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아가는 동계 올림픽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이 막을 내리고, 동계 패럴림픽*이 한창입니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금빛 비행을 선보인 최가온, 쇼트트랙에서 끝까지 버텨낸 김길리. 이번 대회에도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많았죠. * 신체적·시감각적 장애가 있는 선수들이 참가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

대한민국 설상 종목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최가온 선수 / 사진: FIS
사실 이번 대회를 관통한 진짜 화두는 기후였습니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과연 미래에도 동계 올림픽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제기되었기 때문이죠. 여기에 천문학적인 개최 비용 문제, 그리고 일부 국가만의 잔치로 굳어가는 구조적 한계까지 겹쳤어요. 세 가지 위기가 한꺼번에 들이닥친 대회였던 셈입니다.
녹고 있는 하얀 눈
동계 올림픽 경기는 크게 눈 위의 설상 종목과 얼음 위의 빙상 종목으로 나뉩니다. 빙상 종목은 실내 아이스링크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기온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습니다. 하지만 스키와 스노보드 같은 설상 종목은 충분한 자연설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하얀 눈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녹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키장에 인공설을 뿌리고 있는 스노우건 / 사진: REUTERS
경고음은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울렸습니다. 기록적인 이상 고온으로 스키 코스가 진흙탕으로 변했고, 캐나다는 헬리콥터와 수백 대의 트럭을 동원해 눈을 공수하는 초유의 작전을 펼쳐야 했어요.
인공설은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대회에서 처음 도입됐지만, 초기에는 자연설을 보조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스키 코스에 사용되는 인공설 비율은 점차 늘어 2014년 소치에서 80%, 2018년 평창에서 90%, 2022년 베이징에서 100%였고, 2026 밀라노-코르티나 대회에서도 85%에 달했습니다. 동계 올림픽은 이미 자연설 이벤트가 아니라 인공설 이벤트가 되고 있죠.
이번 동계 올림픽이 열린 코르티나담페초는 1956년에도 올림픽을 치렀던 도시입니다. 당시 대회 기간 평균 기온은 영하 7도였어요. 그런데 이번 대회 기간 평균 기온은 영하 3도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70년 사이에 기온이 4도 이상 오른 겁니다. IOC가 '알프스라면 자연설로 치를 수 있다'며 밀라노-코르티나를 선택했던 자신감은 현실 앞에서 완전히 빗나갔죠.
결국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40만 제곱미터의 인공설을 생산해야 했고, 여기에 쓰인 물의 양은 올림픽 규격 수영장 379개를 채울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인공설 사용의 문제는 전기료를 많이 쓰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전력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화석연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눈을 만들수록 탄소 배출이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구조가 생깁니다. 여기에 대규모 물 사용으로 인한 산악 생태계 훼손까지 더해져요.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의 요한 엘리아쉬 회장은 향후 동계 올림픽은 최대한 자연설 위에서 경기를 펼칠 수 있는 지역에서만 순환 개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겨울철에 적설량도 충분하고 이미 경기장 인프라가 잘 조성된 곳에서만 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죠.
실제로 2024년 발표된 연구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과거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거나 향후 개최 가능성이 있는 93개 지역 가운데, 2050년에도 깊이 30cm 이상의 자연설로 동계 올림픽을 치를 수 있는 곳은 단 52개에 불과했어요. 개최 가능한 도시가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46조 원을 쏟아붓고 돌아온 것
동계 올림픽은 하계 올림픽보다 규모가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막대한 인프라 비용이 들어갑니다. 설상 종목은 인구가 적은 산간 지역에서 열리는 만큼, 교통 인프라 구축에만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거든요.

중국 당국은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최 비용이 약 4조 6,800억 원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장자커우와 베이징 공항을 잇는 고속도로 비용(2,640억 원), 지하철 노선 확대 비용(약 1조 원), 무인 초고속 철도 건설 비용(11조 원),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 건설 비용(2,000억 원)이 모두 빠져 있었습니다. 빠진 항목을 다 포함하면 실질 개최 비용은 약 46조 원으로 추정됩니다. 평창보다 33조 원이나 많은 규모였어요.
밀라노-코르티나는 비교적 절제된 대회였습니다. 전체 경기장의 85%를 기존 시설로 활용했기 때문에 약 10조 원 수준으로 치를 수 있었죠. 그럼에도 설상 경기 리조트와 밀라노 간의 교통 인프라 개선에만 4조 원 이상이 들어갔어요.

2006 토리노 동계 올림픽 스키점프대의 방치된 모습 / 사진: HANS LUCAS
진짜 문제는 대회가 끝난 뒤에 시작됩니다. 기온이 계속 오른다면 리조트는 더 많은 인공설에 의존해야 합니다. 전기 사용량은 늘고, 운영비는 올라가죠. 그런데 스키를 타는 사람은 줄고 있어요. 스키는 유럽과 북미에서 1950년대생 베이비붐 세대가 즐기며 하나의 거대 산업으로 성장한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그 세대가 고령화되면서 수요도 함께 줄어들고 있죠. MZ세대는 상대적으로 스키에 관심이 덜하고, 경제적 여유도 이전 세대보다 적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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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2011-12 시즌에 686만 명에 달했던 스키 인구는 2024-25 시즌에는 440만 명으로 급감했어요. 인공설 비중이 높아지면서 리프트 이용권이나 시즌 패스 가격도 계속 오르고 있죠. 비용은 오르는데 수요는 줄어드는 구조. 스키 리조트는 이제 사양산업의 길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올림픽을 위해 수조 원을 들여 확장한 인프라가 장기적으로 지역 경제에 기여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이 커지는 이유입니다.
시청률 1.8% 독점 중계권이 만든 역설
2026년 동계 올림픽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관심은 충격적일 정도로 낮았습니다.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개막식 시청률은 고작 1.8%. 4년 전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이 18%였던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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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는 2019년에 2026 밀라노-코르티나부터 2032 LA 하계 올림픽까지 4개 대회의 국내 독점 중계권을 확보했습니다. 그 비용은 3,3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과거 코리아 풀(지상파 3사 연합체)이 지불했던 중계권료에 비해 크게 오른 금액이죠.
방송사는 올림픽 방영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광고를 판매하거나, 다른 방송사에 중계권을 재판매하면서 올림픽 중계권료를 회수합니다.
그런데 광고 수익만으로 3,000억 원 이상을 회수하는 건 구조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올림픽 방영 기간은 약 17일로 한정되어 있고, 하루에 편성할 수 있는 광고 구좌 수도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 계산만 해봐도, 단일 방송사가 광고 수익만으로 수천억 원을 메우기엔 물리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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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는 지상파 3사에 중계권 재판매를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결국 홀로 중계권료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원래 올림픽처럼 종목이 많고 일정이 빡빡한 대회는, 지상파 3사가 협의를 통해 각 채널이 서로 다른 종목을 나눠 중계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습니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같은 시간대에 여러 종목을 각자 본채널에서 골라 볼 수 있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JTBC가 단독으로 중계권을 쥐게 되면서, 본채널에서는 한 번에 한 경기만 송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한계는 대회 중 여실히 드러났어요. 최가온이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따는 역사적인 장면이 본채널에서 생중계되지 못한 것이죠. JTBC 본채널은 메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쇼트트랙을 중계하고 있었습니다. 쇼트트랙에서는 메달이 나오지 않았고, 최가온의 금메달은 JTBC SPORTS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채널에서 경기가 생중계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독점 중계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15년 워너 브러더스는 유럽 전 지역의 올림픽 독점 중계권을 확보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2조 원이 넘는 중계권료를 감당하지 못했어요. 결국 이번 대회부터는 유럽방송연합(EBU)과 중계권을 나눠야 했고, 워너 브러더스 디스커버리의 핵심 사업 부문은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에 인수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올림픽 독점 중계권의 저주'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셈이죠.
북반구의 하얀 올림픽, 정당성을 잃어가는 세계인의 축제
동계 올림픽은 구조적으로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이벤트입니다. 충분한 적설량, 산악 지형, 인프라, 경제력이 모두 갖춰져야 하는데, 이 조건을 충족하는 나라는 주로 유럽과 북미에 집중돼 있어요. 메달 집계를 봐도 노르딕 스키의 노르웨이, 알파인 스키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케이팅의 네덜란드, 썰매 종목의 독일이 매 대회 상위를 휩쓸죠.

남미 최초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 루카스 피녜이루 브라텡 / 사진: REUTERS
이번 대회에서는 브라질의 루카스 피녜이루 브라텡이 스키 남자 대회전에서 금메달을 따며 '남미 최초의 동계 올림픽 메달'이라는 역사를 썼습니다. 그런데 브라텡은 사실 국적만 브라질입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나 노르웨이 선수로 활약하다 스키협회와의 갈등으로 브라질로 국적을 옮긴 케이스였거든요. '남미의 기적'이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는 이야기죠.
물론 한국·일본·중국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꾸준히 메달을 따고 있는 건 고무적이지만, 아프리카나 대다수 아열대 지역 국가에서 동계 올림픽에 필요한 인프라를 갖추는 건 기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동계 올림픽은 여전히 '북반구의 하얀 올림픽'이라는 별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동계 올림픽은 분명 아름다운 스포츠 제전입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표는 점점 커지고 있어요. 자연설은 줄어들고, 개최 도시는 줄어들고, 유지 비용은 늘어나고, 관심도는 낮아지고 있습니다. 과감한 체제 개편 없이는 동계 올림픽의 존재감이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어요.
눈은 점점 녹고 있습니다. 이제 동계 올림픽이 지켜야 할 것은 스스로의 정당성일지도 모릅니다.
Edit 윤동해 Graphic 조수희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 스포츠 기자로 일하던 중, 스포츠가 사회문화 현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늦은 나이에 영국 DMU(드몽포트) 대학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야구의 나라》, 《스포츠문화사》, 《세계사를 바꾼 월드컵》과 《A History of Football in North and South Korea: c. 1910~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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