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요리에 죽음은 본질적인 재료임을 표현한 일러스트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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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시작되었다. 정신차려 보면 어느덧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가차 없이 이 세상으로 던져진 것이다. 그렇게 인생은 시작된다. 누굴까, 이 엄청난 일을 저지른 사람은? 부모일까, 신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그 누군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우리에게 맡긴 것이다. 그 짐을 삶이라고 부른다. 자, 지금부터 살아가시오. 그것도 열심히. 그렇게 인생은 시작된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부모다. 부모가 부자면 경제적으로 윤택한 어린 시절을 보낼 가능성이, 부모가 다정한 사람이면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낼 가능성이, 부모가 육아에 무관심하면 방치된 어린 시절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는 전적으로 운이다. 자신이 개입할 여지가 발톱만큼도 없다. 그러니 삶이란 출발부터 어처구니 없을 수밖에. 이렇게 수동적으로 출발한 삶이 자기 원하는 대로 흘러갈 리 없다. 삶은 대체로 통제 불능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선택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선택이 그렇게 좋으면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 보시오.

수동적으로 태어났다고 수동적으로 살다 갈 수는 없다. 거대한 얼음 대륙에서 떨어져 나와 천천히 바다 위를 떠다니며 녹아드는 것은 빙하의 삶이지 인간의 삶이 아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인가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자주 과로에 시달리기에 늘 휴식을 꿈꾸지만, 정작 무한대의 휴식이 주어지면 아무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 그것은 떠도는 빙하의 몫이지 살아 있는 인간의 몫은 아니다. 누군가 민족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면 내적 고함을 지르는 거다. 거짓말! 아무것도 안 할 수 없으니까 하는 거면서! 누군가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면 내적 비명을 지르는 거다. 세상에! 아무것도 안 할 수 없으니까 하는 거면서!

태어난 이상 뭔가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다. 재산을 가지면 재산세를 내야 하고, 소득이 있으면 소득세를 내야 하듯이, 존재하고 있으면 존재세를 내야 한다. 활동이 곧 존재세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무엇인가 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할지 말지는 선택할 수 없어도 무엇을 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무심코 무엇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계속할지 여부는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능동적 삶이 시작된다. 무엇을 할지 선택하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평범한 어른이 되고 싶을 수도, 뛰어난 학자가 되고 싶을 수도, 음악에 미친 연주자가 되고 싶을 수도, 신흥종교 교주가 되고 싶을 수도, 무림의 고수가 되고 싶을 수도, 부모의 원수를 갚고 싶을 수도, 원수의 관을 짜기 위해 목수가 되고 싶을 수도 있다. 무엇이든 능동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때부터 자신의 인생이 시작된다.

불세출의 복서 마이크 타이슨은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그렇다. 할 일을 선택했다고 해서 인생이 그에 맞추어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다. 인생은 아이러니 투성이다. 미래에 대해 자신 있게 예측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라. 인생은 당신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며, 반전의 연속일 것이며, 결국에는 애초에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결과를 손에 쥘 것이다. 예상했던 결과를 손에 쥔다 해도 그 의미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택해야 한다. 선택하지 않으면 아이러니도 없고, 반전도 없고, 결국 우리의 인생도 없다. 선택한 대로 이루어지기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다.

타이슨의 저주를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나. 타이슨의 저주를 벗어나는 방법은, 처음부터 그럴싸하게 처맞을 계획을 갖는 것이다. 즉 인간은 아무리 잘난 척해도 결국 죽고 마는 필멸자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강펀치를 염두에 두면, 인생에서 맞는 여느 펀치들은 그저 고양이가 휘두르는 냥냥펀치로 느껴질 것이다. 냥냥펀치 정도는 맞아도 인생이라는 시합을 계속할 수 있다. 인생이란 시합은 반전투성이. 인생이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을수록 더 흥미로운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염두에 두는 삶의 자세다. 죽음을 염두에 두는 것은 삶을 농밀하게 살아내는 기예다. 죽음을 염두에 두면, 삶의 순간들을 좀 더 잘 감각할 수 있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밥을 먹고 있구나!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책을 읽고 있구나!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이 풍경을 보는구나! 이렇게 삶의 순간을 절실히 감각하면 할수록 그는 그만큼 능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 우리 인생의 행로를 우리가 결정할 수는 없어도, 매 순간을 절실하게 감각할지 여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 필멸성을 염두에 둔 자의 인생 질감은 그렇지 않은 자의 질감과 다르다.

그렇게 삶을 감각하고 맛보다 보면, 어느덧 죽어야 할 때가 온다. 이 세상에 오는 방식은 자기 마음대로가 아니었지만, 이 세상을 떠나는 일은 비교적 통제 가능한 부분이 존재한다. 물론 어느 날 느닷없이 병마가 찾아올 수 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병을 예방하기도 하고 치료하기도 하고, 교통법규를 지키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가 원하는 죽음에 최대한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하기도 하고, 안락사를 택하기도 하고, 자기가 묻힐 장소를 고르기도 한다.

이처럼 탄생과 죽음의 차이는 크다. 탄생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고, 죽음은 어찌해볼 도리가 있다. 죽음은 탄생만큼 수동적이지 않다. 자기 뜻과는 무관하게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자신이 원하는 때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자신의 서사를 마무리하여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이성을 가진 생명체가 꿈꾸어볼 만한 상태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희망한다. 극히 수동적인 존재로 이 세상에 왔지만 가능한 한 능동적인 존재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그렇게 자기 뜻대로 죽고 싶다면 맘대로 자살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렇지 않다. 대개 자살은 능동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수동적인 행동이다. 그들은 자살했다기보다 자살당한 것이다. 거액의 부채를 갚지 못해서 죽음을 선택했다? 그것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당한 것이다. 남은 생이 너무 비참할 것 같아 죽음을 선택했다? 그것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당한 것이다. 자살 충동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선택했다? 그것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충동에 굴복한 것이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죽음을 선택했다? 그것은 우울증이 죽음을 선택한 것이지 당신이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자기 뜻대로 죽는 일은 인생을 능동적으로 충분히 살아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의 순간이 온다. 삶이 무엇인가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라면, 죽음이란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다. 반갑구나, 진정한 휴식이여.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 이 죽음을 체험한 사람은 없다. 죽음은 아직 가본 적 없는 종착역, 도착하면 돌아올 수 없는 종착역. 단, 종착역에 도착하는 경로는 여러 가지다. 열차를 갈아탈 수도 있고 탈선할 수도 있고 경유지에 잠시 내릴 수도 있다. 여정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법, 당신 인생의 서사는 계속 수정되어 왔을 것이다. 모든 서사는 결말이 중요한 법, 이제 종착지에 도착하는 법을 숙고할 시간이 왔다. 당신에게 가장 어울리고, 당신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당신 고유의 마무리 방식을 상상하라. 당신이 어쨌거나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무기력하게 사회적 타살을 당하지 않고, 자기 인생의 서사를 차분히 갈무리하기 기원한다.


Edit 주소은 Graphic 이빈소연 ✱커버 그래픽: 삶을 하나의 맛있는 요리로 바라보며, 그 안에 필연적으로 녹아 있는 죽음을 조미료에 비유했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죽음이 실은 삶의 풍미를 더해주는 본질적인 재료라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습니다.

김영민 에디터 이미지
김영민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브린모어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산문집으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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