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이해하는 일은 어떻게 내 삶의 안전지대가 될까?

이지영

19분

인류가 무지와 두려움에서 벗어나 세상에 대한 해방과 안정감을 찾아온 과정은, 과학이 발전해온 역사와 맞아떨어집니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지만 정작 ‘과학을 이해하는 일’은 우리 삶과 마음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그 답을 찾아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인류에게 해방과 안정감을 선사한 5가지 과학적 발견을 꼽아달라고 요청했어요.

➀ 하늘의 별이 움직이는 이유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것(뉴턴역학)에서 출발해, ➁ 보이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는 힘을 발견해 전기 문명을 만들고(전자기학), ➂ 인간 역시 자연의 수많은 생명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겸손함을 깨달으며(진화론), ➃ 정해진 답 대신 불확실성이 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받아들이고(양자역학), ➄ 마침내 복잡한 무질서 속에서 삶의 거대한 흐름과 패턴을 읽어내는 이야기(통계역학)까지.

그는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정직한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불안한 일상을 살아가는 데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준다고 이야기합니다. 김상욱 교수와 나눈 5가지 과학 이야기를 따라서 내게 필요한 안전지대를 찾아보세요.

1. 사는 게 내 뜻대로 계산되지 않을 때 — 세상은 이성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다: 뉴턴역학

“인간은 때로 감정적이고 서로를 속이기도 하지만, 자연은 법칙에 따라서 움직여요. 나를 속이지 않는 단단한 원칙과 질서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삶의 좋은 보호막이 되어주죠.”

불가해한 세상을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인류에게 엄청난 안정감을 선사한 일이었겠어요.

사과가 왜 떨어지는지 말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F=ma라는 공식을 통해 1초 후에 사과가 어디에 있을지 수학적으로 예측 가능하게 된 거니까요. 수학은 변하지 않는 보편타당함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1 더하기 1이 오늘도 2고 내일도 2인 것처럼,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도 하늘을 도는 별들도 모두 같은 수학적 규칙으로 움직인다는 걸 밝혀낸 거예요.

1초 뒤 사과의 위치를 알 수 있듯이, 저의 내일도 예측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물리학자들과 철학자들도 오랫동안 세상이 예측 가능한 결정론의 세계인 줄 알았어요. 어떤 한 순간 물체의 위치와 속도만 정확히 알면, 다음 순간의 위치와 속도를 계산해낼 수 있다는 게 뉴턴 역학의 핵심이거든요.

18세기 프랑스 수학자 라플라스는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알아내서 미래를 완벽하게 계산해내는 존재인 '라플라스의 도깨비'를 상상하기도 했죠. 그런 도깨비가 있다면 미래를 모두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렇게 쉽게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고 말하지 못해요. 뉴턴역학의 등장 이후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과학자가 이 세상의 또 다른 법칙들을 발견해냈거든요. 그 다른 법칙에 대해서는 뒤에서 천천히 이야기 드릴게요.

교수님 삶에서도 아무리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해도 답이 안 나오고, 뜻대로 계산되지 않아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는지요.

대학 시절에 했던 이유도 모른 채 차였던 연애들…(웃음). 제일 힘들었던 건 박사학위 받고 독일에서 계약직 연구원 생활할 때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아이가 있었거든요. 퇴근하고 돌아와 조그마한 아이를 품에 안고 있자니 막막하더라고요. 아내와 아이는 나 하나만 보고 무작정 독일로 왔는데, 당장 돌아오는 5월이면 계약이 끝나버리니까 미치겠는 거예요. 한 치 앞도 계산이 안 되는 거죠.

제가 그때 서른둘이었어요. 그 시절엔 20대 후반이면 결혼들을 했으니까 자리 잡고 내 집 마련해서 한창 집들이를 많이 할 시기였어요. 물론 외국에 있으니 집들이에 갈 수도 없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물리학을 선택한 게 한스럽더라고요. ‘나는 외국에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왜 물리를 했을까, 이러려고 공부했나’ 싶었죠.

그래도 교수의 꿈을 놓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리신 거죠?

물리학을 자유롭게 하려면 교수가 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한국 대학들에 열심히 지원서를 냈는데, 여러 차례 떨어졌어요. 당시엔 보통 3~4년이면 연구원 생활을 끝내고 자리를 잡는데, 저는 5년째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안 그래도 불안정한 걸 싫어하는 성격인데 오죽했겠어요.

원래 안정적인 걸 선호하는 편이신가 봐요. 그 불확실한 시간을 어떻게 지나셨나요?

저는 완전한 안정지향형 인간이에요(웃음). 여행 갈 때도 계획 촘촘히 짜고, 플랜B도 준비해 둬야 마음이 놓여요. 사실 그 시기를 거창한 태도나 특별한 비법으로 극복했다기보다, 그냥 버텼어요. 대신 마지노선을 뒀고요. 딱 1~2년 더 해보고 안 되면 교수를 포기하고 해외 연구소에 취직하자. 그렇게 한계를 정해두고 버티다 보니 거짓말처럼 10번째 지원에서 기회가 왔어요. 계산대로 흘러가지 않는 날들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오로지 제 연구에만 몰두했던 행복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매일의 경험으로 우리 모두 인생이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우리가 세상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애쓰는 태도는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제가 보기에 세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요. 자연과 인간. 자연은 우리를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법칙에 따라서만 움직입니다. 가끔 자연에게 속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건 사실 우리가 자연을 오해했기 때문이에요. 반면에 인간은 서로를 속이기도 하고, 때론 감정적이고 이기적이기도 해요.

그래서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첫 번째 방법이 바로 이성으로 자연을 잘 이해하는 거예요. 나를 속이지 않는 단단한 원칙과 질서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그 이성적 사고가 좋은 보호막이 되어주거든요.

자연의 정직한 법칙을 이성으로 받아들여 세상을 단단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사람들과 따뜻한 감정을 주고받으며 조화를 이루는 것. 그 균형 감각이야말로 불안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진짜 안정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2. 문득 혼자 남겨진 것 같을 때 — 온 우주는 연결되어 있다: 전자기학

“우주에 빈 공간은 없어요.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 파동을 만들어 그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전달하거든요. 전자기학은 보이지 않는 힘을 발견해 멀리 떨어진 공간을 연결하고 어둠을 밝혀낸 위대한 발견이에요.”

사과나무나 하늘의 별과 달리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힘을 어떻게 발견하고 다룰 수 있게 되었나요?

사실 인류는 아주 옛날부터 전기의 존재를 경험적으로는 알고 있었어요. 나무 진액이 굳은 호박을 문지르면 머리카락이나 먼지가 들러붙는 정전기 현상이나, 밤하늘에 번개가 치는 걸 봤을 테니까요.

이 힘을 단순히 신비한 자연 현상으로 두지 않고,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건 19세기 마이클 패러데이 덕분이었습니다. 패러데이가 자석 주위에 철가루를 흩뿌려봤더니, 철가루들이 일정한 결(자기선)을 그리며 퍼지는 게 보인 거예요. 보이지 않던 힘이 우리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거죠.  패러데이는 이렇게 힘으로 가득 찬 공간을 ‘장(Field)’이라고 불렀습니다.

눈에 안 보이던 힘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난 후, 이걸 어떻게 우리가 쓰는 기계나 기술로 바꾸기 시작했나요?

과학 시간에 한 번쯤 실험해 보셨을 텐데요. 전선에 전기를 흘리면 그 옆에 연결해 둔 나침반 바늘이 움직여요. 전기로 자석의 힘(자기)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서울과 부산처럼 멀리 떨어진 거리라도 전선만 길게 연결해 두면, 서울에서 전기를 찌릿 흘렸을 때 부산에 있는 나침반 바늘이 움직여요.

그 바늘의 움직임을 신호로 삼아 만든 게 최초의 '전신기'입니다. 전신기를 통해 주고받던 통신 언어가 우리가 잘 아는 모스 부호고요. 말을 타고 소식을 전하던 시대에, 빛의 속도로 정보를 주고받게 된 거죠.

지금의 AI 등장만큼이나 큰 충격이었겠는데요.

전신기가 나오자마자 빠르게 활용한 사람들이 로스차일드 같은 금융가들이었어요. 전쟁의 승패나 국경 너머의 정보를 남들보다 빠르게 입수해서 주식 시장을 움직이기도 했으니까요.

전기를 보내서 멀리 있는 자석을 움직이는 건 알겠는데, 그럼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전기는 어떻게 대량으로 만들어내게 된 건가요?

전자기학이 가진 아름다운 대칭성 덕분인데요. 전기를 흘렸을 때 자석(나침반)이 움직였다면, 반대로 전선 주위에서 자석을 흔들면 전기가 흘러나옵니다. 자석을 열심히 흔들어주기만 하면 전기가 절로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이 원리를 거대하게 키워서 만든 장치가 바로 우리가 아는 발전기예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의 토대가 된 거네요.

그렇죠. 지금 우리는 전기 문명을 살고 있으니까요. 증기기관이 이끈 1차 산업혁명이 사람들을 농경지에서 공장으로 옮겨 놓았다면, 전자기학이 연 2차 산업혁명은 삶의 풍경 자체를 바꿔 놓았어요.

해가 지면 고립되던 밤의 어둠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켰고, 멀리 떨어진 공간의 한계를 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도 주었고요.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 《떨림과 울림》, 김상욱, 동아시아, 2018, p.101

3. 남들과 비교해 초라하게 느껴질 때 –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진화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똑같이 38억 년의 세월을 견뎌낸 진화의 동반자예요. ‘인간이 유일하게 특별한 존재’라는 무거운 오만을 내려놓을 때, ‘공생’의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제 바람이기도 한데요. 막상 진화론을 통해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니 한편으론 마음이 쓸쓸해지기도 해요.

오히려 그 지점이 위로가 되지 않나요? 만약 인간만이 지구에서 유일하게 뛰어난 종이고 특별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라면, 그게 더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요(웃음). 우리 모두가 똑같이 38억 년을 견뎌낸 동등한 생명체라는 사실이 제게는 더 큰 위안이 돼요. 그래서 저는 진화론의 핵심 메시지가 결국 ‘공생’에 있다고 봅니다.

한 발 떨어져서 보면 ‘공생’이라는 시선이 들어올 자리가 생기는군요.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다 같이 똑같은 세월을 버텨온 존재들이거든요. 각자 속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최선을 다해 적응한 결과물이죠. 그러니까 누가 더 우월한지, 누가 최상위에 있는지를 따지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해요. 사실 ‘인간이 위대하다’는 말도 인간에게 유리한 조건에서만 성립하는 이야기잖아요.

당장 장비 없이 자연에 떨어지면 인간만큼 무력한 존재도 없으니까요.

맞아요. 우리가 물속에서 상어와 겨루면 바로 죽고, 하늘에서 새랑 겨뤄도 추락해 죽겠죠. 인간이 뛰어난 지능을 가졌다고 하지만, 진화론적 관점에서 다른 생물들이 인간만큼의 지능을 갖지 않은 건 그저 그들에게 지능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보면 길가의 비둘기든, 숲속의 버섯이든, 우리 몸속 미생물이든 다 같이 38억 년을 지나온 진화의 동반자인 셈이죠.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부단히 노력해도 삶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진화론적 관점이 건강한 해방감을 줄 수 있겠어요. 그렇다고 ‘어차피 다 부질없으니 대충 살자’ 같은 허무주의로 흐르면 안 되잖아요. 건강한 해방감을 가지면서도 삶의 가치와 의미를 쌓아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인문학이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과학은 현상이나 존재를 설명할 뿐이지, 행복이나 가치 자체를 만들어내진 못하거든요.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대화할 때 서로에게 욕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잖아요. 하지만 왜 욕을 하면 안 되는지를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음성으로 욕설을 내뱉는 건 그저 언어를 내뱉을 때 발생하는 성대의 떨림일 뿐인데요.

아… 성대의 떨림이요?(웃음)

그렇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오늘 대화를 행복하고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있게 대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는 거예요. 신뢰와 약속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거죠.

진화론이 우리에게 ‘인간도 특별할 것 없는 38억 년의 생명체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려줬다면, 인문학은 ‘한정된 삶에서 어떤 가치를 품고 의미 있게 채워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합니다. 허무주의로 추락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삶의 의미를 지어 올리고 지키도록 돕는 게 인문학의 역할이라고 봐요. 제가 인문학을 계속 공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니다. 아무 의미 없이 법칙에 따라 그냥 도는 것뿐이다.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 《떨림과 울림》, 김상욱, 동아시아, 2018, p.147

4.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막막할 때 – 세상을 이루는 본질을 들여다보다: 양자역학

“뉴턴역학이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고 말했다면, 양자역학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정해진 답이 아닌 무수한 확률로 존재해요. 이런 삶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홀가분해지지 않나요?”

뉴턴역학이 세상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제시했다면, 양자역학은 어떤 지점을 설명해주나요?

뉴턴역학이 물체의 '운동'을 다루었다면, 양자역학은 이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성질을 갖는지를 알려주는 이론이에요. 뉴턴역학으로는 사과가 떨어지는 경로는 계산할 수 있지만, 사과가 왜 빨간색이고 왜 단단한 고체인지는 설명하지 못하거든요.

이걸 알기 위해선 사과를 이루고 있는 물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관찰 장비 같은 기술 발전에 따라 우리는 ‘원자’라는 것이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 알갱이라는 점을 발견합니다. 이 원자의 특성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물질마다 고유한 성질을 가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예를 들어, 인듐, 타이타늄, 산소를 섞으면 투명하면서도 전기가 통하는 물질(ITO)을 만들 수 있어요. 그 위에 전기를 흘려보내면 휴대폰 디스플레이가 되는 거예요. 이런 것처럼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의 특성을 파악해 물질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에요. 스마트폰, 컴퓨터, 신약 개발 등 지금 우리 문명의 핵심 기술의 기반이 되고 있어요.

‘슈뢰딩거의 고양이’같은 어려운 실험을 떠올렸는데, 스마트폰 이야기를 말씀해주셔서 다행이에요. 양자역학이 유독 이해하기 힘들다고 악명이 높은 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겠죠?

작디작은 세상에서는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뉴턴역학의 공식이 통하지 않아요. 방금 이야기한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는데요. 원자 안에서 움직이는 전자의 위치를 보려고 관찰하는 순간, 빛의 충격 때문에 전자가 튕겨 나가며 원래 위치를 벗어나 버려요. 관찰한다는 행위 자체가 대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원리’가 작동해요.

너무 어려워요.

더 간단히 말해볼까요? 뉴턴역학이 통하는 거시 세계,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지금 사과의 위치와 속도만 알면 1초 뒤에 그 사과가 어디에 떨어져 있을지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요. 하지만 미시 세계의 전자는 1초 뒤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고, 그저 무수한 확률로만 존재해요. 우리가 눈으로 관찰하려고 보는 순간 위치가 바뀌어버리니까요. 결국 거시 세계에서 제일 중요했던 ‘위치와 속도’라는 물리량 자체가 미시 세계에서는 의미가 없어요. 평생 거시 세계에서 진화한 인간의 눈과 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거시 세계의 기준인 위치와 속도가 미시세계에서 통하지 않는다면, 양자역학에서는 무엇이 기준값이 되나요?

인간의 직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에너지와 파동함수로 이야기합니다. 뉴턴 역학의 관점에서 물체는 정확한 위치와 속도를 가집니다. 사실 정확한 위치를 가지지 않는 사과를 상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죠. 하지만 양자역학에서 위치와 속도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대신 에너지를 정확히 알 수 있고, 파동함수로 상태를 표현합니다. 파동함수는 해물체가 어떤 위치와 속도를 가질 확률을 나타내죠.

그럼 뉴턴역학은 틀린 이론이 된 건가요?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부분인데요. 과학에서 새로운 이론이 나온다는 건 기존 이론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기존 이론이 적용되는 범위가 일부분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이에요. 거시 세계는 여전히 뉴턴 역학으로 완벽하게 설명됩니다. 다만 원자처럼 아주 작은 세계로 들어갔을 때, 뉴턴역학이 담아내지 못하는 더 커다란 이론인 양자역학이 필요한 거죠.

비전공자의 시선에서 짚어보면,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모르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묘한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세기의 천재인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양자역학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고, 아인슈타인조차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며 양자역학을 거부했지만, 신은 주사위를 던집니다(웃음). 뉴턴역학이 우주의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양자역학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뭔가 해방감이 느껴지시지 않나요?

5. 하루하루의 혼란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 — 무질서 속 거대한 질서가 숨어있다: 통계역학

“공기 중의 수많은 분자가 모이면 온도나 압력 같은 새로운 질서가 생깁니다. 내 삶도 전체적인 흐름을 읽어보세요. 하루하루 미시적인 혼란이 찾아와도, 삶 전체의 평균을 돌아보면 '그래도 잘 흘러왔구나' 싶을거예요.”

뉴턴역학에서 출발해 전자기학과 진화론, 양자역학을 거쳐, 마지막 통계역학까지 왔네요. 우리에게 해방과 안정감을 안겨준 결정적 순간들이 과학의 진보와 맞물려 있다는 게 실감 나요.

재미있게도 정말 그래요. 인류가 무지나 두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모멘텀을 계속해서 만들어 냈죠. 세상을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 뉴턴역학을 시작으로, 우리가 오늘 이야기 나누진 않았지만 열의 움직임을 다루는 열역학이 증기기관을 만들어 1차 산업혁명을 이끌었고요. 전자기학은 전기의 시대를 열며 2차 산업혁명을, 양자역학은 컴퓨터와 반도체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을 만들었어요.

마지막 통계역학의 경우는 수많은 데이터를 통계로 다루면서 지금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는 AI 시대의 문을 열어 주었고요.

그런데 통계역학과 AI는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요? 물리학이 인공지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쉽게 상상이 잘 안 가요.

언뜻 보면 AI와 자연을 연구하는 물리학이 무관해 보이지만, AI의 동작 원리 자체가 통계역학의 계산 방식에서 탄생했다고 보면 돼요. 통계역학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분자*를 통계적으로 다뤄 새로운 물리적 현상이나 규칙을 찾는 겁니다. 쉽게 말해 ‘작은 알갱이들이 아주 많이 모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들여다보는 거예요.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이 되는 알갱이인 원자 2개 이상이 모여 붙은 상태를 분자라고 한다.

지금 이 방 안에는 수조 개의 공기 분자가 날아다니고 있어요.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공기 분자들이 항상 피부에 부딪히고 있거든요. 공기 분자들이 피부에 가하는 평균적인 충격이 ‘압력’이고, 분자들의 평균적인 운동에너지가 ‘온도’예요. 기압이 낮다고 느낄 때는 피부에 부딪히는 공기 분자의 개수가 적다는 뜻이고, 날씨가 춥다고 느끼는 건 공기 분자들의 평균 속도가 느려졌다는 뜻이거든요.

AI 연구자들이 여기서 힌트를 얻게 됩니다. 인터넷에 무질서하게 흩어진 수조 개의 데이터에서 규칙을 찾고 패턴을 만드는 과정이, 기체 알갱이들이 모여 온도나 압력을 만들어내는 원리와 같았던 거죠.

실제로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제프리 힌턴 교수가 AI 딥러닝을 만들 때 쓴 핵심 알고리즘(볼츠만 머신)은, 19세기 물리학자 루드윅 볼츠만이 기체 알갱이들의 에너지를 계산할 때 만든 공식을 활용한 겁니다. 그래서 이름도 ‘볼츠만 머신’인 거고요. 우리가 매일 쓰는 ChatGPT같은 거대 언어 모델(LLM)이 단어를 추론할 때 쓰는 함수도 통계역학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던 통계역학의 지혜를 AI가 활용하면서 우리 일상을 하나씩 유용한 방향으로 바꿔 나가고 있는 거죠.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는다는 점이 재밌어요. 그 질서를 알기 위해선 전체적인 흐름, 통계를 살펴봐야 하는거고요?

일단 원자나 분자를 하나하나 모두 추적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어요. 원자가 얼마나 작냐면, 엄지손톱 위에 원자를 1열로 쭉 늘어세우기만 해도 10억 개예요. 이걸 가로 세로 높이가 있는 입체 공간으로 채우면 10억의 세제곱이 돼요. 이 작은 공간조차 원자의 수가 어마어마해지는데, 우리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의 원자를 일일이 세거나 추적할 수는 없어요. 컴퓨터로도 계산이 안 되고요.

또 작은 알갱이들이 많이 모였을 때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물 분자(H2O)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그냥 104.5도로 꺾인 작고 단조로운 막대기 모양일 뿐이거든요. 분자 하나만 봐서는 얼음이나 드넓은 바다를 상상하기 힘들어요. 작은 분자들이 모여야 우리가 잘 아는 물의 성질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무수한 알갱이가 떼로 모였을 때 나타나는 평균과 표준편차를 관찰하는 것이 통계역학에선 중요해요.

오늘 하루가 잘 안 풀리거나 불안할 때, 통계역학의 ‘평균값’이라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면 마음이 조금 괜찮아질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살다 보면 미시적인 혼란이 자주 찾아오지만, 일주일, 한 달, 한 해, 내가 살아온 전체를 돌아보면 '아, 그래도 내 삶이 큰 흐름 속에서 잘 흘러왔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처럼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안정지향형인 교수님에게 안정감이란 무엇인가요? 평소에 안정을 찾는 비결도 궁금하고요.

저는 혼자 있는 시간, 예를 들어 잠들기 전에 누워서 나 자신과 솔직하게 대화를 나눠요. ‘너 진짜로 바라는 게 뭐야? 남들 시선이나 기준 다 빼고, 나한테는 솔직하게 얘기해 줘’ 하고 진짜로 물어보는 거예요.

우리는 남들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스스로를 속일 때가 많잖아요. 안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척하고, 내 마음과 다른 선택을 하고.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건 잠깐일 뿐, 결국 그 불일치 때문에 마음이 계속 불안정해지는 게 아닐까요? 내 마음에 솔직해지고 나면 사실 우리가 목숨 걸듯 매달리는 걱정거리 대부분이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게 돼요. 약간 욕 좀 먹거나 안 될 수도 있는 거지, 세상이 무너지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요.

결국 제가 생각하는 안정감은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졌을 때 찾아오는 평온함 같아요.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어 진짜 나를 다정하게 마주 보는 것, 그게 바로 안정을 찾는 출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Graphic 변영근·조수희

참고

이지영 에디터 이미지
이지영

토스팀에서 콘텐츠를 만듭니다. 시대와 사회, 생활에 필요한 금융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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