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

올림픽에서 시작해 지구촌 축제로 성장한 월드컵

이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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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북중미 월드컵이 드디어 막을 올렸습니다. 개막과 함께 전 세계가 다시 한번 축구로 들썩이고 있는데요. 본선 진출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크게 늘어난 이번 대회는 역대 그 어떤 월드컵보다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대회가 될 전망입니다.

멕시코시티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26 북중미 월드컵 개막식 / 사진: DPA

이번 대회의 예상 매출은 약 13조 원. '인류 최대의 스포츠 축제'라 불리던 하계 올림픽이 2024 파리 대회에서 약 8조 원을 번 것과 비교하면, 그 격차가 확연합니다.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큰돈이 도는 스포츠 이벤트는 올림픽이 아니라 월드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다면 월드컵은 어떻게 지구 최대의 돈 잔치가 됐을까요?

축구를 세계에 퍼뜨린 대영제국의 그림자

월드컵이 올림픽을 뛰어넘는 스포츠 이벤트로 성장한 밑바탕에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영국의 ‘축구 세계화’가 자리잡고 있어요.

산업혁명 이후 세계 최강대국으로 올라선 영국의 상품과 문화는 유럽 전역에서 대유행을 했습니다. 이른바 앵글로마니아*의 시작이었죠. 영국 문화는 보통 무역항, 공장, 학교를 통해 유럽으로 퍼져 나갔는데, 축구의 전파 경로도 정확히 이와 같았습니다. * 19세기 유럽에서 영국의 문물과 생활양식을 동경하고 모방하던 사회 현상이에요.

영국과 무역하던 유럽 항구도시에는 축구가 일찌감치 소개됐고, 영국인이 투자해 세운 현지 공장에서도 축구 클럽이 하나둘 생겨났어요. 무엇보다 선진국 영국을 배우러 유학을 떠났던 유럽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축구 문화를 함께 들여왔습니다.

공 하나로 어디서든 즐길 수 있어 빠르게 보급된 축구 / 그림: Athletics and Football(1894)

그래서 유럽 축구 클럽 중에는 모국어가 아닌 영어식 이름을 가진 팀이 의외로 많습니다. 스페인 명문 아틀레틱 빌바오는 스페인어 '아틀레티코(Atlético)'가 아니라 영어식 '애슬레틱(Athletic)'을 구단 이름에 넣어 지금도 '애슬레틱 클럽'으로 불리고, 이탈리아 산업의 중심지 밀라노에 세워진 클럽은 이탈리아어 '밀라노'가 아니라 영어식 '밀란'을 붙여 'AC 밀란'이 됐죠. 모두 현지에서 일하거나 사업하던 영국인들이 세운 클럽이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영향력은 남미에서도 강했습니다. 영국은 무역과 자본을 통해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같은 남미 축구 강국에 경제적으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거든요. 이들 나라의 농축산물과 지하자원을 실어 나르기 위해 철도망도 깔았는데, 브라질 커피의 집산지이자 무역항이었던 산투스에 축구 클럽이 들어선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산투스는 펠레와 네이마르 같은 스타를 배출하며 명문 클럽으로 성장했죠.

아시아와 아프리카 축구의 성장에도 영국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어요. 1970년대 아시아 축구의 중심지였던 홍콩과 말레이시아는 모두 영국 식민지였고, 국제무대에서 아프리카 축구를 이끌어온 가나, 나이지리아, 카메룬 역시 영국 식민지 시절 축구를 받아들인 나라들입니다.

올림픽에서 독립한 FIFA 월드컵

축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건 1908년이었어요. FIFA(국제축구연맹)가 올림픽 축구를 처음으로 관장하게 된 건 1924년 파리 올림픽 때였죠. FIFA는 그로부터 6년 뒤, 자신들만의 대회인 월드컵을 열며 올림픽에서 독립합니다.

FIFA가 월드컵을 만든 표면적인 이유는 올림픽을 주관하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아마추어리즘 때문이었어요. 당시 유럽에는 이미 프로 축구 리그가 적지 않았는데, 올림픽에는 아마추어 선수만 출전할 수 있다 보니 갈등이 끊이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따로 대회를 열어도 충분히 흥행할 만큼 축구의 인기가 높다는 걸 FIFA가 확신했기 때문이에요. 그 결정적 계기는 바로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이었습니다. 암스테르담 올림픽은 축구 열기로 가득했어요. 축구 경기 관중은 25만 명이었는데, 이는 암스테르담 올림픽 총 관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수치였습니다.

만원 관중이 들어선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축구 경기 / 사진: Imago Images

축구 흥행의 중심에는 우루과이가 있었어요. 힘과 스피드를 내세우는 유럽 축구와 달리, 정교한 볼 컨트롤과 아름다운 패스로 무장한 남미 축구의 매력이 세계에 알려진 게 바로 이 대회였거든요. 암스테르담 올림픽 축구 결승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맞대결이었어요. 영국의 경제적 영향과 유럽 이민자들 덕분에 축구를 꽃피운 두 나라의 대결에서 우루과이는 달콤한 승리를 거뒀죠.

암스테르담 올림픽 이후 FIFA는 '월드컵'이라는 이름의 대회를 출범시켰고, 독립 100주년을 맞은 1930년 우루과이에서 제1회 월드컵이 열렸어요. 우루과이는 이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축구의 맹주로 떠올랐습니다. ‘축구는 영국이 발명했지만, 월드컵은 우루과이가 만들었다’는 말이 나온 이유입니다.

올림픽을 추월한 월드컵의 매출

전통적으로 FIFA 월드컵의 매출은 하계 올림픽에 미치지 못했어요. 그런데 2010년대 들어 두 대회의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더니, 마침내 역전이 일어납니다.

월드컵이 올림픽 매출을 처음으로 넘어선 시점은 2018년이었어요. 2018 러시아 월드컵 매출이 61억 달러(약 9조 원)였던 반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56억 달러(약 8조 4,000억 원)에 그쳤거든요.

이 격차는 2020년대 들어 더 벌어졌습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매출은 75억 달러(약 11조 3,000억 원)였는데, 2021 도쿄 올림픽은 58억 달러(약 8조 7,000억 원), 2024 파리 올림픽은 45억 유로(약 7조 9,000억 원)로 모두 월드컵에 미치지 못했죠.

월드컵이 올림픽을 앞지른 결정적인 배경에는 이 시기에 축구가 전 세계가 끊임없이 소비하는 대표 콘텐츠로 폭발했다는 흐름이 있어요. 19세기 말부터 다져진 축구의 대중성은 21세기 들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앞세운 유럽 프로축구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거든요.

EPL 경기에 열광하는 케냐의 축구팬들  / 사진: Reuters

UN 가입국 193개국 중 무려 191개국에서 EPL이 중계된다는 사실만 봐도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어요. 유럽 프로축구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들의 경기를 일상적으로 접한 팬들은 월드컵에 나오는 주요 선수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친숙해졌죠. 자국 대표팀이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하더라도 경기를 봐야 할 이유가 생긴 셈입니다.

반면 하계 올림픽을 향한 관심은 갈수록 식어가고 있어요. 올림픽에도 세계적 스타들이 총출동하긴 하지만, 축구에 비하면 평소 자주 접하기 어려운 비인기 종목 선수가 많다 보니 대회 직전에야 이름을 알게 되는 경우가 흔하거든요. 한마디로 올림픽은 ‘스타 파워’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입니다.

중계권료와 티켓값을 끌어올린 48개국 체제

2026 북중미 월드컵의 매출은 약 13조 5000억 원으로 평가됩니다. 이 매출은 크게 중계권, 티켓 판매, 스폰서십에서 나오는데요. 이 중 가장 중요한 건 단연 중계권이에요. 2006 독일 월드컵 때 약 13억 달러(약 1조 8,000억 원)였던 중계권료는 이번 대회에서 약 39억 달러(약 6조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20년 사이 3배 넘게 올랐죠.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 중계권료가 약 34억 달러(약 4조 8,000억 원)였던 걸 생각하면, 이번 상승 폭은 상당히 가파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본선 참가국과 경기 수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에요. 카타르 월드컵이 32개국·64경기였던 데 비해, 이번 대회는 48개국이 참가하면서 경기 수가 104경기로 불어났거든요.

2026 월드컵 기준으로 중계권 매출의 약 39%는 유럽에서, 개최국(미국·멕시코·캐나다)이 포함된 북중미에서는 약 27%가 발생할 것으로 보여요. 아시아와 오세아니아는 약 19%를 차지하죠. 남미의 비중은 약 9%에 그칩니다. 남미는 축구 열기는 세계 최고지만,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기 때문이에요. 나머지는 아프리카와 중동 등이 채웁니다.

티켓 판매 수입의 성장세는 더 가파릅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의 티켓 수입이 약 1조 5,000억 원이었던 반면,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4조 5,000억 원으로 껑충 뛸 전망이거든요. 이번 대회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티켓 수입이 스폰서십 수입(약 3조 원)을 앞지를 게 확실해 보입니다.

티켓 수입이 오른 데에는 참가국과 경기 수가 늘어난 영향이 큽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FIFA가 이번 대회에 사상 처음으로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했다는 변화도 한몫했습니다. 수요가 몰리는 인기 경기일수록 가격이 실시간으로 치솟다 보니, 결승전 같은 빅매치 티켓은 한 장에 1,300만 원을 넘는 경우까지 생겨났거든요. *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을 실시간으로 바꾸는 변동 가격제예요. 항공권이나 호텔 요금에서 흔히 쓰입니다.

광고를 위한 쉼표,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와 하프타임 쇼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는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와 ‘하프타임 쇼’가 새롭게 도입됩니다. 두 가지 모두 표면적으로는 선수와 팬을 위한 장치지만, 그 이면에는 매출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이 숨어 있어요.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는 전반 22분과 후반 22분에 각각 3분씩 쉬며 수분을 보충하는 제도예요. 사실 이 제도에는 절박한 배경이 있습니다. 이번 대회 16개 개최 도시 중 9곳이 ‘폭염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될 만큼 더위가 심각하거든요. 준결승과 결승이 열리는 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은 결승 킥오프 시간(현지 오후 3시)에 기온이 32도까지 오를 수 있어, 선수 보호를 위한 휴식이 꼭 필요한 상황이에요.

하지만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는 동시에 '광고 브레이크'이기도 합니다. 전·후반 합쳐 6분의 휴식 동안 방송사가 광고를 내보낼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요. 기존에는 15분 하프타임에만 광고를 넣을 수 있었는데, 이제 광고 시간이 총 21분으로 늘어나는 셈이죠.

광고 시간을 더 확보한 방송사는 수입이 늘고, 이는 다음 대회 중계권료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흥미롭게도 경기장 수분 보충대를 책임지는 게 코카콜라의 스포츠음료 브랜드 '파워에이드'라는 점도, 이 짧은 휴식이 상업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파워에이드 광고로 전광판을 가득 채우는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 사진: Reuters

그동안 NFL 슈퍼볼에서나 볼 수 있던 '하프타임 쇼'도 월드컵 결승전에 사상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마돈나, 샤키라, 그리고 BTS가 공동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르고,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이 전체 무대를 총괄하기로 했는데요.

세계적 뮤지션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만큼,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월드컵 결승전에 채널을 맞추게 할 비장의 카드예요. 결승전 순간 시청률이 치솟으면, 자연스레 광고 단가도 함께 오르겠죠.

8개국 우승 카르텔 이번엔 깨질 수 있을까

월드컵은 지금까지 단 8개국(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만 우승을 나눠 가진 무대였어요. 그런데 2014, 2018, 2022년 우승국을 내리 맞힌 독일 경제학자 요아힘 클레멘트는 이번에 이 카르텔이 깨질 것이라 예측합니다.

1인당 GDP, 인구, 기후 같은 경제·환경 변수로 짠 그의 모델이 내놓은 우승팀은 아직 한 번도 정상에 오른 적 없는 네덜란드거든요.

하지만 이마저도 예측일 뿐이에요. 클레멘트 자신도 "내 예측에 돈을 거는 사람은 구제 불능"이라며 승부의 상당 부분은 운에 달려 있다고 말하니까요.

사실 월드컵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여기, '세상에서 가장 결과를 점치기 어려운 스포츠'라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13조 원이 넘는 거대한 매출도 바로 이 불확실함에서 나와요. 끝을 알 수 없기에 전 세계가 같은 시간 숨죽여 지켜보고, 그 뜨거운 시선이 곧 천문학적인 중계권료와 광고비, 티켓값으로 바뀌는 거죠.

첫 경기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순조롭게 월드컵을 시작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사진: Reuters

과연 이번 월드컵에서 8개국 우승 카르텔은 깨질까요? 우리 대표팀은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까요? 부디 클레멘트의 예상을 뛰어넘어 가장 높은 곳에 닿기를 기대해봅니다. 월드컵은 누가 뭐래도, 한국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마법 같은 무대니까요.


Edit 윤동해 Graphic 조수희

이종성 에디터 이미지
이종성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 스포츠 기자로 일하던 중, 스포츠가 사회문화 현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늦은 나이에 영국 DMU(드몽포트) 대학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야구의 나라》, 《스포츠문화사》, 《세계사를 바꾼 월드컵》과 《A History of Football in North and South Korea: c. 1910~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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