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스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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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뮤 클럽

계절의 맛을 찾아 모이는 디저트 클럽

크레뮤 클럽. 2023년 4월 문을 연 송리단길(서울 송파동)의 디저트숍. 제철 재료와 크림을 중심으로 디저트와 음료를 선보이며, 평범한 재료도 새로운 조합과 플레이팅을 통해 색다른 경험으로 변주해낸다.

시그니처 디저트

파블로바

파블로바

나는 호주의 대표적인 과일 디저트야. 겉은 바삭하고 속은 푹신한 머랭 위에 크림과 크럼블, 제철 과일이 올라가지. 한 입 베어 무는 것만으로도 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고! 나는 쉽게 만들어진 디저트는 아니야. 달걀 흰자가 주인공이라 비린내를 잡는 데 사장님이 꽤 애를 썼거든. 구웠다 버리기를 몇 판이나 반복했던지, 백기를 들 만도 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끝에 나를 만난 거지. 지금은 홀케이크로 주문이 들어올 만큼 사랑받는 크레뮤의 얼굴이 되었어. 계절마다 바뀌는 내 얼굴을 보러 크레뮤 클럽에 와주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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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뮤 클럽’이라는 이름이 흥미로워요. 무화과가 제철일 때는 ‘무화과 클럽’, 딸기의 계절일 때는 ‘딸기 클럽’ 모여라 하는 식의 SNS 워딩도 정답더라고요.

말씀하신 대로예요. ‘함께 소속되는 기분’을 주는 ‘클럽’이란 단어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해요. 제철 재료를 중심으로 ‘밤 클럽’, ‘무화과 클럽’ 같은 일종의 초대 태그를 만들고, 손님들을 그 시즌의 이야기 속으로 데려오는 방식이 우리만의 매뉴얼이 되었어요. 실제로 철이 끝나면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맛볼 수 없는 메뉴가 되어버리는 실정이니, 그 시즌의 클럽에 소속돼주셔야만 계절의 참맛을 누리실 수 있는 거죠. 처음엔 ‘크레뮤 러빙 클럽’이었는데, 이름이 가진 귀여움의 강도가 생각보다 높아서 여섯 달 만에 ‘러빙’을 생략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거의 모든 디저트에 크림이 들어가는 편이어서, ‘크림 클럽, 크레뮤 클럽’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좋은 선택이었네요.

지금의 클럽을 열기 전의 사장님은 어디에 소속되어 계셨나요? 혹은 자유로운 영혼이셨으려나요.

스무 살에 호주의 요리학교에 진학했는데요. 코스 요리를 배우는 과정에서 디저트 파트까지 경험하게 되는데, 저는 메인요리보다 디저트 쪽이 맞다는 걸 학교에서 깨달았어요. 요리는 매 순간 조정하고 반응해야 되는, 약간은 즉흥적인 영역으로 다가왔다면, 디저트는 정확한 계량과 작업수순이 맞물려 기대한 형태대로 내놓을 수 있는 수학적인 영역으로 다가왔어요. ‘아, 나는 후자의 작업에 더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자각했죠. 호주에서 보낸 5년간, 요리를 배우고 베이커리 매장에서 일을 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디저트가 단순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제 삶의 소명이라는 확신이 든 것 같아요. 그 생각이 들자마자 영주권을 위해 요리사를 준비하는 그때의 시간이 희생처럼 느껴졌고, 곧바로 귀국을 결심했어요. 디저트를 해야겠다, 그것도 나만의 디저트를. 그런 비장함도 섞여 있었어요.

요리에서 디저트로 소속을 옮기신 거였군요? 크레뮤 클럽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귀국한 뒤로는 카페에서 1년 반 정도를 직원으로 일하고, 이어서 디저트회사의 R&D 팀에서 7~8개월을 근무하면서, 국내 업계의 시스템을 체득할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독립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첫 공간은 방이동에 잡았어요. ‘어거스트올리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요. 그전에 R&D 팀에서 일한 지 6개월쯤 됐을 때 투자 제의가 와서 성수에 오픈할 기회가 있어서 서울대입구 쪽에서 잠실로 집을 옮기기도 했거든요. 결국에 그 프로젝트는 무산되었지만, 저는 어쩌다 보니 연고 없는 지역에서 살게 되었죠. 직주근접을 선호했기에 작게라도 나만의 가게를 시작하자 하고 연 것이 어거스트올리브였고, 이 공간을 하면서 자신이 붙었어요. 그렇게 조금 다른 거리, 다른 상권에서 거기 어울리는 새로운 콘셉트의 디저트숍을 만든 것이 크레뮤 클럽의 시작이에요.

디저트 메뉴는 어떤 식으로 개발하게 되는지 궁금해요.

제철 디저트를 많이 선보인다고 말씀드렸는데, 제철이 오기 전에 이미 메뉴가 완성돼 있어야 하니까, 저는 ‘제철 이전의 제철’을 살아가는 느낌이에요. 패션쇼를 준비한다고 하면 상상이 되시려나요? 저는 동네 산책이나 온라인 서핑을 통해 찾은 이미지들을 무드보드로 저장하는 편이에요. 인상적인 이미지를 만나면 어떻게 나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구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뒤에, 내 메뉴로 개발하는 실제 과정을 거쳐요. 주말을 빼고는 낮 시간의 주방이 거의 연구실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조용하고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이죠.

무화과가 제철일 때는 무화과를 중심으로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다. / 사진제공: 크레뮤클럽
무화과가 제철일 때는 무화과를 중심으로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다. / 사진제공: 크레뮤클럽

올해로 2년차를 맞은 크레뮤 클럽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저희끼리는 올해를 크레뮤 클럽의 시즌2라고 부르고 있어요. 올해 초 인테리어를 대대적으로 바꾸기도 했고요(작년에는 권리금에 포함되어 있던 인테리어를 거의 안 고치고 이어받았었죠). 또 크레뮤 클럽의 특색이기도 한 ‘정말 많은 디저트 라인’을 과감히 가지치기했어요. 비교적 화려한 데코레이션에서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클래식한 형태로 룩의 방향성도 정비했고요. 워낙에 다채롭게 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강했던지라, 오픈 초기에는 프렌치토스트만 다섯 가지를 만들었고, 파나코타, 티라미수, 치즈케이크까지 스무 가지가 넘었어요. 그런데 이런 다양성은 때로는 브랜드를 흐리더라고요. 이미 SNS에서 보고 기대하고 온 메뉴가 있는데, 막상 와보니 주어진 너무 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시그니처에 대한 강렬한 인상이나 확신을 잃고 선택을 주저하는 손님들이 적지 않았어요. 또 이곳이 흐름이 빠른 상권인 만큼, 변화와 진화를 더 적극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올해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잡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희 정체성의 큰 축이 돼주는 파블로바, 프렌치토스트, 치즈케이크, 이 세 가지는 변치 않는 메인 카테고리이고, 줄였다고는 해도 도합 12가지 정도 되는 디저트를 상시 맛볼 수 있답니다.

크레뮤 클럽이라는 공간은,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뀌고 성장하는 유기체처럼 느껴지네요. 이곳은 어떤 분들이 함께 꾸려가고 계시나요?

지금은 바리스타 두 분과 파트타이머 한 분, 그리고 주방 파티시에 한 분이 함께하고 있어요. 모두 밝고 에너제틱하고 다정한 분들이죠. 운영 초기에 함께 일할 분들을 구할 때에는 경력과 기술을 주로 봤어요. 가게가 바쁠 때는 손이 빠르고 경험이 있는 분들이 안정감을 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이 일은 체력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소모가 큰 업무예요. 그런 만큼 화려한 이력보다는 ‘끝까지 즐거움을 잃지 않을 수 있게끔 지탱해줄 열정을 지니고 있는가’가 결국 제일 중요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즐거움을 유지한다는 건 단순히 유머감각이나 노련함이 아니라, 열정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니까요.

방금 해주신 말씀은 자기만의 매장을 꿈꾸는 후배 자영업자에게도 좋은 조언이 되겠네요.

맞아요.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점검해보고, 이 마음이 흐려질 때면 다시 초심을 환기해주어야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인 난관, 그러니까 인력·세금·공간·인테리어 같은 문제들은 실제 운영이 시작되면 상상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위협적인 변수로 다가오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크레뮤 클럽이 성장했으면 좋겠고, 그 성장의 기쁨을 팀과 나누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이 일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식의 성장일까요? 크레뮤 클럽의 다음 단계가 궁금해집니다.

단기적으로는 1~2년 안에 2호점을 내고자 예정하고 있어요.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 공간을 다시 설계해보고 싶고, 브랜드 서사가 어떻게 달라질지 탐구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확장’이라는 말이 저한텐 아직 조심스러워요. 그냥 가게 숫자를 늘리는 방식이라면 의미가 없어요. 저는 팀이 더 많은 기회를 만들고, 저 또한 업무를 내려놓고 믿고 맡기는 방법을 배워야 해요. 경영은 생각보다 무겁고, 그 무게를 혼자 감당하는 방식은 지속적이지 않더라고요. 크레뮤의 성장을 위해서는 경영자인 저부터 성장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크레뮤 클럽

권지현비터스윗 모먼트

Bitter moment

손님들은 ‘지금’을 맛보고 오지만, 시즌별 디저트를 만드는 저는 ‘3개월 뒤의 계절’을 살아야 하잖아요? 그 시차는 늘 큰 도전으로 느껴져요. 작년 이 계절보다, 바로 직전 시즌보다 나아져야 해야지 하는 생각도 강하고요. 단골손님도 많아지고 있고, 매출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는데, 그렇게 사랑해주시는 만큼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져요.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은 거의 전투 수준이에요. 하루 네 시간 자면서 버티는 고단한 날들이 끝나고 나면, ‘끝났다는 게 아쉽다’와 ‘이제 좀 쉬고 싶다, 후련하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찾아오는 듯합니다.

Sweet moment

실은 시그니처로 소개드린 파블로바가 제게는 ‘아픈 손가락’이었어요. 계란 흰자가 메인인 디저트라 비린내를 잡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몇 판을 통째로 버려가면서 디벨롭하는 과정이 꽤 고통스러웠죠. 그렇게 오래 공들인 디저트인데 작은 사이즈로만 판매하던 이 메뉴를 홀케이크로 만들어달라는 손님을 만났을 때에는 ‘아, 이제 이 메뉴는 내 손을 떠났구나, 잘 컸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파블로바는 보는 순간 시선부터 사로잡는 디저트라서, 예쁜 것을 사랑하는 손님들에게는 거의 완벽한 선택이에요.

글 쪽프레스 jjokkpress

출판사.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레이블로,
콘텐츠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선보입니다. 2018년부터는 ‘쪽’이라는 이름에 담기지 않는
묵직한 콘텐츠를 ‘고트’라는 이름으로 전개합니다.

푸드스타일링·사진 더 스피니치 THE SPINACH x JW studio

푸드콘텐츠에이전시. 음식이 가진 본질과 브랜드의
결을 정확히 읽어 이미지로 담아냅니다.

Directed & Food-Styled by 박명원 Photographed by 김신욱·엄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