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스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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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들

이상한 디저트가 쏟아져나오는 알록달록 실험실

원형들. 2021년 7월 서울 충무로 4층에서 시작한 디저트바로, 목-일 13-19시 운영한다. 실험정신과 비주얼감각이 돋보이는 케이크를 주로 선보인다. 재료 본래 맛과 디자인 형태를 ‘원형’ 삼아 소개한다.

시그니처 디저트

말차 슈톨렌

말차 슈톨렌

나는 말차 슈톨렌이야. 홀리데이 시즌의 기프트 메뉴로 이제 막 태어났지. 제주에서 재배된 유기농 찻잎을 통째로 곱게 갈아 만든 말차 가루를 사용해서, 찌꺼기 없이 쌉싸름함과 감칠맛, 구수한 단맛이 감미로워. 각종 견과가 으깨져 말랑하게 버무려진 마지팬은 두말할 것 없이 환상적이고! 인생 경험이 길진 않지만, 난 ‘원형들’의 전당에 오르리라는 확신이 있어. 초록과 레드 포인트 컬러를 입은 슈톨렌이 특별한 기프트 패키지에 담겨 있어. 서둘러 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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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카페가 아니라 디저트바예요. 커피보다는 술과 어울리는 디저트의 재료도, 형태도 예사롭지 않아요.

저희는 처음부터 와인이나 칵테일과 페어링되는 디저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원형들’에 앞서 ‘섬광’이라는 카페 겸 와인집을 운영하기도 했고요. 베이킹과 디자인, 미술, 음악 계통 전공자들이 모여 있다 보니, 서비스나 제품의 비주얼을 중요하게 추구하고 있습니다. ‘원형들’에서는 조각케이크보다는 작더라도 완전한 형태의 홀케이크를 만들어 소개해요.

감태 앤초비 퀸아망, 새우 아스파라거스 갈레트, 고수 케이크…… 술과 함께하는 안주라고 생각하면 조합의 충격이 누그러드는 느낌입니다. 바다와 밀림이 떠오르는 이러한 조합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원형들 초기 디저트들은 독특한 재료와 비쥬얼로 작업을 많이 했었어요. 기본적으로 단짠의 디저트와 시트러스한 칵테일의 페어링 또는 쿰쿰한 내추럴와인의 조화로 많이 서비스했습니다. 고수 케이크의 경우 멤버의 생일 케이크로 만들어졌는데요. 저희들끼리 친구들의 취향과 캐릭터에 맞게 재밌는 케이크 선물을 만들어주고는 했는데, 식물 키우기에 진심인 친구의 생일에 화분 같은 케이크를 만들다가 탄생한 케이크가 고수크림 케이크입니다. 장난스럽게 시작했지만, 막상 완성된 결과물의 조화(레몬크림의 상큼함과 인퓨징된 고수의 쌉싸래함)가 좋아서 정식 라인업으로 출시했어요.

원형들에서 만든 머랭 초를 본 적이 있는데요. 전부 다 다르게 생겼더라고요. “마음에 따라 불확실하게 구워지는 이상한 머랭들”이라는 설명도 좋았어요. 완성된 케이크의 정적인 모습보다, 케이크에 초를 꽂아가며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나갈 사용자 경험도 배려하신 거구나 싶더라고요.

그 초를 이용해서 케이크를 ‘커스텀’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중 초들은 다 비슷하게 생겼잖아요? 제각각 생긴 머랭 초들을 꽂는 것만으로도 자기 케이크가 되는 거죠. 만들어진 것들의 모습이 일관되지 않고 비정형적이라는 것은, 만든 사람의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태, 결국 만든 사람의 존재를 떠올리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매번 다르게 만들어지는 것이 있고, 그걸 먹고 다루는 이들 역시 풍경을 다르게 만들어가겠죠.

마음에 따라 불확실하게 구워지는 이상한 머랭들 / 사진제공: 원형들
마음에 따라 불확실하게 구워지는 이상한 머랭들 / 사진제공: 원형들

그 어떤 디저트 브랜드보다 ‘실험’이나 ‘연구’란 말이 잘 어울리는 원형들입니다. 디저트를 ‘실험체’라고 표현하신 적도 있죠.

메뉴를 낼 때 메뉴의 종류를 먼저 생각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케이크를 만들자보다는 이끼볼 형태의 디저트를 만들고 싶은데 그럼 내부구조는 어떻게 하고 그것이 어떤 디저트의 종류가 될 수 있을까 하고 가능성을 그려보는 순입니다. 초창기 작업들은 보통 자연물에서 영감을 받아 형태를 만들었고, 동물과 계절의 색감들에서도 많이 영향을 받았어요. 조금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제게는 단어들을 수집하는 습관이 있는데요. 이 모든 실험과 연구는 낱말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긴 문장보다는 짧은 낱말들. 섬광이나 원형도 어찌 보면 베이커리와 거리가 먼 단어지만, 그래서 더 좋다고 생각했고, 그들이 시작점이 돼주었어요. 평소 기록해둔 낱말들을 한 번씩 꺼내볼 때면 지난 일들이 연결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렇게 이어지는 무언가를, 영감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케이크의 무드가 되기도 하고, 케이크의 이름이 되기도 하는…….

3년 넘게 매달 새로운 케이크를 출시해오시기도 하셨잖아요.

말 그대로 실험 연작에 가까웠죠. 한 개체가 오래 살아남는 데도 의미가 크겠지만, 여러 가지 형태로 모습을 이어오는 것 역시 ‘원형들’ 유기체의 연장이라는 생각을 해요. 새로 개발하고,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작업이 우선 재밌기도 하고요. 그 3년 넘는 시간, 빠뜨리지 않고 컬렉션 모으듯 구매해주는 분들도 계셨어요. 최근에는 잠시 쉬고 있어요. 케이크 작업 외에 케이터링이나 전시 같은 방식으로 복수의 비주얼 메이킹 작업을 선보이다 보니, 매달 선보이는 케이크 작업 속도가 더뎌지더라고요. 즐겁게 하던 작업이 부담이라는 감정으로 돌아왔고요. 일종의 재충전 기간을 잘 보내고, 소진된 영감들이 채워지면 재개하려고 합니다.

원형들은 자체 활동도 활발하지만,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보여주기도 해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레드벨벳 팝업은 전체 프로젝트를 기획운영까지 하다 보니 정말정말 힘든 작업이었고, 그만큼 내부적으로 단단해진 경험이었어요. 웁서울은 시작부터 매년 참가하고 있는데 올해에는 푸드아트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주제를 정하고 쉐어링 퍼포먼스 같은 재밌는 기획들로 정말 즐겁게 논 기억입니다. 최근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라이즈 팝업 전시에 고요손 작가님과 같이 도자기 케이크로 참여했는데요. 글로우즈한 도자기의 형태를 케이크로 만들어 실제 라이즈 멤버가 먹고 난 케이크를 전시했어요. 완성된 모양에서 변해버린 모습 그대로 관람할 수 있다는 사실이 관점 면에서도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레드벨벳’을 위해 제작되었던 장신구 초콜릿과 리본 머핀 / 사진: 원형들 인스타그램 @wonhyeongdeul
‘레드벨벳’을 위해 제작되었던 장신구 초콜릿과 리본 머핀 / 사진: 원형들 인스타그램 @wonhyeongdeul

쉼 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작업의 에너지 소모가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에너지를 뺏는 것만큼이나 에너지를 채워주는 많은 것들이 존재하니까요. 저희 매장은 충무로, 작업실은 인왕산 초입에 따로 위치하는데요. 매장에서는 매장 판매분 생산을 하고, 그 외 외부작업과 데스트업무, R&D를 작업실에서 맡습니다. 저는 매장보다는 주로 작업실에 있고요. 일의 특성상 출근이 매우 이른 편인데, 새벽시간에 스카이웨이길을 지나며 인왕산의 자연을 독차지할 때, 그 계절의 색감까지 감각할 수 있습니다. 작업이나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루틴인 것 같아요. 아예 쉴 때는 집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좋은 충전이 돼요. 장르 불문 모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요, 실사영화보다 상상력이나 그걸 시각화하는 방식에 있는 도전성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원형들

김지나, 박용준비터스윗 모먼트

Bitter moment

충무로 매장이 낡은 건물에 자리하다 보니 동파 같은 문제가 연례행사였어요. 리뉴얼하려는 이유가 동파 때문만은 아니지만 집합건물에서 한 층을 사용하다 보니 아웃테리어는 없이 운영했고, 4층이라는 위치가 항상 찾아와주는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서촌 일대 어딘가에 1층 매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층 찾기 쉽고 외관도 ‘원형들’다운 공간에서 새로운 메뉴로 인사드리려고 합니다. 매장 이전과 전면적인 메뉴 개편을 예정하기 때문에 고된 시간이 될 게 분명하지만, 새로이 전개될 모습을 그려보면서, 기운을 내어 올겨울을 지내보려고 합니다.

Sweet moment

최근 박찬욱 감독님의 〈어쩔수가없다〉 미술 부문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장면 중 연회장 씬이 있어요. 가면 무도회로 할로윈스러운 기괴한 의상과 테이블이 준비되어야 했는데, 피가 흐른 듯한 대형케이크, 눈알칵테일과 손가락 쿠키 등 기괴한 비주얼의 연회 테이블을 작업했습니다. 박찬욱 감독님은 물론 류성희 미술감독님의 빅팬이기도 했기에, 두 분과 함께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린 순간 정말 기쁘고 벅찼어요.

글 쪽프레스 jjokkpress

출판사.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레이블로,
콘텐츠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선보입니다. 2018년부터는 ‘쪽’이라는 이름에 담기지 않는
묵직한 콘텐츠를 ‘고트’라는 이름으로 전개합니다.

푸드스타일링·사진 더 스피니치 THE SPINACH x JW studio

푸드콘텐츠에이전시. 음식이 가진 본질과 브랜드의
결을 정확히 읽어 이미지로 담아냅니다.

Directed & Food-Styled by 박명원 Photographed by 김신욱·엄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