 예의 있게 선을 그었다.
참석해야 하는 미팅을 가려내는 것도 중요한 역량이라는 걸 알게 됐다. 토스는 미팅이 진짜 많다. 미팅이 릴레이로 이어지면 결국 밀린 일을 저녁에 쳐내기 바빴다. 그런데 핵심 멤버가 아니라면 패스해도 되는 미팅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사전에 불참 의사를 미리 공유하고, 나중에 문서로 내용을 파악해도 충분한 미팅들. 물론 미팅에 참석하지 않아도 정보와 업무 공백이 없다는 확신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 선택에 대한 책임 역시 오롯이 나에게 있다.
선을 긋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일의 본질과 우선순위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판단들이기 때문이다.
6. 완벽해 보이는 저 사람도 불안하다
슬랙 ‘공론장’ 채널에 승건님(토스 팀 대표)이 올린 메시지를 보았다.
공론장은 회의실 문을 잘 닫자는 소소한 이야기부터 일하는 방식이나 조직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제안까지, 누구나 의견을 자유롭게 던질 수 있는 슬랙 채널이다.
승건님의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실제로 일을 잘 해내고 있는 팀원들조차 ‘역량이 부족한 것 같다’, ‘더는 팀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성과부족이 아니라, 잘못된 자기평가 때문에 소진되고 위축되어 조직을 떠나는 것이야말로 토스가 겪고 있는 가장 조용하고 비싼 손실이라는 문제의식이었다.

이 무렵 나는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스스로의 역량을 의심하던 참이라 남 일 같지 않았다. 많은 팀원들이 메시지에 이모지를 달며 공감을 표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격렬히 공감했지만, 정작 이모지를 누르지 못했다. ‘내가 이런 말에 공감해도 되는 위치인가?’ 싶은 자기검열도 있었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나는 남이 아무리 잘한다고 칭찬해 줘도 스스로 확신이 서야 안도하는 편이다. 그래서 늘 불안과 의심을 곁에 두고 산다. 만약 이런 조바심을 토스에서 혼자 품고 있었다면 이번에도, 스스로를 편하게 두지 못하는 내 성격 탓을 했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면, 그건 이 조직 전체가 미친 듯이 허슬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미 내 눈엔 한참 앞서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똑같은 고민을 통과하고 있구나. 덕분에 처음으로 내가 느끼던 불안과 안정에 대한 갈망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비슷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속 불안이 조금씩 잠재워졌다.
7. 나만의 지도
두 달 가까이 지나자 나만의 ‘지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지도. 자율근무 제도가 있다는 건 입사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여느 회사에 흔히 있는 코어 근무 시간도 없었다. 사무실로 출근할지, 재택근무를 할지조차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처음 몇 주 동안은 매일 사무실로 출근했다. 자율근무 제도를 대체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옥철과 함께하는 출퇴근에 업무량까지 많은 날에는 체력이 바닥났다.
변화는 업무가 손에 익고 위클리, 바이위클리 같은 정기 미팅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찾아왔다. 구글 캘린더 화면이 지도처럼 읽혔고,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최적의 경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집에서 집중을 잘하고, 밖에서는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편이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늘 그랬다. 그래서 컨디션이 가장 좋은 오전에는 조용한 집에서 기획안 작성처럼 깊은 맥락을 고민해야 하는 일, 집중해서 글을 써야 하는 일, 또는 협업체와의 소통 같은 굵직한 과제들에 몰두했다. 오후에는 사무실로 출근해 빠른 판단과 실행이 필요한 업무를 처리하거나, 얼굴을 마주하고 아이디어를 모으는 미팅에 집중했다.
이렇게 오전엔 재택근무를 하고 오후엔 점심에 맞춰 출근하는 방식을 토스 팀에서는 줄여서 ‘오재점출’이라 부른다. 하루를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눠 쓰는 셈이었다. 이렇게 루틴을 세우고 나니 거짓말처럼 체력의 연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내가 가장 몰입할 수 있는 방식대로, 퍼포먼스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업무 환경을 직접 디자인하는 것. 두 달 만에 비로소 알게 된 진짜 자율근무의 핵심이었다.
8. 내가 잘하는 게 여기서도 통할 때
한국에서만 이직을 총 세 번 했다.
나는 늘 관심사와 가까운 영역에서 일해 왔다.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 컬처 브랜드처럼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머물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업무 강도가 높았지만, 쏟아부은 노력이 세상으로 한 번에 쏟아져 나올 때 터지는 도파민이 너무 강렬했다.
하지만 6년 정도 지나자 비슷한 궤도를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이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도 따라왔다. 경험해 보지 않은 영역에서 더 넓은 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다.
그렇게 옮겨온 토스에서 헤매는 시간이 있었던 건 어쩌면 당연했다. 익숙했던 세계를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왔으니까. '내가 잘하던 방식이 여기서도 통할까?', '내 감각이 팀의 방향과 맞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있었다.
이런 불안을 깨고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 건, 마케팅 아이디어가 팀의 공감을 얻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평소 관심 있게 보던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팀에 제안했다. 사실 아리까리 했다. '너무 마이너한가? 대중과 동떨어져 있나?' 그동안은 특정 문화에 깊게 몰입한 고관여자를 타깃으로 일해온 반면, 이곳에서의 미션은 훨씬 넓은 대중에게 다가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려와 달리 동료들은 아이디어를 신선하게 바라보며 환영해 주었다. 팀의 공감을 얻고 나니 직접 주도권을 쥐고 빠르게 실행해 나갔다. 일하는 재미와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 들어왔다고 해서 나의 색을 굳이 숨기거나, 억지로 끼워 맞출 필요는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감각과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 사이에서 접점 찾기. 그렇게 만들어낸 작은 성공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이곳에서도 해볼 만하다’라는 확신으로 자랐다.
9. 널뛰는 마음을 잡아준 3가지 루틴
이직 후 3개월이 거의 다 되어갈 때쯤 나만의 루틴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불안의 무게를 줄이고 내 페이스를 찾게 해준 소소 루틴 3가지를 소개한다.
➀ 아침운동
오재점출(오전엔 재택근무 오후엔 사무실 출근) 하거나, 재택 근무를 하는 날에는 아침에 몸을 움직인다. 운동 자체의 효과보다는, 업무에 허우적 거리는 삶에서 ‘내가 여전히 무언가를 주도하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해서 만든 루틴에 가깝다. 일종의 죄책감 면피용이라고 보면 된다.
➁ 불금 보내기
금요일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지인과 약속을 잡는다. 하루 8시간은 꼭 자야 다음날 컨디션이 유지되기 때문에, 야근한 날이면 씻고 바로 잠들기 바쁜데 금요일만큼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논다. 소중한 사람들과 술 한잔 하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심야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만성적으로 일과 삶의 스위치를 끄지 않고 지냈는데, 오히려 토스에서 처음으로 홀가분한 금요일 루틴을 만들었다.
➂ 지난주 복기와 다음 주 미리보기
주말 짧은 시간을 써서라도 한 주 정리하기. 특히 입사 초반 두 달 동안 도움이 많이 된 루틴이다. 지난주를 복기하고 다음 주 할 일을 미리 정리해 두는 거다. 예전 회사에선 눈감고도 그려지던 일상들이 여기선 다 새로워서, 생전 처음으로 월요병을 겪기도 했다. 월요일 출근 후 어떤 일이 펼쳐질지 예측이 안 되는 데서 오는 생경함이었다. 그 막연함만 살짝 걷어내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겠다 싶어서 시작한 정돈의 시간. 주말 끝자락에 다음 주 흐름을 미리 훑어보는 습관은 여전히 도움이 된다.

10. 씩씩하게 우당탕탕
3개월이 지나도 여전히 어려운 것들은 많다.
1개월짜리 업무인 줄 알고 덤볐다가 중장기 과제가 된 프로젝트는 여전히 바닷속에 거대한 빙하의 몸통을 숨기고 있고, 내 감각과 회사의 방향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도 매번 새로운 숙제다.
하지만 ‘어른처럼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든 걸 혼자 다 해내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내 한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을 용기, 주변에 손을 내밀 수 있는 솔직함, 반대로 내게 손을 내민 동료에게 보이는 다정함, 내 판단에 따른 결과를 담백하게 책임지는 태도. 이런 것들이 아닐까?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거나, 최근 이직을 했거나, 가슴속에 사표 하나쯤 품고 매일 출근길에 오르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성장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매일 고민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씩씩하게 일하는 우리 모두의 우당탕탕을 응원하며, 일기 끝!


*이 글은 토스 신규 입사자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재구성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