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농구

농구를 넘어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이 된 NBA

by 이종성

  •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 출신 구단주들이 만든 변화

  • NBA 포스트시즌*이 한창입니다. 이번 시즌에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노리는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활약으로 팬들의 관심이 더욱 뜨겁습니다. NBA가 요즘 이렇게 주목받는 건 이제 농구 리그를 넘어,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에요.

    * 포스트시즌: 정규 시즌이 끝난 뒤 열리는 모든 경기

    NBA에서 최근 눈에 띄는 건 미국 국적이 아닌 선수들의 활약이 눈부시다는 점입니다. 2018-19 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7시즌 연속으로 유럽, 아프리카, 캐나다 출신 선수들이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거든요. 이런 모습은 NBA가 글로벌 콘텐츠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20-21, 21-22, 23-24 시즌 MVP를 차지한 세르비아 출신 니콜라 요키치 / 사진: 로이터

    산업적으로도 NBA는 발 빠르게 시대를 읽고 있어요. 한때는 전통적인 방식에 얽매인 리그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제는 OTT와 소셜 미디어를 가장 잘 활용하는 스포츠 리그로 평가받고 있죠. 어떻게 NBA는 이런 변화를 이끌어냈을까요?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 출신 구단주들이 만든 변화

    NBA는 2010년대 이후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았어요. 과거에는 지역 기업가들이 농구팀의 구단주가 된다는 건 연고지의 명예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여겨졌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 출신의 기술·금융 전문가들이 구단을 사들이고 있어요. LA 클리퍼스의 구단주 스티브 발머처럼 기술과 데이터, 그리고 콘텐츠 비즈니스에 강점을 가진 이들이 NBA를 이끌고 있죠.

    실리콘밸리나 월스트리트 출신 구단주들이 NBA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이유는 이들이 젊은 시절 마이클 조던을 중심으로 한 NBA 황금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농구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단순히 농구만 좋아해서 NBA팀의 구단주가 된 것은 아닙니다. MLB나 NFL은 경기에 뛰는 선수의 수가 많아서 승리를 위한 변수가 상대적으로 NBA보다 더 많습니다. 하지만 농구는 5명이 뛰기 때문에 한두 명의 스타급 선수들이 가지는 영향력이 매우 크죠. 기술·금융 전문가들에게 NBA는 데이터를 활용한 경기 전략과 적절한 선수 트레이드를 통한 빠른 전력 극대화에 안성맞춤이었던 리그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농구는 축구 다음으로 글로벌 확장성이 큰 스포츠라는 점도 중요했어요. 야구나 미식축구처럼 특정 지역에서만 사랑받는 종목과는 달리, 북미, 유럽, 아시아 어디서나 큰 관심을 받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NBA는 글로벌 시장을 중시하는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였어요.

    구단주의 배경이 바뀌면서 NBA의 매출 변화도 확실히 드러나요. 2009-10 시즌에 5조 2,500억 원이었던 매출이 최근 시즌에는 15조 6,000억 원을 넘었습니다. 데이터 기반의 전략과 빠른 실험으로 이런 성장을 만들어냈죠. 유니폼 광고, 트레이드 활성화, 3점슛 중심 전술 혁신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에요.

    NBA의 혁신에는 유대계 구단주들의 역할도 눈에 띕니다. 실제로 최근 10년 동안 무려 8번이나 유대인 구단주가 투자한 팀이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입니다. 여기에 현 NBA 총재인 아담 실버도 유대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NBA의 혁신을 주도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죠.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교육과 상업, 금융 분야에서 강한 경쟁력을 키워왔어요. 미국 전체 인구의 2.4%에 불과하지만, 미국 억만장자의 40%가 유대계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경제적 영향력이 큽니다. 데이터를 중시하고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이들의 경영 방식은 NBA를 단순한 ‘경기장을 보유한 스포츠팀’이 아니라 글로벌 IP와 데이터, 콘텐츠 비즈니스로 확장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이끌었습니다.

    혁신을 이끌고 있는 NBA 총재 아담 실버 / 사진: 로이터

    팬들이 원한다면 규칙도 바꾸는 유연함

    NBA는 팬들이 더 재미있게 경기를 볼 수 있다면 규칙도 기꺼이 바꿔왔어요. 경기가 즐거워야 팬이 늘고, 팬이 많아진다면 수익은 덩달아 따라오기 때문이죠.

    그래서 핸드체킹 금지(2004-05 시즌)로 외곽 공격수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수비 3초 규칙(2001-02 시즌)으로 골밑 수비를 약화해 코트를 넓혔습니다. 공격 리바운드 후 샷 클락은 14초로 단축(2018-19 시즌)해 경기 속도를 높였고, 3점슛 시도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그 결과,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팀당 경기당 3점슛 시도는 18회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37회를 넘었어요.

    NBA 3점슛 전술의 아이콘, 스테판 커리 / 사진: 로이터

    2021년에는 7~10위 팀들이 플레이오프*를 놓고 토너먼트를 벌이는 ‘플레이 인 토너먼트’도 생겼어요. 정규 시즌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거죠. 2023-24 시즌부터는 정규 시즌 중간에 ‘인시즌 토너먼트’까지 열어 유럽 축구처럼 또 다른 트로피 경쟁을 만들었어요. NBA는 경기 규칙을 단순한 룰이 아니라, 팬들이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콘텐츠 설계의 일부로 보고 있어요.

    * 플레이오프: 포스트 시즌 중, 정규 시즌 상위 팀들이 우승을 놓고 겨루는 토너먼트 경기

    넷플릭스, 디즈니 버금가는 콘텐츠 왕국을 꿈꾸는 NBA

    NBA는 경기 중계뿐만 아니라 경기장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을 콘텐츠로 만듭니다. 감독의 작전회의, 벤치에서의 리액션, 선수들끼리의 대화까지도 NBA 리그패스*에서 그대로 볼 수 있죠. ESPN과 TNT 같은 중계 파트너사도 이런 영상들을 공유받아서 프리·포스트쇼나 SNS 숏폼 영상으로 가공해 더 많은 팬을 붙잡고 있어요.

    * NBA 리그패스: NBA에서 직접 운영하는 OTT 서비스

    라커룸 비하인드 영상, 팬 인터뷰, 팀별 다큐멘터리 시리즈까지도 만들어내요.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에서 활약하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The Last Dance>처럼 농구 경기 너머의 이야기를 ‘팔리는 IP’로 키워가는 거죠. 요즘 팬들은 단순히 누가 이겼는지만이 아니라, 누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까지도 궁금해합니다. NBA는 이 모든 순간을 이야기로 가공해서 2차 콘텐츠로 풀어냅니다.

    선수들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NFT 형태로 거래하며 보유할 수 있는 NBA Top Shot

    최근에는 VR과 NFT 같은 새로운 기술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어요. 리그패스에 VR 중계 기술을 도입해 마치 경기장에 직접 있는 것처럼 몰입감을 높이고, NBA Top Shot 같은 NFT 플랫폼을 통해 명장면을 디지털 소유권으로 만들어 팔고 있죠. 팬들은 이걸 사고팔며, NBA와의 관계를 데이터와 디지털 자산 차원에서 더 깊게 쌓아가고 있어요. 특히 NBA Top Shot의 누적 거래액은 1조 4,000억 원을 돌파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이제 NBA는 단순히 농구 경기만이 아니라, 이야기와 데이터, 디지털 소유권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비즈니스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SNS 영향력 1위 스포츠 리그, NBA

    NBA는 소셜 미디어에서도 압도적인 영향력을 자랑합니다. 디지털 미디어 분석업체 퀄트릭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대 소셜 미디어에서 NBA의 팔로워는 2억 600만 명을 넘습니다. 이는 NASA와 넷플릭스보다 많은 수치이며, UFC와 NFL 같은 다른 스포츠 리그들과 비교해도 큰 격차를 보입니다.

    이런 영향력은 NBA가 팬들이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어내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담 실버 NBA 총재는 “팬들이 만드는 하이라이트는 스낵이에요. 스낵을 먹으면 결국 정식 식사(정규 중계)를 찾게 됩니다.”라고 말한 바 있죠. 실제로 NBA는 인플루언서나 팬 크리에이터들을 주요 이벤트에 초대해, 그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NBA를 해석하고 전파하게끔 도와주고 있어요.

    다른 프로 스포츠 리그들은 팬들이 올린 경기 영상을 저작권 침해로 규제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NBA는 오히려 팬 콘텐츠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죠. 구단들도 소셜미디어 전담팀을 두고 선수들의 훈련 영상이나 개인적인 순간을 SNS에 공유하고 있어요.

    보스턴 셀틱스는 동영상 하이라이트를 제공하면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농구 작전 판처럼 볼 수 있는 컨텐츠도 만들고, 경기 후에 스타 선수가 어떻게 컨디션을 회복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영상도 포스팅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셀틱스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이미 700만 명을 넘었습니다. 팬들이 소비하는 콘텐츠를 통해 나오는 광고 수입은 보스턴 셀틱스 구단의 또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되고 있죠.

    NBA가 오랜 인연을 뒤로 하고 아마존과 새로 손 잡은 이유

    NBA의 급격한 매출 성장에는 중계권 계약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002-2003 시즌을 앞두고 NBA는 6시즌 동안 5조 5000억 원에 달하는 중계권료 계약을 체결했었는데, 2016-17 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9시즌 동안은 33조 원이 넘는 중계권료를 받았습니다. 이를 한 시즌 평균으로 환산하면 3조 6000억 원이 넘는 거액입니다. 다음 시즌부터는 한 시즌에만 9조 5,000억 원이 넘는 중계권 수익을 올릴 전망입니다. 직전 중계권 계약에 비해 금액이 3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죠.

    흥미로운 건, NBA가 35년 동안 중계권을 보유했던 TNT 스포츠 대신 아마존을 새로운 중계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사실입니다. TNT 스포츠가 제시한 금액은 아마존과 동일했음에도 불구하고, NBA는 아마존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왜 NBA는 아마존을 새로운 중계 파트너로 선정했을까요?

    NBA는 이제 케이블 TV 중심의 중계가 시대에 뒤처진 방식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 내 케이블 TV 가입 가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OTT가 대세가 되고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OTT 서비스는 글로벌 확장력이 뛰어납니다. NBA는 이미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인 리그패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마존 같은 글로벌 OTT 파트너를 통해 리그의 해외 팬을 더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고객 데이터에 있습니다. 기존 방송사는 단순히 시청자 수만 알려줬지만, 아마존은 “뉴욕에 사는 21세 남성이 스테픈 커리 경기를 23분 시청했고, 나이키 구매율이 평균보다 25% 높다” 같은 데이터를 NBA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NBA는 이런 데이터를 스폰서나 파트너사에 다시 팔아 새로운 수익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이제 NBA는 단순히 농구 경기만 보여주는 무대가 아닙니다.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모든 순간을 이야기로 만들고, 그 이야기를 데이터로 바꿔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이죠. NBA가 만드는 이 흐름은 모든 스포츠 팬과 산업계에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dit 윤동해 Graphic 이은호 윤자영

    이종성 에디터 이미지
    이종성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 스포츠 기자로 일하던 중, 스포츠가 사회문화 현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늦은 나이에 영국 DMU(드몽포트) 대학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야구의 나라》, 《스포츠문화사》, 《세계사를 바꾼 월드컵》과 《A History of Football in North and South Korea: c. 1910~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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