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무대 삼는 어머니의 작은 방앗간
정남미명과. 1986년 엄마가 차린 작은 방앗간을 뿌리로 삼아, 2021년부터 딸이 국내 농산물로 한국식 디저트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강원 강릉 견소동에 위치한 정남미명과의 구황작물빵은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시그니처 디저트
구황작물빵

안녕, 나는 우리 농산물의 기억을 품고 태어난 빵이야. 밀이 아니라 쌀 반죽으로 만들어진 건 밥이 가진 부드러움과 쫄깃함을 살리기 위해서지. 품속에는 국내산 농산물을 찌고 으깨 넣은 속이 들어 있어. 뿌리채소와 곡물의 속살 그대로! 사회생활 하다 보면 겉과 속이 다른 부류가 많잖아? 나는 보이는 대로, 투명해. 덕분에 먹기 전부터 이미 포만감이 느껴진다니까. 쌀로 빚은 한 줌의 농촌, 흙 본연의 향이 궁금하다면 나를 찾아줘!
베이커스 스토리
어머니의 방앗간은 어떻게 딸의 디저트 무대가 되었나요?
정남미명과의 시작은 어머니의 한마디에서 비롯됐어요. “쌀을 시루에 찌면 떡이 되니, 오븐에 구우면 빵이 되지 않을까?” 단순하지만 강렬한 이 아이디어가 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습니다. 무엇보다 제게는 낡아가던 정남미 여사의 방앗간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있던 것 같아요. 30여 년 쌀과 농산물을 다루던 그 공간은 가족의 역사 그 자체였으니까요. 그 마음으로 우리 농산물의 힘을 믿고, “쌀이라는 재료로 어디까지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밤낮없이 연구했답니다. 그 결과 떡과 빵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형태의 디저트가 탄생했고, 그것이 정남미명과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구황작물빵의 탄생 배경을 자세히 듣고 싶어요.
창업을 준비하면서 30년 이상 떡을 만들어오신 어머니 경력을 살리면서 지역농산물 소비도 늘리면 좋겠다 싶었어요. 떡은 60대 이상 어르신만 좋아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청년들이 좋아할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찹쌀떡을 변주한 찹쌀빵이 딱이겠다 싶었죠. 직접 제분한 국산 찹쌀가루를 반죽하고 오븐에 굽는데요. 반죽에 타피오카 전분을 섞어 쫀득한 식감은 유지하면서 독특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포인트예요. 속재료에는 우리 농산물을 아낌없이 쓰죠. 감자·고구마를 직접 찌고 으깨서 소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원물 함량이 30퍼센트가 넘어요. 양파·대파 빵은 크림치즈에 원물을 섞어 부드러우면서 풍성한 향을 내고요. 강릉 명물로 자리 잡은 것부터가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쌀, 시루, 떡, 우리 농산물…… 이런 낱말들만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요. 한국의 재료로 한국식 디저트를 만든다는 건, 우리에게도 정말 좋은 일이지만 해외에 한국을 소개하는 좋은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어요.
요즘은 저희 브랜드를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다’고 소개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요. 미국, 싱가포르, 일본 등에 구황작물빵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최근 도쿄 다이마루백화점 팝업 때는, 오픈 직후부터 사람이 몰려서 두세 시간 대기 줄이 생기기도 했어요. 한 손님이 아침부터 기다리시다가 본인 앞 순서에서 품절되는 바람에, 이튿날 다시 도전하셔서 이번에는 성공하셨거든요?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한국에서 먹은 맛이 잊히지 않아서, 도쿄 팝업 소식을 듣자마자 월차를 내고 왔습니다.” 우리가 만든 먹거리가 누군가의 시간, 기다림, 도전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 그 사랑을 새삼 실감했어요. 또 먹기 위해서 한국 여행을 오실 거라고 해주셨으니, 좋은 매개가 된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국내외를 오갈 만큼 넓은 규모와 범위의 일이겠군요. 재료를 수급하려면 지역 농가와 긴밀해야 하고, 해외 유통을 관리하려면 현장에도 운영 인력이 필요하겠어요.
맞아요. 브랜드의 초석은 ‘제조’라고 볼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지역 농가와의 관계지만, 글로벌 진출을 준비하면서는 다른 영역의 팀도 필요해졌어요. 글로벌 브랜딩을 위한 디자인팀, 해외 팝업을 운영하는 현장 관리팀, 물류·라벨링 등을 맡는 실무팀 등이 형성되었죠. 요즘은 해외에서도 SNS 리뷰들이 많이 올라오는 편이에요. 한국을 대표하는 쌀 중심의 K-베이커리 브랜드가 되자는 것이 제 미션인데요. 밀 중심의 글로벌 베이커리 시장에서 “한국이 쌀로도 충분히 세계기준을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쉴 시간이 없으실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제 성격이 쉬는 날 ‘아무것도 안 하기’가 불편한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몸은 쉬더라도 머리는 브랜드로 채워지죠. 새로 생긴 빵집, 반응 좋은 카페, F&B 브랜드는 직접 다 가봅니다. 해외여행도 자주 가고요. 맛, 패키지, 동선, 고객 반응, 가격대를 보면서 내 브랜드와 견주고 가늠해보는 거예요. 어찌 보면 여행이고 산책이지만, 이런 휴식 겸 시장조사가 결국 다음 스텝을 밟는 데 있어서 중요한 준비 훈련이 된다고 믿어요.
쉼을 일의 준비기간으로 삼으시는군요. 그럼 그렇게 채집한 재료들은 어떤 식으로 활용되나요?
여행하면서 마음에 드는 그림, 풍경, 문구 등을 마주하면 바로 메모하고 촬영하죠. 하루이틀 사이에 사라지는 것들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며칠이 지나도 그 강렬한 인상이 남아요. 그런 것들은 스케치나 텍스트로 구체화해서 R&D팀이나 디자인팀과 공유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실제 제품 및 브랜드에 적용하는 단순한 흐름을 가장 좋아합니다. 워낙 구경하고 많이 보는 걸 즐기는 편이라, 국내외 브랜드 모니터링하는 걸 습관처럼 해요. 좋은 브랜드는 일관된 가치를 반복해서 말해주더라고요. 일관된 세계관과 톤이 유지되는 브랜드들의 색감, 구조, 메시지 같은 걸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시뮬레이션해보고는 해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정남미명과의 메시지를 남겨주시겠어요.
아까 잠깐 말씀드렸던 쌀 중심의 K-베이커리. 글로벌 입맛도 사로잡는 ‘쌀 + 농산물’ 조합의 매력을 앞으로도 꾸준히 증명하고 싶어요. 우리만의 정체성은 땅이라는 로컬과 연결되어 있고, 이는 세계 무대로까지 확장될 수 있어요. 한국 쌀베이커리의 정석, 정남미명과의 행보를 응원해주세요.
정남미명과
김보연의 비터스윗 모먼트
Bitter moment
현 시점에서 가장 힘겨운 건 함께 일하는 사람들 안에서 갈등을 마주할 때예요. 브랜드 성장이라는 같은 목표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아니 오히려 같은 목표를 지니기 때문에, 업무 중 충돌하는 순간에는 서로 양보하기 힘들어지는 일이 생겨요. 싸움의 중심에 있지 않더라도, 팀의 분위기가 흔들릴 때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우리 사이의 갈등은 결국 브랜드의 퀄리티나 운영 등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한층 역할과 목표를 명확하게 세분화하면서 작은 오해부터 풀 수 있는 루틴을 만들어가야겠다고 느낍니다.
Sweet moment
해마다 감정이 담긴 피드백을 더 많이 받게 돼요. 두세 시간을 짜증 없이 기다려서 구매해주시는 분들, 가족을 데리고 몇 차례나 재방문해주시는 손님들을 볼 때면 브랜드가 깊게 자리 잡았다는 뜻인 것 같아 뭉클해져요. 또 최근 방송 출연 기회가 있었는데요. 전국의 파티시에들이 모인 프로그램에서 정남미 여사가 높은 순위에 올랐답니다. 방앗간에서 평생 쌀과 농산물만 다루던 분이 전국 파티시에들과 같은 무대에서 인정받는 장면을 보는데 ‘어머니의 30년 감각과 기술이 공식적으로 증명되는 순간’이 아닌가 싶었지요.
글 쪽프레스 jjokkpress
출판사.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레이블로,
콘텐츠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선보입니다.
2018년부터는 ‘쪽’이라는 이름에 담기지 않는
묵직한 콘텐츠를 ‘고트’라는 이름으로 전개합니다.
푸드스타일링·사진 더 스피니치 THE SPINACH x JW studio
푸드콘텐츠에이전시. 음식이 가진 본질과 브랜드의
결을 정확히 읽어 이미지로 담아냅니다.
Directed & Food-Styled by 박명원 Photographed by 김신욱·엄승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