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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간 용접공

Ground Truth

15분

AI가 사무직 일자리를 위협하자 미디어와 전문가들은 오래 묻혀있던 과거의 통념을 서둘러 꺼내들었다. ‘기술 배우면 밥 굶을 걱정 없다.’ 책상 앞에 앉은 이들이 꺼낸 이 ‘블루칼라 안전론’엔 그들의 기대와 편견이 담겨있을 뿐, 정작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현실과 맥락은 제거되어 있다. 블루칼라 노동자에게 이 말이 실제 어떻게 들리는지 묻고 싶었다.

천현우는 12년을 공장에서 보낸 용접공이자 작가다. 마산의 작은 공장에서 시작한 그는 자동차 부품 공장을 거쳐 조선소 탑재 현장까지 한국 제조업의 바닥을 묵묵히 통과해왔다. 여전히 용접공으로서 육체 노동 최전선에 서 있는 천현우에게 물었다. 블루칼라는 정말 안전한가.

조선소에서 가장 힘든 일

김창선 (토스 Content Producer, 이하 창선): 현우 님은 용접공이자 작가로 일하고 계신 만큼, 이 질문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글 쓰는 일과 용접 중에 뭐가 더 어려운가요?

천현우 (작가·용접공, 이하 현우): 용접이 훨씬 힘들죠. 저에게 글쓰기는 용접 노동을 하면서 쌓은 생각을 글로 정리해 놓는 일이거든요. 전문적으로 글 쓰는 분들이라면 매일 하는 노동인 글쓰기가 힘들 수 있는데, 저에겐 용접이 더 중심인 일이라서요. 글쓰기가 용접보다 더 힘들었던 적은 별로 없었어요.

창선: 현우님은 주로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셨죠. 배를 만드는 과정에서 현우 님이 담당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현우: '탑재'라는 업무예요. 뉴스 기사 보면 거대한 배 옆에 딱 붙어서 불꽃을 파바박 튀며 용접하는 사진 많이 보실텐데요. 그 업무를 하고 있어요. 옥외 작업장에서 레고 조각 같은 거대한 블록들을 하나하나 용접으로 붙이는 업무죠. 조선소에서 가장 힘든 공정이에요.

창선: 탑재 업무의 가장 힘든 점이 뭐예요?

현우: 일단 외부에서 하는 노동이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죠. 더위, 추위, 비, 바람과 끊임없이 싸워야 해요. 두 번째  문제는 장비예요. 용접 장비는 용접공이 직접 들고 가야 합니다. 중공업 용접은 철판이 엄청 두껍잖아요. 그러다 보니 장비도 상당히 무거운데 그런 중장비를 들고 높은 벽에 붙어서 작업해야 하니까 정말 위험해요. 규모와 위험성으로 따지면 중공업에 건설업을 더한 노동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조선소에서 용접공이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창선: 조선소에서 다루는 배의 크기 자체가 거의 건물에 가깝긴 하죠.

현우: 애초에 배 만드는 일을 '쉽 빌딩(Shipbuilding)'이라고 표현하잖아요. 용어도 서로 공유하는게 많고 노동자들도 두 업종 사이를 많이 오가거든요. 일당으로 계약된 분들은 조선소에 일이 없으면 건설 현장으로 넘어가기도 하세요.

창선: 현우님은 자동차 공장도 경험하셨죠. 조선소와 비교하면 자동차 공장의 특징은 뭔가요?

현우: 일단 조선업과는 다르게 실내에서 하는 노동이죠. 공정도 라인화 (공정 순서에 맞춰 연속적인 흐름으로 배치되어 있는 공정 기법) 되어 있고요. 자동차 공정 방식을 한번 더 나누면 독일·일본식이 있고 한국·미국식이 있어요. 독일과 일본은 '린(Lean) 생산 방식'이라고 해서 노동자의 숙련이 개입하는 제작 방식이고, 한국은 ‘미국식 포드주의’가 넘어온 건데 개인의 숙련보다는 자동화와 모듈화, 외주화를 통해 숙련의 역할을 최대한 낮추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죠.

창선: 앞으로 더 깊게 얘기해보겠지만 먼저 여쭤볼게요. 블루칼라 노동의 미래를 현우 님은 어떻게 보고 계세요?

현우: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노동 현장에 기계랑 외국인 노동자밖에 안 남을 거예요. 휴머노이드 때문만이 아니라 노동 구조 자체가 숙련 노동자를 계속 밀어내는 방식으로 가고 있어요. 숙련 노동자가 떠난 자리에 기계과 외국인 노동자만 남을 거고, 결국 한국 사람이 없는 한국 노동 현장이 될 거라고 예상합니다.

'안전하다'는 말이 불쾌한 이유

창선: 전문직에 대한 AI의 위협이 현실화되면서 오히려 육체 노동이 안전해진다고 말하는 '블루칼라 안전론'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용접공인 현우 님에게 이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현우: 두괄식으로 말씀드리면, 불쾌하죠. 뭘 보고 안전하다고 하는 건지 저도 궁금해지더라고요. ‘블루칼라 안전론’이라는 단어를 나름 해석해보자면, ‘안전하다’는 말은 결국 '고용 안정'을 뜻하는 걸 거예요. 세부적으로는 블루칼라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밥은 굶지 않는다는 얕고 오래된 믿음의 연장선인데, 실제 블루칼라 노동이 처한 현실의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관점이죠. 지금 20대에겐 AI발 취업난이 있고, 중장년층에겐 회사에서 밀려나는 실업 문제가 있잖아요. 그 불안 때문에 ‘노동 기술이 있으면 안전하다’는 성급한 결론에 쏠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듣다 보면 불쾌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죠.

창선: 실제 블루칼라 일자리는 안정적인가요?

현우: 쉽게 숫자로 얘기를 해보죠. 2026년 7월 고용동향을 보면 작년 7월 대비 건설업 취업자가 5만 7천 명 줄었고, 제조업은 6만 8천 명 줄었어요. (출처 : 통계청 ‘7월 고용동향’) 물론 업계 불경기를 첫 번째 요인으로 꼽아야겠지만. 블루칼라가 그렇게 안전하고 좋은 일자리라면 취업자가 이렇게까지 떨어질 수는 없거든요.

창선: 전혀 안전하지 않아 보이는데요.

현우: 그러니까요. 제가 피부로 느끼는 것도 비슷해요. 조선소 현장직은 정말 안 뽑아요. 제가 있는 조선소에선 매년 2천 명이 나가요. 그런데 뽑는 건 160명 정도 됩니다. 10%도 안 뽑는 거죠. 지금 어떤 블루칼라 일자리도 채용의 문이 큰 폭으로 열리고 있는 곳은 없어요. 실제 블루칼라 일자리는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창선: AI로 인해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더 큰 위협을 받으니, 원래도 위태롭던 블루칼라 일자리가 안전해 보이는 듯한 착시 효과네요.

현우: ‘저거라도 하자.’ 같은 생각인거죠.

창선: 그러면 실제 ‘안전한’ 블루칼라 노동은 뭐예요?

현우: 그나마 안전한 블루칼라 노동은, 숙련이 많이 개입할 수 있는 노동이에요. '숙련이 필요한 일자리인가, 아닌가’ 이 숙련의 여부가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안전한 자리를 좁히기도 하고 넓히기도 하거든요.

창선: 숙련의 비중이 높은 노동은 어떤 노동인가요?

현우: 첫 번째로 자동화된 설비를 갖추기 어려운 노동이에요. 용접, 도배, 타일 같은 일이 그렇죠. 설비를 갖춘 곳에서 고정적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장비를 직접 들고 노동 현장으로 이동해야 해요. 자동화 설비가 대체하기 어려운 부분이죠.

두 번째는 다양한 변수 대응이 필요한 노동이에요. 고정 설비가 없는 노동은 표준적이지 않고, 표준적이지 않으니 변수가 많이 발생해요. 그 변수에 대응하는 능력이 필요하죠. 보통 암묵지라고 하는데, 노동 현장의 말로는 그냥 ‘짬밥’이라고 해요. 이 짬밥이 곧 숙련이죠. 작업 이동의 유연성과 변수 대응 능력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숙련 기술자로서 블루칼라 안전론에 부합하는 노동자가 되는 거죠.

고용의 안전, 임금의 안전, 환경의 안전

창선: 블루칼라 노동의 '안전'을 3가지 키워드로 뜯어볼게요. 먼저 고용의 안전인데요. 블루칼라 노동은 해고나 실직으로부터 안전한가요?

현우: 일단 구조적으로 안전하지 않죠. 건설업이나 조선업은 수주한 건을 다 지으면 끝이잖아요. 다음 일거리가 없으면 다른 일자리로 떠나야 하죠. 애초에 고용 안정과 거리가 멀다고 봐야 되고요. 사실 중소 제조 기업에 취직하면 회사가 망해서 관두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창선: 해고가 아니라 회사가 사라져서 실직하는 경우요?

현우: 네. 노동 현장에 있는 친구들 중 회사에 꾸준히 붙어있던 친구들이 일을 그만두게 되는 건 대부분 회사가 망해서예요. 중견회사도 어떤 사이클에 의해서 갑자기 내쳐지기도 하고 경쟁력을 상실하기도 하고, 정말 많은 요인으로 망해요. 2010년대 조선업 대불황 시기에도 많은 협력 업체들이 망했죠. 그래서 그 당시 조선업 노동자들이 평택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으로 많이 넘어갔는데, 일자리는 늘 어딘가에 있다 해도 사회 계약적인 고용 안정 상태라고 말하긴 어렵죠.

창선: 어떤 노동이든 옮겨 다닐 수 있다고 해도, 한 곳에서 꾸준히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군요..

현우: 집을 구해놓고 가족을 꾸려도 기러기가 될 확률이 굉장히 높은거죠.

창선: 두 번째는 임금의 안전인데요. 낮은 임금이라도 안정적으로 꾸준히 소득을 올리는 구조라면 희망을 가질텐데,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나요?

현우: 노동 현장에서 연공급제 (근속 연수와 나이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임금 체계) 는 점점 축소되고 있어요. 안정적으로 꾸준한 임금 상승은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 현장직만의 이야기라고 봐야 하고요. 고용보험을 적용받는 블루칼라 노동자 대다수는 사실상 느슨한 직무급제(직무의 난이도, 중요도 등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임금 체계) 안에 있는데, 임금 격차가 있긴 하지만 애초에 절대 임금이 작습니다. 임금 격차가 아주 미세해요. 마지막으로 고용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블루칼라 노동은 경기에 따라 소득이 크게 널뛰죠. 어느 쪽이든 안정적이지 않아요.

창선: 마지막으로 노동 환경의 안전은 어떤가요. 산업재해나 안전사고는 블루칼라 노동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잖아요. 요즘 들어 개선되고 있나요?

현우: 개선하려고 노력은 많이 하는데 아직 미미하죠. 일단 노후 설비가 되게 많아요. 지금은 노후 설비에서 바로 자동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인데, 어쨌든 노후 설비가 남아 있는 한 고장으로 인한 예상치 못한 안전 문제가 많이 발생하죠. 또 본사에서 안전 담당자를 배치하고, 작업들을 관리 감독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안전에 대한 매뉴얼이 아직 체계적으로 자리잡고 있지 않아요. 긍정적인 방향이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창선: 현우 님의 안전 의식은 어때요? 아직도 위험한 일을 하시나요 아니면 예전보다는 안전을 좀 더 신경쓰게 되셨나요?

현우: 필수적인 안전 장구는 꼭 갖추죠. 다만 큰 딜레마에 마주할 때가 있어요.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높이 18m 정도 배의 상공에서 용접을 하고 테이프를 쫙 붙여놨거든요. 그런데 반장님이 그 테이프를 떼 오라는 거예요. 테이프를 다 떼고 나서 원칙대로 멀리 돌아 내려가려면 15분이 걸리고, 짧은 틈을 뛰어 넘으면 바로 돌아갈 수 있겠더라고요. 뛰어넘었습니다. 걸렸으면 큰일 났을 거예요. 일은 많고 퇴근은 서두르고 싶으니 저 스스로 위험한 행동을 한거죠.

창선: 그 압박감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관리자는 안전하게 하라고 말하지만, 과도한 양의 일을 주면 노동자에게는 압박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게 스스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핵심 요소 아닐까 싶어요.

현우: 그래서 안전 의식의 기본값이 정말 중요합니다. 오랜 기간 안전 의식이 발전해온 나라와 비교했을때 우리나라는 워낙 급하게 안전 의식을 따라잡고 있는 과정이니까, 그 의식의 기본값을 이제 막 만들어가는 단계죠.

2026년 CES에서 보스턴다이나믹스가 공개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출처 : 연합뉴스)

휴머노이드를 마주한 노동자의 표정

창선: 지난 한 해 동안 테슬라의 옵티머스나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같은 휴머노이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잖아요. 시연 영상을 처음 보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현우: 솔직히 좀 놀랐던 게, 휴머노이드가 진짜로 그렇게 상용화 단계까지 올 줄은 몰랐거든요. 인간의 손과 발이 제조업에 있어서는 비효율적이잖아요. 장기적으로 보면 인간에게 맞춰진 설비에 휴머노이드를 넣는 것보다 그냥 100% 자동화 설비 전체를 쫙 깔아놓은 공장이 훨씬 효율이 좋을 거란 말이죠. 그래서 정말 먼 미래에 휴머노이드가 공장에 필요할까 싶었어요.

창선: 휴머노이드 도입에 대한 제조업 노동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반대인 것 같아요. 이 반대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나요? 일자리를 빼앗길 걱정인지, 다른 맥락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현우: 둘로 양분되는 것 같아요. 숙련을 갖추고 있고 변수에 대응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 그래서 휴머노이드가 가장 늦게 자리를 대체할 사람들은 아직 큰 걱정이 없어요. 내 일을 진짜로 대체하는 상황은 없을 거라고 장담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가장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단순 반복 작업에 비해 사회적 계약을 통해 임금을 높게 받아온 분들이에요. 숙련을 점점 줄여온 자리의 노동자들이죠. 이런 노동자들은 실질적인 위협이라고 느끼죠.

창선: 노동 분야에서 휴머노이드의 위협은 실제 어떻게 시작될까요?

현우: 현재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겪고 있는 AI발 일자리 문제와 거의 비슷할 것 같아요. AI가 가장 강력한 영역이 숙련자에게 에이전트로 붙었을 때잖아요. 과거엔 그 에이전트 역할을 신입사원들이 했는데 사다리가 끊겨버린 거죠. 육체 노동 현장에서 휴머노이드의 위협도 ‘신입 사다리의 제거’라고 생각해요. 신입들이 해야 하는 노동의 자리가 대체되면서 숙련으로 올라가는 경로가 아래서부터 끊기겠죠. 그 외에도 당장 아무 기반 없이, 전문 지식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단순 노동 일자리들이 사라지면서 삶을 영위하는 기초 수단이 많이 사라지겠죠.

이미 도착한 지방 소멸이라는 위협

창선: 이번에는 제조업 노동과 함께 지방에 남은 청년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현우 님은 마산에서 자라셨죠. 그때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현우: 남성은 50%, 여성은 한 80%가 수도권으로 올라간 것 같아요. 남아 있는 친구들은 물적으로 풍족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선에서 그냥 저냥 일하면서 사는데 정신적으로 정말 많이 허전해 해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거든요. 아무래도 지방에서는 여전히 안정된 가정을 이루는 삶을 중요하게 보는데, 현실적으로 이를 이루기 어렵다는 점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갈망하고 있는 상태죠.

창선: 남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이라면, 떠난 사람들은 왜 떠났을까요.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현우: 90%는 일자리입니다. 나머지는 부수적이에요. 그런데 이 ‘일자리 문제’ 라는 말을 조금 자세히 써보자면, 단순히 일할 곳이 없다는 뜻보다는 노동의 장르 자체가 너무 적다는 뜻이 더 정확합니다. 열악한 서비스업 몇 개 빼고는 농업이나 제조업에 쏠려있어요. 커리어도 잘 안 쌓이고, 이직도 잘 안 돼요. 일자리 종류도 적고 옮겨 갈 곳도 많지 않죠. 이게 좀 더 정확한 지방 일자리 문제예요.

창선: 예전에는 울산이나 거제 같은 도시가 제조업 일자리 하나로 큰 호황을 이뤘잖아요. 지금은 왜 그 일자리로 지역 청년들을 붙잡기 어려워진 걸까요?

현우: 여기 일자리들은 과거보다 더 낙후되고 있어요. 단순한 육체 노동 일자리만 남아 있는 거예요. 제조업이라는 게 단순 노동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엔지니어링, 설계 도면, 관리, 디자인 같은 전문성 있는 일은 대졸 전문직들이 하는 일인데, 이런 일자리는 더 이상 지역으로 내려오지 않아요. 전문직 직종들이 출퇴근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천안 분계선, 남방 한계선 같은 말들이 있잖아요. 엔지니어, 설계 도면 같은 좋은 제조업 일자리는 이제 수도권에 남아있고 지방에는 돈을 잘 안 주는 탈숙련 현장직만 남은 거죠.

창선: 어려운 질문이지만, 지역 청년들이 떠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구자들의 이야기보다 지역 용접공인 현우 님의 말이 더 와닿을 것 같습니다.

현우: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건 교통 확충이에요. 제가 창원에서 주로 일했는데 월 200만 원 밖에 못 받았거든요. 바로 옆 김해에서는 250만 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못 갔습니다. 교통이 안 좋아서요. 지금 당장 일자리를 새로 만들기는 어려워도 교통이 확충되면 일자리의 폭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겠죠. 그것뿐 아니라 공간을 압축해놓으면 서로 모일 수가 있게 돼요. 사람들이 모여야 상권과 문화도 살아나겠죠. 결국 청년들이 지역에 남으려면 일자리, 문화, 공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이 문제는 교통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용접공

창선: 현우 님은 마지막 인간 용접공이 될까요? 그 생각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나요?

현우: 저보다는 제 선배 용접공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은데요. 선배들 셋과 술을 먹은 적이 있어요. 팀장님이 내년에 정년이라 이제 용접 일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럼에도 용접하는 게 아직도 재밌대요. 결혼 생활보다 더 오래, 40년 넘게 용접 일을 했으니 애정이 안 생길 수가 없죠. 그렇게 사랑하는 일을 보면서 앞으로 이 일을 더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 일을 전달해 줄 다음 세대가 없다는게 가장 아쉽다고 하시더라고요. 일에서 얻는 자부심이라는 게 내 일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라, 이 일이 사회적으로 영향을 주고 다음 사람이 이어받는 과정에서도 생기는 거잖아요. 아무리 열심히 오래 해도 그 다음 세대가 없다고 생각하면 깊은 슬픔에 빠지죠.

창선: 마지막 질문입니다. 노동 현장이 앞으로 빠르게 변하더라도 절대 변하지 않을 육체 노동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현우: 제가 육체 노동을 시작했을 때,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진 않았어요. 가난하니까 시작했고 그래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 행위를 함으로써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걸, 적어도 어딘가에는 쓰이는 인간이라는 걸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세상에 기여한다는 감각을 받고, 임금을 통해서 지금 놓인 가난한 사정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경험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육체 노동이 어떤 형태로든 사람을 인격적으로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사회적으로 기능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성숙하게 만들죠. 그것이 육체 노동의 변하지 않을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천현우는 사전에 보낸 질문지에 수백 자씩 답변을 적어 왔다. 답 사이 사이, 통계청 고용동향과 한국은행 보고서 같은 자료가 빼곡했고 인터뷰 중에도 자주 숫자와 팩트를 확인했다. 천현우는 누구보다 육체 노동을 잘 아는 당사자였지만 육체 노동을 말하는 것에 있어 신중했다. 책상 앞에서 쉽게 쓰인 말들보다 노동 현장에서 오래 고른 그의 말이 더 무거웠다.


Interview·Edit 김창선 Photo 스튜디오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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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속에서 시대의 기준을 탐구하는 토스의 지식 팟캐스트입니다. 커리어, 기술, 철학 등 각 분야의 현장을 지나온 사람들의 목소리로, 지금 세상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차분하고 밀도 있게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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